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화제

‘미스 아메리카’ 지역 예선 우승한 19세 소녀의 정체


미국 미인대회 역사가 크게 요동치고 있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어져 온 미의 기준이 무너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가치와 격렬한 논쟁이 들어섰다.

한쪽에서는 성전환 여성이 당당히 왕관을 쓰며 새로운 역사를 썼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성전환자의 참가를 막아선 주최 측의 손을 법원이 들어주었다. 미국 사회의 가장 뜨거운 화두인 ‘성별 정체성’ 논란이 미인대회라는 무대 위에서 정면으로 충돌하는 모양새다.

외모 대신 지성… 100년 만에 바뀐 무대

1921년, 미국 뉴저지주의 휴양지 애틀랜틱시티에서 한 대회가 문을 열었다. 관광객들을 더 오래 붙잡아 두기 위해 기획된 이 행사가 바로 ‘미스 아메리카'(Miss America)의 시작이다. 초기에는 수영복을 입은 여성들의 외모를 평가하는 단순한 볼거리에 가까웠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대회도 체질을 바꿨다. 미스 아메리카 조직위원회는 지난 2018년, 대회 창설 97년 만에 커다란 결단을 내렸다. 여성의 몸매를 상품화한다는 오랜 비판을 받아들여 수영복 심사를 완전히 없앤 것이다.

대신 참가자의 재능과 생각, 그리고 사회 활동 계획을 듣는 심층 면접의 비중을 대폭 늘렸다. ‘미인대회’라는 이름 대신 ‘경연 대회’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주최 측은 “우리는 더 이상 외모로 참가자를 평가하지 않는다”며 지성과 사회적 영향력을 새로운 기준으로 내세웠다.

이러한 변화는 자연스럽게 참가자의 자격 기준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미스 아메리카는 성전환을 한 트랜스젠더 여성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 법적, 의학적으로 성별 정체성을 확립한 여성이라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도록 규정을 정비한 것이다.


그 변화의 씨앗은 2022년 11월, 미국 뉴햄프셔주의 작은 도시 데리에서 열린 예선 대회에서 열매를 맺었다. 1987년부터 시작된 지역 대회인 ‘미스 그레이터 데리’에서 19살의 베트남계 여성 브라이언 응우옌이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응우옌은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한 트랜스젠더였다. 미스 아메리카 백 년 역사상 성전환자가 지역 예선에서 우승해 본선 진출권을 따낸 것은 응우옌이 처음이었다.

이 대회는 지역 사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젊은 여성들에게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7500달러(USD)의 장학금을 주는 전통이 있었다. 우리 돈으로 약 990만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응우옌은 우승 직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에 “미스 아메리카의 오랜 역사에서 첫 성전환자 타이틀 보유자가 되어 말할 수 없이 기쁘다”며 “지역 사회를 대표해 봉사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응우옌의 우승 소식이 알려지자 미국 전역은 뜨거운 논쟁에 휩싸였다. 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진영에서는 “미인대회가 외모 지상주의를 벗어나 진정한 다양성을 포용하기 시작했다”며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이 대회가 제공하는 ‘여성을 위한 장학금’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비판론자들은 태어날 때부터 생물학적 여성으로 살아온 다른 참가자들의 기회를 빼앗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성전환 여성이 여성 공간에 진입하면서 기존 여성들이 누려야 할 권리와 기회가 줄어든다는 이른바 ‘여성 공간 확보’ 문제로 번진 것이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응우옌의 수상을 취소해야 한다는 항의와 함께, 미인대회의 본질이 훼손되었다는 거친 설전이 밤낮으로 이어졌다.


닮은 듯 다른 두 대회… 법원의 엄격한 잣대

이런 와중에 미 연방법원에서 나온 하나의 판결은 논쟁에 기름을 부었다. 많은 이들이 미스 아메리카 대회와 혼동하는 또 다른 대형 미인대회, 바로 ‘미스 USA’에서 터진 소송이었다.

성전환자이자 인권운동가인 애니타 그린은 지난 2021년 미스 USA의 오리건주 지역 예선에 참가하려다 거절당했다. 미스 USA 측은 규정상 ‘생물학적 여성’만 참가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에 그린은 오리건주의 차별금지법을 위반했다며 주최 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미 연방 제9항소법원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법원은 예상을 깨고 미스 USA 주최 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재판부는 미인대회를 하나의 ‘의사 표현 행위’로 보았다. 주최 측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미국 여성상을 무대 위에서 표현할 자유가 있으며, 성전환자의 참가를 강제하는 것은 주최 측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여기서 대중의 혼란이 발생한다. 미스 아메리카는 성전환자의 우승을 인정했지만, 법원은 미스 USA가 성전환자의 참가를 거부한 것이 정당하다고 판결한 것이다.

두 대회는 이름이 비슷하지만 완전히 별개로 운영되는 단체다. 미스 아메리카는 수영복 심사를 없애고 사회적 가치를 좇았지만, 미스 유니버스 세계 대회로 이어지는 미스 USA는 여전히 수영복 심사를 유지하며 전통적인 미의 기준과 주최 측의 선택권을 법적으로 보장받았다.

브라이언 응우옌이 우승한 직후, 미스 아메리카 내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격렬한 토론이 벌어졌다. 일부 지역 심사위원들은 “대중의 반발이 너무 심해 대회의 후원금이 줄어들 수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실제로 응우옌의 우승 이후 몇몇 오랜 후원 기업들이 지원을 잠정 중단하거나 고심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돈과 명예, 그리고 사회적 가치 사이에서 주최 측이 깊은 앓이를 한 셈이다.


이후 큰 관심 속에 열린 상위 본선 대회인 ‘미스 뉴햄프셔’ 무대에서 응우옌은 다시 한번 도전에 나섰다. 이곳에서 우승해야만 미국 전역을 대표하는 ‘미스 아메리카’ 최종 결선에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최종 우승 실패였다.

그해 미스 뉴햄프셔의 왕관은 또 다른 참가자인 브룩 밀스에게 돌아갔다. 밀스는 지난 1995년 미스 뉴햄프셔 우승자였던 어머니의 뒤를 이어 왕관을 쓴 인물이다. 대회 사상 최초로 ‘2세대 우승자’라는 기록을 쓰며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로써 응우옌의 최초 기록은 주 예선 우승에서 멈추게 되었고, 미스 아메리카 전국 결선 무대 진출도 다음을 기약하게 되었다.

왕관의 무게, 그리고 남겨진 질문

미인대회는 오랫동안 시대를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해왔다. 인종 차별이 심했던 시절에는 백인 여성들만의 무대였고, 여성 인권 신장기에는 날 선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이제 그 거울은 성별의 경계라는 가장 근본적이고도 어려운 질문을 비추고 있다.

뉴햄프셔주의 작은 무대에서 환하게 웃으며 왕관을 썼던 19살의 성전환 여성, 그러나 더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도전을 멈춘 현실. 그리고 법원의 판결문을 받아 들고 굳은 표정으로 돌아선 또 다른 성전환 운동가.


두 여성이 마주한 상반된 현실은 오늘날 미국 사회가 겪고 있는 진통을 그대로 보여준다. 누군가에게는 포용과 진보의 상징인 그 왕관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공정함의 상실을 뜻하는 무거운 짐이 되고 있다. 무대의 조명이 꺼진 뒤에도, “여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깊은 메아리로 남아 무대 주위를 맴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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