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생활

‘국책건설사업’ 완전 뒤엎은 최초 사례

드디어 중부권 물류기지의 최종 입지가 발표됐다.

1999년 8월30일 건설교통부는 중부권 내륙화물기지 입지후보지로 충북 청원군 부용면 갈산리와 충남 연기군 동면 응암리 일대 21만평(총사업비 3천529억원)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충북 갈산지구에는 복합화물터미널이 충남 응암에는 내륙컨테이너기지(ICD)가 건설된다.

이로써 1995년 KOTI의 1차 용역결과가 발표된 후 4년, 1999년 3월 2차 용역결과가 발표된 후 약 6개월 만에 최종 후보지 선정작업이 끝났다.

1,2차 당시 ‘1위 후보지’였던 충남 명학리는 완전 배제됐고, 주민들의 생존권도 되찾을 수 있게 됐다.

물류기지 유치를 도민 숙원사업으로 내걸었던 충청북도도 뜻을 이루게 됐다. 충북도와 유치를 반대하며 생존권 투쟁을 벌였던 충남 명학리 주민들도 일제히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충남 명학리 주민들은 “그동안은 정부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불신감을 가져왔다. 뒤늦게나마 진실과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줘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명학지구 주민들도 ‘비대위’를 결성해서 잘못된 국책사업에 대해 투쟁해온 노력이 헛되지 않고, 삶의 터전을 스스로 지켰다는 게 가장 큰 보람이라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것은 정치논리가 만들어낸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은 획기적인 일이었고, 우리나라가 생긴이래 이미 결정된 국책 건설사업을 완전히 뒤엎고 재평가를 이뤄낸 최초의 사례가 됐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정말 한심하고 웃긴 일이다. 당초 1위 후보지였던 ‘충남 명학리’는 최악의 입지였다.

그런데 이런 곳을 ‘최적 입지’로 선정한 건교부나 KOTI,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생존권을 위협했던 정치권의 실세들, 보상에 눈멀어 주민들을 매도했던 지방 권력자들,이들을 감시하고 주민들의 편에 섰어야 할 지역 언론은 권력자들의 편에 서서 주민들을 이간질했다.

한 발 더 나아가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밥그릇 챙기기나 보상금을 더 받으려는 꼼수”라고 매도했다.

결국 아무 힘이 없던 주민들은 95년부터 4년 동안이나 힘겨운 생존권 싸움을 벌여야 했다. 아무도 주민 편이 아니었다. 무명의 전문지 기자인 내가 유일한 주민들의 희망이었고, 힘이었다.

그래도 명학리 주민들과 나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을 해 냈다. 주민들은 스스로 마을을 지켰고, 나는 “생존권을 지켜주겠다”고 했던 주민들과의 약속을 지켰다.

이름없는 전문지 기자가 이미 결정된 국책건설사업을 최초로 뒤집은 것이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기자는 어디에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메이저 언론사든, 종합일간지든, 아니면 이름없는 작은 시골마을의 언론사든, 세상을 바꾸는 것은 간판이 아니었다.

펜을 가진 기자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세상을 바꿀 수 있었다. 그걸 내가 직접 보여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