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사건

강진 초등학생 김성주‧김하은양 연쇄실종사건

전남 강진군 중서부에 위치한 강진읍은 인구 1만6천여 명쯤 된다. 군 전체 인구의 약 40% 정도가 거주하는 곳으로 행정의 중심지로 일컬어진다.

지난 2000년 초 강진읍 교촌리와 평동리에서 초등학생 두 명이 1년 사이에 잇따라 실종됐다.

경찰은 범죄 연관성을 두고 수사했으나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했고,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먼저 실종된 것은 김성주양(당시 9세)이다.

2000년 6월15일 오후 2시쯤 동초등학교 2학년이던 성주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후문에서 같은 학교에 다니던 오빠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은 평소보다 수업이 좀 일찍 끝났다.

오후 2시30분과 50분에 친구들에게 목격되기도 했다. 오후 3시쯤 담임교사가 문방구 앞을 지날 때 성주의 모습은 없었다. 이런 정황을 보면 성주는 오후 2시50분 이후에 문방구 앞에서 사라졌다는 것이 된다.

3학년인 오빠는 수업이 끝난 후 여느 때처럼 문방구 앞에서 동생을 기다렸다. 약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렸는데도 성주는 오지 않았다. 오빠는 “먼저 갔나”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왔다.

집에 있을 줄 알았던 성주는 귀가하지 않은 상태였다. 엄마는 “성주는 왜 같이 안 왔냐”라고 물었다. 그때까지도 가족들은 “어디서 놀고 있겠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학교 앞에 있는 큰 집에 갔을 수도 있었다.

어느덧 해가 지고 어두워지기 시작했는데도, 성주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이때부터 부모는 “얘가 어디 갔는데 아직까지 안 오지”하며 불안감이 들었다. 학교 앞 큰 집에 전화하니 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실종 다음 날 새벽 이상한 일이 있었다. 성주네 집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는데, 급하게 받은 전화는 아무 말도 없이 툭~ 끊어져 버렸다. 성주 부모는 불길한 마음에 집 밖으로 나갔다.

집 앞 골목에서 아빠의 눈에 낯선 검은 차 한 대가 보였다. 그 차는 성주 아빠를 보고는 주춤거리다 황급히 빠져나갔다. 새벽 시장에 나가던 이웃 할머니도 그 검은 차를 봤다고 진술했다.

그 차의 운전자는 할머니에게 “동초등학교의 위치가 어디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 학교는 성주가 다니던 학교였다. 성주 아빠는 차번호를 희미하게 기억했다. ‘7181’. 이 차는 성주의 실종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성주 부모에게 평생 따라다니는 의문이다.

성주 부모는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경찰은 목격자를 탐문하기 시작했고, 추가 목격자가 나왔다. 4학년 여학생은 “오후 3시 10분쯤 학교 근처 슈퍼 앞에서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 3명과 우시장 쪽으로 갔다”고 진술했다. 그곳은 성주의 집과는 정반대 방향이었다.

또 다른 목격자인 반 친구는 “남성 2명(40대 1명, 20대 1명)과 액세서리 가게 앞에 함께 있는 것을 봤다고 했다. 경찰은 이들의 관련성을 찾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했으나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두 아이의 진술은 실종 상황 등을 볼 때 매우 구체적이었다. 경찰은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아이들의 기억을 떠올려 용의자의 몽타주를 만들었다. 그러나 완성된 몽타주는 서로 달랐고, 이걸 토대로 한 주변 탐문 수사 역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경찰은 성주의 집과 학교 주변, 인근 야산, 공터, 폐가, 건물 등을 수색했다. 강진 관내 주요 도로 3개소에 설치된 범죄 감시용 무인카메라에 촬영된 1천400여대의 통과 차량을 판독했으나 역시 새로운 단서를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다. 성주가 다니던 학교의 선생님은 강진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성주는 말은 별로 없었지만 착한 아이였다”고 회고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2001년 6월1일 이번에는 강진 중앙초등학교 1학년이던 김하은양(당시 7세)이 실종된다. 김양도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가던 길에 S여고 입구 횡단보도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됐다. 하은이의 실종은 순식간이었고, 실종 정황이 1년 전 실종된 성주와 아주 비슷했다.

이날 하은이는 반 친구인 A군과 S여고 입구 횡단보도까지 함께 걸어갔다. A군의 집은 S여고에서 불과 3분 거리에 있었다. A군이 집으로 간 후 하은이는 혼자 남았다.

한 30대 여성은 하은이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을 봤다”고 진술했다. 이런 것을 종합하면 하은이는 S여고 횡단보도를 건넌 직후이거나 얼마 후 실종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은이가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자 부모는 경찰에 실종신고를 접수했다. 경찰은 당시 체육대회를 열었던 S여고 학생 721명을 대상으로 탐문 조사를 벌였지만, 새로운 목격자는 나오지 않았다.

김양의 통학로인 학교∼남포리 집 2.4㎞ 구간 내 상가와 주민들 상대로도 탐문활동을 벌였다. 이와 병행해서 남포리와 목리, 평동리 일대 주민을 대상으로 방문 조사도 실시했으나 신빙성 있는 내용을 확보하지 못했다.

폐가와 비닐하우스는 물론, 인근 건설현장의 노동자 100명에 대한 수사도 벌였으나 허사였다. 주변 주택 내 재래식 화장실 안까지 뒤졌지만 성과가 없었다.

대체 하은이는 어디로 간 것일까.

수사에 별다른 진척이 없을 때 강진 지역신문사 홈페이지에 20대 여성의 글이 올라왔다. 불상의 20대 남성들과 승용차를 이용해 하은이를 데려갔고 아이가 앵벌이를 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유괴에 가담한 것에 대한 죄책감에 제보한다”고 했다. 경찰이 접속 IP를 추적해보니 전남 순천의 한 PC방에서 글을 쓴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이 여성의 신원을 밝히는데는 실패했다.

아울러 제보의 진위도 파악할 수 없게 됐다. 하은이의 담임교사는 강진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작지만 학교에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성격이 밝은 똑똑한 아이였다”며 “하은이가 꼭 돌아올 것으로 지금도 믿고 있다”고 말했다.

한 지역에서 1년 사이 두 명의 초등학생 실종. 우연치고는 너무나 판박이인 사건이었다.

연관성을 보면 △동일한 읍내에서 실종 △여자 초등학생 △실종된 계절과 시간대가 동일(6월, 오후 1시30분~3시 사이) △금품 요구·협박 전화 전무 △실종 단서가 전혀 없다는 것 등이다. 만약 금품을 노린 유괴사건일 경우 부모에게 연락해 ‘돈’을 요구했을 텐데 그런 것도 없었다.

경찰은 두 사건이 동일범에 의한 범죄 혐의점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였다.

비공개로 진행하던 것을 공개수사로 전환했다. 두 초등학생의 얼굴사진과 신체특징 등이 들어있는 전단지를 만들어 전국에 배포했다. 언론에도 대대적으로 보도됐으나 유력한 제보나 단서를 확보하지 못했다.

두 아이가 실종된 지 7~8년째 되던 2008년 5월 경기 안양에서 혜진‧예슬양이 납치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이 사건을 계기로 장기 아동실종에 대한 대대적인 재수사에 들어갔다. 강진경찰서는 성주‧하은이 실종에 대한 실종전담팀을 꾸려 수사를 재개했다.

그러다 용의자 한 사람이 부각됐다.

뜻밖에도 아이들의 집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던 남성이었다. 이 남성은 남자 아이를 성추행하고 그것을 녹화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김성주양 실종 당시 초등학생 목격자 중 한 명은 함께 있던 남성 중 ‘20대 남성’을 지목했었다.

경찰 조사결과 이 남성은 김성주양이 실종되던 해 7월에 군에 입대했고, 1년 후 김하은양이 실종되기 몇 달 전 정신질환을 이유로 의가사 제대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실종된 아이들과의 연관성을 찾지 못하고 수사는 종결됐다.

성주‧하은이 부모 또한 피 말리는 시간을 보냈다. 여느 실종자 부모들처럼 아이들을 찾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전단지를 배포했다. 성주 부모는 실종이후 대문을 활짝 열어 놓고 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대문을 닫지 않았다고 한다.

하은이 부모는 행여 알 수 없는 사고로 무연고자 생활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전국의 보호시설을 돌았다. 해외 입양된 것은 아닌지도 살펴봤다. 지금도 뉴스에서 아동 실종 소식이 들릴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당시 사건이 떠오르기도 하고,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현재 실종아동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15년이다.

만약 두 아이들이 누군가에게 납치되거나 유괴된 것이라면 죗값을 물을 수가 없게 됐다. 비록 공소시효는 끝났다고 해도 우리는 두 아이를 찾는 노력은 멈출 수가 없다. 성주와 하은이 부모는 너무도 그리운 딸이 대문을 힘껏 열고 “엄마!” 하고 들어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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