‘부모 탈을 쓴 악마들’ 포천 자매 살인사건
경기 포천시 이동면 장암리 사향산과 감루봉 사이에는 일명 ‘여우고개’가 있다. 그 옛날 여우가 나타나 사람들을 홀렸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2010년 12월30일, 한 등산객이 여우고개를 오르고 있었다. 6부 능선 계곡을 올라갈 쯤 백골화 된 두 구의 시신을 발견한다. 인근에는 처참하게 찌그러진 중형 승용차 한대가 녹이 슨 채 방치돼 있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유골을 수습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분석을 의뢰했다. 유골의 나이는 13살, 10살 자매로 나왔다. 경찰은 차량의 번호판을 조회해 소유주가 자매의 아버지 이아무개씨(46)인 것을 확인했다.
이씨의 주거지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로 나왔다. 이곳은 이씨의 누나 집이었고, 이씨와 아내 정아무개씨(37)가 세 들어 살고 있었다. 하지만 부부는 이곳에 없었다. 이씨의 누나는 “동반 자살하겠다”는 편지를 보낸 후 자취를 감췄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씨 부부가 자매를 살해한 것으로 보고 전국에 지명수배를 내렸다.
그리고 사건발생 2년2개월만인 2013년 4월10일 부부는 부산의 한 농장에서 검거됐다. 이들은 왜 딸들을 살해하고 도피행각을 벌인 것일까.
남편 이씨는 용산 전자상가에서 컴퓨터 관련 일을 했다. 집 전세금을 털어 지인들과 함께 사업을 시작했지만 실패하면서 누나 집에 월세로 살았다. 아내 정씨는 국내 유명 아동학습지 업체에 입사해 경기 고양시내 지점의 영업팀장에 올랐다.
하지만 판매실적에 쫓기던 나머지 편법을 사용하면서 불행의 씨앗이 됐다. 허위로 판매실적을 올리고 그 대금은 고객으로부터 현금으로 받은 책값으로 대체했다.
고객이 지불한 현금으로 책을 사서 판매 실적을 올린 후 돌려막기를 한 것이다. 미리 구매한 학습지를 인터넷을 통해 싼 값에 재판매하다 적발되면서 그동안의 문제가 한꺼번에 불거졌다.
정씨는 팀장에서 평사원으로 강등됐다. 월급은 본부장이 직접 관리하고 정씨에게는 매월 50만원 정도만 손에 쥐어졌다. 고객들의 현금으로 구매한 학습지 대금은 모두 회사에 내야 할 빚으로 남았다. 1억3000여만 원의 빚은 월급으로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정씨는 사는 게 죽는 것 보다 힘들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상황을 벗어날 길도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죽음 밖에 없다고 보고 남편에게 동반자살을 제안했다. 남편은 처음에는 아내를 달랬지만 너무 완강하게 나오자 설득을 포기하고 함께 죽기로 동의했다.

2011년 2월14일 새벽 4시쯤 이씨 부부는 승용차에 아이들을 태우고 포천시 이동면 백운계곡의 한 민박집으로 향했다.
이씨는 누나에게는 “바람 쐬러 간다”는 메모를 남겼다. 부부는 이곳에서 동반 자살할 생각이었다. 다음날 오후 이씨부부는 아이들을 방에서 놀게 하고 민박집 주차장으로 나와 유서를 썼다.
정씨는 유서에 “잠시 후 저희 손으로 아이들 목을 졸라야 합니다. 이런 부모가 또 있을까요? 사는 것 보다 죽는 게 모든 사람에게 더 큰 피해를 주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적었다.
남편 이씨는 “아이들에게 미안합니다. 남아서 천덕꾸러기가 될 것 같아 저희가 데려갑니다. 불쌍한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미안합니다. 죽을 각오로 잘 살아보려 했는데 현실은 너무 무섭습니다”라고 남겼다.
부부는 유서를 쓴 후 이동우체국으로 가서 우체통에 넣었다. 밤이 되자 아이들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씨는 미리 준비한 번개탄 2장을 냄비에 담아 불을 붙여 출입문 앞에 놓았다. 부부는 이 세상과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아이들 옆에 누워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꽈당’하는 소리가 났다. 눈을 떠 보니 둘째딸이 화장실에 가려다 번개탄이 들어있는 냄비를 밟고 넘어진 것이다. 이씨 부부의 1차 동반 자살시도는 이렇게 실패했다.
다음날 정씨는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아이들에게 “엄마가 일을 하면서 빚을 너무 많이 져서 너무 힘들다. 이곳에는 죽으려고 왔다. 너희들이 원하면 보육원에 데려다 주겠다. 나중에 친척들이 데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큰딸은 울면서 따라 죽겠다고 했고, 작은 딸은 울기만 했다.
이씨 부부는 또다시 자살을 감행했다. 2월16일, 이번에는 포천시 영북면 산정호수 인근으로 향했다. 길가 마트에서 막걸리와 소주를 각각 2병씩 사고, 번개탄 3장을 구입했다. 승용차를 운전하던 이씨는 다음날 새벽 2시쯤 호숫가 공터에 차를 세웠다.
아이들은 모두 잠들어 있었다. 이씨는 번개탄에 불을 붙여 냄비에 넣은 후 승용차 안에 뒀다. 새벽 4시쯤이 되자 두 딸이 고통스런 신음소리를 냈다. 번개탄에서 뿜어져 나온 유독가스를 견디지 못한 것이다. 두 번째 자살시도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운전석에 있던 이씨는 아이들이 있는 뒷좌석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차례로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발버둥 치자 아내 정씨가 다리를 잡았다. 얼마 후 아이들은 싸늘한 시신이 돼서 몸이 축 늘어졌다. 부부는 두 딸을 뒷좌석과 바닥에 각각 눕혔다.
그런 다음 승용차를 추락시킬 곳을 찾다가 여우고개 계곡을 발견했다. 이씨는 차량을 몰고 그대로 70미터 아래로 돌진했다. 승용차가 바닥에 추락하면서 두 딸의 시신은 차창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안전띠를 매고 있던 이씨 부부는 목숨을 건졌다. 부부가 습관적으로 안전벨트를 하고 절벽 아래로 차량을 몰았고, 절벽 20미터 지점에서 나무에 걸려 충격이 완화돼 세 번째 자살시도도 실패로 돌아갔다.

가까스로 차량을 빠져 나온 부부는 네 번째 자살을 시도했다. 남편은 돌로 아내의 머리와 자신의 머리를 순차적으로 내려쳤다. 부부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그러나 몇 시간 뒤, 부부는 눈을 떴다.
이씨 부부는 이번엔 영하의 날씨에서 옷을 벗었다. 가만히 있으면 저체온증으로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부는 추위에 기절했지만 질긴 목숨은 이번에도 살아남았다.
다섯 번에 걸친 자살시도가 모두 실패로 돌아가자 부부는 자신들이 죽을 운명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생존’을 선택한다. 이씨 부부는 계곡에 나뒹굴고 있는 딸들의 시신을 수습하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병원에 가서 동상에 걸린 몸을 치료했다. 비록 동반자살을 위해 딸들을 죽였지만, 현행법으로는 엄연한 ‘살인’이다.
이들은 이때부터 전국을 돌며 도피 행각을 벌이기 시작한다. PC방에서 일자리를 검색해 강릉 주문진, 충북 진천, 충남 보령, 경북 상주‧청도, 경남 밀양‧마산, 전남 여수, 충남 강경, 전남 해남 등 주로 시골의 한적한 농장을 돌며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녔다.

2012년 9월에는 부산의 한 농장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1년6개월 정도 일했다.
도피 장소 중 가장 오래 머물렀다. 경찰은 이씨 부부의 행적을 찾을 수 없자 전국에 지명수배를 내렸다. 그리고 2013년 4월10일 ‘중요 지명 피의자 종합수배’ 전단을 본 한 주민이 부부를 알아보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도피행각도 막을 내렸다.
천륜을 어기고 딸들을 죽인 살인자들이 숨을 곳은 아무데도 없었던 것이다. 경찰은 이씨 부부를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했다.

이씨 부부의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 배심원 7명은 만장일치로 유죄 평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부부에게 각각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부모라고 할지라도 자식을 자기의 소유라고 생각하면 안된다”며 “자신의 어려움을 극복해야지 자식을 먼저 보내고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또 “피고인들은 자녀에게 (죽음에 대한) 선택권을 줬다고 주장하지만 아직 12살, 10살 난 아이들에게 ‘엄마랑 살래, 혼자 살래’라고 하는 것은 아이들로서는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씨 부부는 천륜을 어겼다.
두 딸을 인격체가 아닌 자신들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함부로 목숨을 빼앗았다. 그러다 보니 어린 자매는 세상과 이별의 시간을 갖지도 못했다. 또 부모가 ‘경제적 어려움’을 얘기했지만, 자신들이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죽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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