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강남대 ‘인분 교수’ 제자 가혹행위 사건


강남대학교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있는 사립대학이다.

이 학교 회화디자인학부 장아무개 교수(52)는 국내 디자인계에서 상당한 권위를 인정받고 있었다.

그는 국무총리 표창과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고 정부에서 근정포장까지 받았다. 새누리당 정책자문위원을 맡아 정계에도 발을 넓혔다. 2006년부터는 디자인관련 협회의 회장을 맡아왔다.

대학원생인 전아무개씨(29)는 강남대에서 도시공학과 디자인을 복수 전공했다. 지방출신인 그는 수도권에서 혼자 객지생활을 하며 교수의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2010년 스승인 장 교수는 전씨에게 “내가 대표로 있는 협회에서 일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

전씨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흔쾌히 받아들였다. 부푼 마음으로 협회 사무국에 출근한 그는 곧이어 환상이 깨지고 만다. 장 교수는 업무에 서툴고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욕설은 기본이고, 일상적으로 폭언을 일삼았다. 그 강도는 점점 심해져 갔다.

급기야 2013년 3월부터는 폭행과 고문, 가혹행위가 시작됐다. 여기에는 협회에서 일하던 장 교수의 제자와 조카까지 가담했다. 대학 강사인 김아무개씨(남‧29), 장 교수 조카인 대학생 장아무개씨(남‧24), 대학원생인 정아무개씨(여‧26)였다.

장 교수는 전씨보다 어린 조카 장씨와 정씨에게 존댓말을 하도록 강요했다. 두 사람은 장 교수의 지시에 따라 전씨에게 반말을 했고, 업무를 지시하며 상전으로 군림했다. 장 교수와 세 명의 일당은 전씨를 마치 노예처럼 부렸다.

폭행은 일상적으로 이뤄졌다. 전씨는 장 교수 일당에게 야구방망이로 수 십 차례 폭행을 당해 전치 6주의 상해 진단을 받고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다. 때린 부위를 또 때려서 피부가 괴사돼 피부이식을 받았을 정도였다.

장 교수와 일당들은 전씨의 몸에 폭행 흔적이 남는 것을 우려해 물리적인 폭행 대신 가혹행위로 대신했다. 이를 위해 다양한 방법의 고문방법을 고안해 냈다.


장 교수는 전씨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면 며칠씩 굶기고 잠을 자지 못하게 괴롭혔다. A4 용지 한 박스를 오랜시간 들고 있게 하거나 한 팔로 한 시간 동안 엎드려 뻗쳐있게 하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1천 번씩 반복하게 했다.

전씨의 입에 재갈을 물린 후 노끈으로 묶고 얼굴에 비닐봉지를 씌워 40여 차례에 걸쳐 호신용 스프레이를 발사했다. 고추냉이 원액으로 캡사이신 보다 약 8배 강한 농축액 이었다. 이로 인해 전씨는 얼굴에 2도 화상을 입었다.

엽기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장 교수는 페트병에 자신의 똥과 오줌을 담아 “다시 태어나라”며 16차례에 걸쳐 강제로 먹였다. 30여 차례에 걸쳐 소변을 먹이기도 했다. 전씨는 거부하면 더욱 심한 보복으로 이어질까봐 어쩔 수 없이 받아 마셔야만 했다.

장 교수는 수시로 자신이 신고 있던 슬리퍼를 벗어 전씨의 뺨을 때렸는데, ‘쓰싸’(쓰레빠 싸대기)라는 은어로 지칭했다.

장 교수의 악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세 명의 일당들에게 폭행을 지시하고 이를 촬영하도록 시켰다. 폭행 장면은 아프리카TV 비공개방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며 지시대로 괴롭히는지 확인까지 했다. 일당들에게 카카오톡으로 가혹행위를 지시하고 보고도 받았다.

장 교수는 전씨의 임금까지 착취했다. 다른 직원들은 250~300만원을 주면서 전씨에게는 기분 내키는 대로 지급했다. 처음에는 70만원을 주다가 50만원, 30만원으로 깎아내렸고 나중에는 이마저도 주지 않았다.

더욱 기막힌 것은 장 교수는 시도 때도 없이 전씨에게 ‘벌금 명목’으로 돈을 요구했다. 협회 사무실 내에 이른바 ‘자치 규정’을 만들어놓고 ‘늦게 왔다’ ‘비호감이다’ ‘슬리퍼를 끌었다’ ‘업무하는데 실수했다’ 등의 명목으로 돈을 뜯었다.

예를 들어 전씨는 2013년 1월31일 월급으로 50만원을 입금 받았다. 하지만 불과 며칠 후인 2월5일 협회 통장으로 10만원을 이체했고, 2월22일에는 124만원을 벌금 명목으로 입금했다. 그러니까 월급으로 50만원을 주고 벌금으로 134만원을 뺏어간 것이다.

만약 벌금을 내지 않으면 낼 때까지 전씨를 괴롭혔다. 전씨는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으면서 벌금을 내려고 대출을 받아 4천만 원의 빚까지 졌다. 결국 그는 신용불량자 신세가 됐다.

장 교수는 전씨가 도망가거나 신고하지 못하게 법적으로 옭아맸다. 전씨의 실수로 회사(협회)에 금전적 피해를 끼쳤다며 20여 차례에 걸쳐 1억3000만원의 채무이행각서를 쓰게 하고 변호사를 통해 공증까지 받았다. 사실상 노예계약이나 다름없는 각서였다.


장 교수는 자신의 범행이 탄로날까봐 전씨와 가족들의 연락도 최소화시켰다. 1년에 명절 때 딱 하루만 고향 집에 가도록 했고, 부모님에게서 전화가 오면 스피커폰으로 통화하게 하거나 녹음을 시켰다. 전씨의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수시로 점검했다.

전씨가 신고하지 못하도록 24시간 감시했고 “도망가면 아킬레스건을 잘라버리겠다”며 협박했다. 이 때문에 전씨는 도망가거나 외부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장 교수는 전씨에게 돈을 값으라며 음식점 아르바이트도 강요받았다. 그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10까지 12시간 동안 식당에서 일했다. 퇴근 후에는 협회로 복귀해 사무실 업무를 봐야 했다. 밤샘을 할 때도 부지기수였다. 전씨의 이런 생활을 5~6개월 정도 이어졌다. 전씨에게는 하루하루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장 교수는 자신의 범행을 영원히 감출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건 그의 착각이었다. 전씨와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동료가 구세주가 됐다. 그는 전씨의 불안해하는 행동, 손과 얼굴 등에 난 상처를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전씨를 설득해 모든 사정이야기를 들은 동료는 전씨에게 “증거물을 확보하라”고 조언했다. 전씨는 이때부터 증거들을 차곡차곡 모았다. 동료가 2015년 5월 경찰에 장씨와 일당을 신고하면서 사건 전모가 드러난다.

장 교수는 자신의 가혹행위와 관련해 경찰에서 “제자의 발전을 위해 한 일”이라는 믿기 어려운 해명을 했다.

경찰 수사에서 장 교수의 여죄도 드러났다. 2012~2014년 교육부 산하 기관이 지원하는 학술지 지원사업에 허위 견적서를 제출, 3천300만원의 정부 출연금을 편취하고, 여제자 정씨와 함게 디자인협회와 학회, 디자인 관련 업체 법인 자금 1억1100만원을 횡령한 혐의도 포착됐다.

장 교수는 여기서 빼돌린 돈을 제자 정씨의 등록금과 오피스텔 임대료를 내주고, 외제차 구입, 유명리조트 회원권 구입 등 본인의 사치품을 구입하는데 사용했다.

이에 장 교수는 공금을 사적으로 쓴 것에 대해서는 ‘취득할 의사는 없었고 잠시 빌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제자 정씨의 등록금과 오피스텔 임대료를 내준 것도 직원의 복리후생 및 장학금 차원이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협회의 다른 직원들은 정씨와 같은 혜택을 제공받지 못했다.

그런데 장 교수와 정씨의 관계가 수상했다. 두 사람은 사제지간으로 26년의 나이차가 난다. 이들이 나눈 카카오톡 내용을 보면 서로에게 ‘뽀뽀’ 이모티콘을 보내고 장씨는 정씨를 ‘뿌나’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경찰은 장 교수와 직원 김씨, 조카 장씨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여제자인 정씨는 불구속 입건했다. 장 교수는 처음엔 오리발을 내밀었다가 경찰이 증거를 제시하자 법원에 1억 원을 공탁하며 선처를 부탁했다. 장 교수는 횡령과 사기죄가 추가됐다.

1심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장 교수에게 집단폭행, 상해 주도 및 횡령죄 등을 추가해 도합 징역 10년, 제자인 김씨와 조카 장씨에게는 집단폭행 및 상해 가담을 인정해 각각 징역 6년을 구형했다. 여제자 정씨에게는 직접 폭행하지 않았으나 피해자 폭행에 사용된 야구방망이와 최루가스를 구입하고 일부 범행을 지시해 죄질이 불량하다며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장 교수는 최후 진술에서 “저도 두 아이를 둔 아빠로, 짐승 같은 짓을 했다.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겨 정말 죽고 싶다. 또 저 때문에 공범이 된 제자들에게 미안하다. 제자들은 선처해 달라. 정말 잘못했다”라며 선처를 호소했다.

1심 재판부는 “육체적 가혹행위를 넘어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한 정신적 살인행위”라고 규정하며 장 교수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이는 대법원이 정한 양형 기준의 상한(징역 10년4개월)과 검찰 구형량(징역 10년)을 넘는 무거운 형량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공소사실의 횡령부분 만으로도 죄책이 무거운데 제자인 피해자의 업무태도를 빌미로 극악한 폭행과 고문을 일삼았다”며 “고통을 견디지 못한 피해자가 자살을 생각한 것을 알고도 반성치 않고 오히려 분개해 가혹행위를 멈추지 않는 등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양심마저 버렸다”고 판시했다. 제자인 김씨와 장씨 그리고 정씨에게는 구형량대로 각각 징역 6년과 징역 3년이 선고됐다.

1심 판결 후 장 교수는 전씨에게 400만원을 밀린 급여와 이자, 위자료로 지급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중 위자료는 고작 130만원에 불과하다. 이에 전씨의 어머니는 “아들이 고통 받은 대가와 130만 원을 바꿀 수 있느냐”면서 눈물을 흘렸다.


장 교수와 일당들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2심에서 장 교수 등은 피해자와 합의했다며 ‘합의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자세한 합의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합의서는 판결에도 영향을 미쳤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제출한 합의서가 본인의 자발적 의사로 작성됐으며 진정성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면서 장 교수에게 징역 8년, 제자 김씨는 징역 1년6월, 조카 장씨는 징역 4년, 여제자 정씨는 징역 2년으로 감형됐다. 이중 김씨는 형량이 무려 4년6개월이나 줄었다.

이에 재판부는 “친구였던 김씨가 진지하게 반성하고 사과를 했으며, 법원 조사 결과 전씨는 ‘김씨가 없었으면 다른 피고인과의 합의서를 쓰지 않았을 것’이라 말했다”며 “전씨가 용서를 하고 사회 복귀 첫걸음을 떼는 데 김씨의 역할이 컸던 점을 고려하면 공범들과 같은 잣대의 형량은 적절치 않다”고 설명했다. 김씨를 제외한 나머지는 상고했지만 모두 기각돼 원심이 확정됐다.

대법원은 “원심 판결에 채증 법칙을 위반해 사실을 오인하거나, 공범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판단했다. 장 교수가 재직했던 강남대는 인사위원회를 열어 그를 파면조치했다.

범죄전문가들이 본 인분 교수의 두 얼굴

가해자인 장아무개 교수는 어떤 성격의 소유자였을까.
그에 대한 평판은 엇갈렸다. 피해자 전씨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장 교수가) 원래 화나면 못 참는 성격이다. 분노조절장애 같은 것이다. 이 분 앞에서 울고 갔던 교수님도 한두 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반면, 평소 장 교수를 알던 지인들의 말은 달랐다. 이들은 그를 “열정적이고 리더십이 있는, 호탕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설명했다.
범죄학 전문가들은 ‘인분 교수사건’을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했다. 이들의 언론 인터뷰를 보면 한국범죄학연구원 김복준 연구위원은 “피해자 입장에서는 가해 교수는 처음부터 신격화된 존재였을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첫 폭행을 견뎠고 이후로도 폭행이 지속되면서 이른바 ‘매 맞는 아내 증후군’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결국 피해자는 폭력에 항거하지 못한 채 무력화되고 자존감을 잃으면서 그렇게 노예생활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고 분석했다.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사회적으로 격리된 집단이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며 “그 속에서 폭력적 성향을 가진 개인이 권력을 남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 교수는 또 “심리학 교과서에서나 나올 법한 상황이 벌어졌다. 과거에도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이나, 순종 실험, 이런 것들이 있다”라며 밀그람 실험결과를 예로 들었다. 이것은 제2차 대전 직후 미국의 예일 대학 교수였던 스텐리 밀그램이 실행한 ‘복종 실험’이다.
당시 밀그램 교수는 “2차 대전에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이 나치의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자 일반 사람을 대상으로 권력에 사람들이 얼마나 복종하는지를 실험했다. 그는 이 실험을 통해 권위 앞에서 개인의 도덕이나 믿음이 얼마나 약한 것인지를 증명했다.


이수정 교수는 “성인들도 사회적으로 격리되는 특수한 상황이 되면 권위를 가진, 예컨대 교수처럼 생사여탈권을 쥔 사람의 부당한 요구를 순응할 수밖에 없다는 연구들이 있다”며 이 사건의 특수한 상황에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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