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원춘 수원 여성 토막 살인사건
2012년 4월1일 저녁, 휴대전화 부품공장에 다니던 곽아무개씨(여·28)는 퇴근 후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지동 초등학교를 지나 못골 놀이터로 향하는 도로를 걸어가던 곽씨. 그 날 따라 희미한 가로등 불빛사이로 어둠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곽씨가 서둘러 집으로 향하던 중 갑자기 전봇대에서 한 남성이 튀어나왔다. 그는 곽씨를 밀친 후 바로 앞 자신의 거주지 대문을 열고는 끌고 들어갔다. 곽씨는 비명을 지를 사이도 없이 순식간에 제압당했다. 이 남성은 중국 조선족 불법체류자인 오원춘(우위안춘·43)이었다.
오씨는 곽씨를 자신의 집 안에 감금하고 입과 몸을 청테이프로 칭칭 감고 두 차례나 성폭행을 시도했다. 곽씨가 강하게 저항해 실패하자 잠시 밖으로 나갔다. 그사이 곽씨가 재빨리 문을 안에서 걸어 잠갔다.
그리고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 112에 전화를 걸었다. 다급한 목소리로 “모르는 아저씨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 아저씨가 나간 사이 문을 잠그고 전화한다. 집은 주변 지동초등학교를 지나서 못골 놀이터 가는 길쯤”이라며 자신의 위치를 자세히 설명해 줬다.
그러나 하필 112 신고를 접수한 경찰관이 어리버리 했다. 그는 “지금 성폭행 당하신다고요?” “자세한 위치 모르냐?” “누가 그러는 것이냐?” 등의 질문을 이어갔다. 1초가 위급한 상황에서 신고자는 다급한데 경찰관은 여유가 만만했다.

곽씨가 처한 상황을 말할 수 없는 질문으로 구조시간만 지연했다. 그 순간 오원춘이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고, “잘못 했어요 아저씨, 잘못 했어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악! 악!” 비명소리가 이어졌다. 이어 테이프를 찢을 때 나는 소리가 들렸고 전화가 끊길 때 쯤에는 비명소리가 잦아들어 갔다.
이런 내용은 고스란히 112신고센터에 녹음됐고, 긴급공청(신고내용을 파출소, 순찰차가 동시청취)의 방식으로 수원 경찰관들에게 무전으로 전파됐다. 경찰은 곽씨를 살릴 수 있는 기회가 몇 차례 있었지만, 어리버리하고 미숙하게 대응하다가 결국 죽음으로 내몰았다.
경찰은 112대응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자 녹취록의 일부만 공개하고 나머지는 감췄다. 곽씨의 전화는 7분 넘게 이어졌지만 경찰은 “억지로 문을 여는 소리와 함께 끊어졌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문제가 불거지자 경찰은 “112센터와 피해자가 대화한 이후 나머지 시간은 피해자가 전화를 떨어뜨려 경찰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없었다”며 “차마 이를 공개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경찰은 곽씨의 다급한 목소리와 비명이 담긴 신고를 받고는 휴대전화를 추적해 주소지가 군산인 것을 알았다. 그리고 가족에게 곽씨가 수원에서 혼자 자취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서야 곽씨의 전화가 사실인 것을 확인했다. 이때는 곽씨가 112에 신고한 지 2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때서야 관할인 수원중부경찰서 모든 현장 인력에게 출동지령을 내렸는데, 여기서 또 경찰의 무능한 대응이 도마에 올랐다.
경기지방경찰청 112신고센터는 긴급 출동지령을 내리면서 중요한 사실 두 가지를 빼먹었다.
바로 “피해자가 집 안에 있다”는 것과 피해자가 알려준 집의 위치였다. 이로 인해 경찰은 긴급 출동했지만 사건 현장에서 1km쯤 떨어진 못골 놀이터 인근만 수색했던 것이다. 경찰은 또 주민들의 취침에 방해된다며 현관문이나 창문에 귀를 대고 사람 소리를 확인하고 안 들리면 철수하는 식의 소극적인 수색을 했다.
경찰이 사건 현장 주변을 헤매는 사이 오원춘은 곽씨를 스패너로 내려쳐 기절시키고 목을 졸라 살해했다. 그리고는 피해자의 시신을 화장실로 옮겨 토막 내기 시작했다. 사건 다음날인 2일 오전 11시30분쯤이 돼서야 경찰은 오원춘의 집에 들이닥쳤다. 이때는 이미 피해자의 시신을 토막 내 여행용 가방과 비닐봉지 등에 나눠 담은 후였다.
“살려달라”고 외쳤던 곽씨의 시신은 무려 356점으로 토막 나 있었다. 살점을 도려내 완전히 해체한 뒤 14개의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놓았던 것이다. 뼈는 훼손하지 않은 상태였다. 결국 경찰의 늑장대응으로 인해 곽씨가 잔인하게 살해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전 국민의 비난이 빗발쳤다.

그동안 수많은 토막살해 사건이 있었지만 이번은 잔인함에서 상상을 초월했다. 사체를 접한 경찰이나 법의학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범행 수법이나 잔혹성 등을 감안하면 연쇄 살인의 가능성이 다분했다.
범행 수법 자체가 숙련됐고 주저하거나 당황하지 않았던 점에서 초범이 아닐 가능성이 컸다. 이리저리 주소지를 옮겨 다닌 주거 행태나 성매매를 자주 하며 성에 대한 집착을 보인 점도 여죄 가능성이 충분히 의심됐다. 희대의 연쇄살인범인 유영철·정남규·강호순 등도 성에 집착을 보이면서 사체를 훼손했다는 점이 공통적인 특징이다.
오원춘이 시신을 정교하게 토막낸 것을 근거로 ‘인육 및 장기밀매’ 가능성도 제기됐다.

오원춘은 2007년 9월에 입국한 뒤 지난 5년간 여러 지역을 전전했다. 입국 직후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사촌 여동생 집으로 주소를 등록했다.
그리고 2008년 5월 경남 거제를 시작으로 부산, 대전, 제주, 용인, 서울 등지로 옮겨 다녔다. 이 과정에서 비자 문제로 일곱 차례 중국을 드나들었다. 오씨가 거쳐간 지역에서 실종된 여성은 총 151명이다. 이중 사건이 터졌을 당시 86명의 행방이 묘연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실내가 아닌 실외를 범죄 장소로 택하는 것은 굉장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데 초범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범죄 현장에서 당황하지 않는 등 초범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만큼 얼마든지 여죄가 있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교수는 또 “오씨와 같이 갑자기 여성을 낚아채는 범행을 하는 이들을 ‘프레데터’라고 하는데 프레데터들은 여성의 나이 등을 고려하지 않고 불특정 다수를 범행 대상으로 삼는 만큼 피해 여성의 연령 등과 상관없이 여죄 여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경찰에서도 오씨의 연쇄살인과 인육제공설 등에 대해 수사했지만 더 이상의 여죄는 밝혀내지 못했다. 다만 법원은 오원춘의 인육 및 장기밀매 가능성에 대해 ‘신빙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1심 법원은 오원춘에게 사형을 선고하면서 “피고인이 계획적이고, 잔인하게 살해한 것은 성폭행이 목적이라기보다 불상의 용도로 시신을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3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을 그 근거로 들었다.
첫째, 통상 사체를 유기할 목적이라면 시간을 단축해야 된다. 그러나 오원춘의 경우 사체 훼손시간이 다른 유사사건보다 2배나 오랜 6시간이 소요됐다. 또 사체 훼손 과정에서 태연하게 담배를 피우고, 음란물을 시청했다.
둘째, 우람한 체격의 오원춘이 결박된 피해여성의 강경한 저항에 부딪혀 2번의 성폭행을 시도했다 실패했다는 점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애초부터 다른 목적으로 납치했을 가능성이 크고, 경찰에 검거된 뒤 온갖 거짓말로 성폭행을 하려다 실패해 살해한 것처럼 상황을 유도해 나간 정황도 있다.
셋째, 오원춘이 일정한 크기와 모양으로 무려 356조각으로 살점을 도려냈다. 톱이나 다른 도구가 있었음에도 이를 사용하지 않고, 부엌칼로 오랜 시간동안 정교하게 시신을 훼손한 것이다. 그럼에도 장기는 거의 훼손되지 않았다.
이밖에도 최근 2개월동안 통화내역이 삭제된 점에 대해서도 제대로 이유를 밝히지 못하는 등 범행 동기와 과정 등에 대해 부인하거나 “잘 모르겠다”고 해 의문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비록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피고인이 인육제공 등 불상의 용도로 사용할 목적으로 시신을 훼손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강조했다.
오원춘은 1심에 불복해 항소했고, 2심은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아울러 신상정보공개 10년과 전자발찌 착용 30년을 명령했다.

항소심의 판단은 1심과는 달랐다.
재판부는 “1심은 오씨가 범행 당시 `불상의 용도에 인육을 제공하려는 의사 내지는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고 판단했지만, 시신을 훼손한 수법이나 형태, 보관방법, 범행 경위 등을 고려하면 이 같은 의도로 범행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오씨가 평소 인육의 사용·거래에 관여했다는 정황을 인정할 만한 자료도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피해자를 성폭행하려다 저항하자 살해하고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시신을 훼손했다는 그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수법이 잔인무도하며 시신을 훼손하면 안 된다는 사회공동체의 감정을 크게 해쳤다는 면에서는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시키는 중형을 선고할 사정은 있다”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하지만 “오씨가 공사현장을 전전하며 사회성과 유대관계가 결여된 채로 살아온 점, 사전에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다고 보기 어려운 점, 인육을 사용하려는 동기가 있었다는 점이 증명되지 않은 점에 비춰보면 원심의 형량이 무거워 무기징역을 선고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이 무기징역을 확정하면서 이 사건은 숱한 의문만 남긴 채 종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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