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후 도주했다가 죽은 후배에게 누명 씌운 선배
태권도 특기생으로 입대한 이아무개씨(24)는 해군에서 복무하고 있었다.
그는 태권도 대회에 나가 메달을 따 전역을 두 달 앞둔 2017년 9월24일 마지막 휴가를 나왔다.
이씨는 곧바로 고등학교 때부터 믿고 따르던 선배 조아무개씨(25)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 사람은 당일 오후 경기도 안산에서 만나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셨다.
조씨는 서울 강남으로 가자며 만취상태에서 운전대를 잡았다. 그의 차량은 어머니 명의였다. 조씨가 몰던 차량은 30km 정도 이동해 서울로 진입했다.
9월25일 새벽 5시30분쯤, 서초구 강남역 인근 편도 3차로 도로에서 유턴하려던 찰나 반대편에서 시속 100km가 넘는 속도로 달려오던 택시와 정면충돌했다. 조씨의 승용차는 두 차례 회전하며 굴렀다.
이 사고로 조수석에 앉아 있던 이씨는 열린 차문을 통해 밖으로 튕겨 날아가 도로에 부딪혔다. 이씨는 두개골 골절 등 머리를 크게 다쳤다. 조씨는 충돌 초기 에어백이 터지면서 얼굴에 찰과상 외에는 크게 다친 곳이 없었다.
조씨는 사고 직후 신음하고 있던 후배를 보면서도 상태를 확인하거나 119에 신고하지 않았다. 음주운전이 발각될까 두려웠던 조씨는 사고 현장에서 그대로 도망쳤다.
이씨는 10분정도 방치되다 지나가던 시민의 신고로 인근 병원에 이송됐다. 그는 응급조치를 받았지만 22시간 뒤 사망했다.
경찰은 차량 조회를 통해 이씨의 신원을 파악했고, 조씨를 불러 사고 당시 음주여부와 차량을 누가 운전했는지를 추궁했다. 하지만 조씨는 처벌을 피하기 위해 “운전은 후배가 했다”고 발뺌하며 죽은 이씨에게 누명을 씌웠다.

경찰은 수사 초기 이씨가 운전한 것으로 보고, 혈중 알코올 농도를 측정했다. 사고 2시간이 지난 오전 7시, 이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27%였다.
하지만 조씨의 진술과 다른 정황이 나오자 경찰은 조씨를 의심했다. 죽은 이씨가 무면허인 점, 사고 당시 큰 충격에도 조씨 부상이 경미한 것을 봤을 때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조씨를 통해 그들이 다녔던 술집을 탐문해 당시 마신 술의 양을 파악했다. 이들은 당시 1인당 ‘소주 900ml, 생맥주 300cc’씩 마신 사실이 확인됐다. 이를 통해 역추산한 조씨의 사고 당시 혈중 알코올농도는 0.109%로, 면허 취소 수준이었다.

경찰의 폐쇄회로(CC)TV 영상 추적 끝에 조씨의 거짓말이 탄로 났다. 사고 2분 전 CCTV 영상 속에서 차량을 운전하고 있는 조씨의 모습이 포착된 것이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사고 차량 운전석 에어백에서 조씨의 DNA까지 확보했다.
경찰이 이런 증거들을 들이대자 조씨는 그때서야 자신이 운전한 것을 시인했다. 경찰은 조씨를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및 사고 미조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차량 혐의로 구속하고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 수사 끝에 이씨의 억울한 죽음은 밝혀졌다.
이씨의 부모는 조씨를 강력하게 처벌해 달라고 촉구했다. 조씨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도주치사) 등으로 구속기소됐고 재판부는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여러 정황을 종합해보면 조씨가 사고 현장에서 사고와 무관한 자로 행세하고 초기 경찰 수사 과정에서는 운전자가 아니라고 이야기했다”며 “사고를 야기하고 필요한 구호 조치와 신원 확인을 하지 않고 사고 현장을 이탈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음주운전을 해 사고를 내고 절친한 후배인 이씨를 사망에 이르게 하고 또 다른 피해자 박씨에게 상해를 가했음에도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사망한 피해자가 운전을 했다고 말한 점은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했다.
또 “조씨는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사고의 충격으로 인한 기억상실이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하고 반성의 빛이 없다”며 “피해자의 유족에게 용서를 구하는 등 노력도 안 하고 있는데다 피해 유족과 지인의 상당수가 엄벌할 것을 탄원하고 있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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