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0명 살해 자백’ 연쇄살인마 헨리 리 루카스
헨리 리 루카스(남)는 미국 최악의 연쇄 살인마 중 한 명이다.
그는 1936년 8월 버지니아주에서 9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미개척 산림지대의 통나무 오두막집에서 가난에 허덕이며 살았다.
그의 아버지는 불법으로 술을 만들어 파는 밀주 제조업자였고, 알코올 중독자였다. 술에 취해 철길을 걷다가 달려오는 화물열차에 치어 목숨을 건졌으나 두 다리를 잃고 불구가 됐다. 그의 어머니 비올라는 몸을 파는 매춘부였다.
비올라는 아들 루카스를 지독하게 학대했다.
그녀는 집에 남성들을 끌어들여 매춘을 했고, 루카스에게 손님과 관계하는 장면을 보게 했다. 루카스에게 여자 옷을 입혀 학교에 보내기도 하는 등 성적으로 학대했다. 말을 듣지 않거나 반항하면 밥을 굶기고 매질과 칼질로 학대했다.
한 번은 나무판으로 루카스의 머리를 세게 내리쳐 24시간동안 혼절한 일도 있다. 비올라는 루카스가 죽어가는 데도 방치했고, 매춘 손님이 병원에 데려가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루카스에게 벌을 준다며 그가 가장 아꼈던 애완동물을 죽이기도 했다.
루카스는 13세 무렵부터 동물학대와 수간(동물과 성관계)을 즐겼다. 동물을 잡기 위해 여러 곳에 덫을 놓았다. 잡힌 동물은 목을 베고, 사체와 성교하며 쾌락을 느꼈다.
그는 15세 때인 1951년에 처음 살인을 저질렀다. 16세 소녀를 강간하려고 하다 반항하자 목을 졸라 살해한 후 시신은 숲에 암매장했다. 1954년 18세의 루카스는 강도죄로 징역 6년형을 선고 받고 1959년 9월에 풀려났다.
1960년 2월 어머니 비올라와 말다툼을 하다가 칼로 목을 찔러 살해했다. 루카스는 2급 살인죄로 기소돼 40년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정신이상인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판단 하에 주립 병원에 이송됐다.
그곳에서 9년을 복역한 뒤 1969년 가석방됐다. 이후 다른 가족에게 얹혀살거나 잡다한 직업을 전전했지만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채 떠돌이 삶을 살았다.

루카스의 범죄 인생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10대 소녀 두 명을 성희롱한 혐의로 체포됐다. 1975년부터는 본격적인 살인행각이 시작된다. 1976년 플로리다 주 잭슨빌에서 살인 동료이자 공범인 5살 아래의 ‘오티스 툴’을 만나면서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였다.
당시 그의 나이 40세였다.
1941년생인 툴은 지적장애를 앓고 있었다. 그의 지능지수는 ‘IQ75’에 불과했다. 그는 루카스와 마찬가지로 어릴적부터 부모에게 학대당하면서 불우하게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였고, 어머니는 악마를 숭배하는 광신자였다.
툴은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어머니와 자랐으며 외할머니도 악마 숭배자로 사람의 신체 일부로 장식물을 만들었다. 외할머니는 툴을 동행시켜 주기적으로 지역의 공동묘지를 찾아가 재료를 구했다. 툴은 6세 때부터 이웃집에 불을 지르는 상습적인 방화범이기도 했다.
그는 어머니와 할머니의 학대를 피해 조카 딸 베키 파월과 함께 집에서 도망쳐 나왔다.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살인 행각을 벌였다. 루카스를 만날 때 이미 4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이었다. 14세 때인 1961년 여행중이던 세일즈맨을 시작으로 살해행각이 시작됐다. 베키는 9살의 어린나이에 툴과 다니면서 끔찍한 살인 공범이 됐다.
루카스와 툴은 이미 타락한 영혼들이었다. 루카스는 어린 베키를 애인으로 삼았다. 1983년 루카스와 베키는 말다툼을 했고, 화를 참지 못한 루카스는 베키를 흉기로 살해한 후 시체는 사막에 버렸다. 이때 베키의 나이 13살이었다.
얼마 뒤 루카스는 불법 무기 소지 혐의로 텍사스 주경찰에게 체포됐다. 그는 교도관에게 자신의 범죄를 순순히 털어놓았다. 교도관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내용이었다. 루카스는 그의 말이 사실이라며 82세의 ‘케이트 리치’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그에 따르면 케이트를 죽이고 시체를 강간했으며, 그 시체를 집에 가져가 토막낸 후 난로에 던져 넣고 태웠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사실로 드러났다. 그러자 미국 전역에서 미제사건들이 새삼 주목받기 시작했다.

35개 주의 경찰이 미제 살인사건 210건을 들고 와 루카스를 조사하려 했다. 이에 엄청난 혼란이 빚어졌다. 조사가 진행될수록 루카스의 범죄 건수는 늘어났다.
루카스는 27개 주에서 여성들을 살해했으며, 나일론 끈, 전화선, 온갖 구경의 총기, 칼, 꽃병, 망치, 도끼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그가 인정한 살인 건수는 들쭉날쭉했다. 처음에는 600건이라고 했으나 중복되는 것을 제외하고도 17개 주에서 360건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걸 그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루카스는 모든 살인사건들을 자신이 한 것처럼 인정하면서 바깥바람을 쐬고 싶었던 것이다. 실제 그는 여러 주의 사건 현장들을 다니며 호텔에서 잠자고 좋은 음식을 대접 받았다. 사건을 해결하고 싶었던 경찰들은 루카스의 입에 놀아났던 것이다.
루카스는 나중에 자신이 했던 말을 부인하면서 무수한 사건들에 대한 자백이 모두 장난이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루카스의 범행으로 11건 만을 인정해 기소했다. 어머니를 죽인 것에 대해서는 이미 죗값을 치렀기 때문에 해당되지 않았다.

루카스는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1998년 당시 텍사스 주지사인 조지 W. 부시는 사형집행을 무기한 연기한다. 루카스의 살인행위에 대한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그는 2001년 55세의 나이로 교도소 독방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오티스 툴은 방화범으로 붙잡혀 감옥에서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공개수사 프로그램인 ‘아메리카스 모스트 원티드’의 진행자인 아나운서 존 월시의 아들 ‘아담 월시’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나중에 말을 바꿨지만 존 월시는 툴이 자신의 아들을 죽였을 것으로 믿고 있다. 툴은 루카스 보다 5년 앞선 1996년 9월에 간기능장애로 사망했다.
한편, 1984년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미아 방지 프로그램 ‘코드 아담’(Code Adam)은 ‘아담 월시’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코드 아담은 시설봉쇄 등을 통해 미아 발생을 방지하고 10분 내 아동을 찾는 미국의 미아 찾기 프로그램이다. 우리나라도 2014년 7월부터’한국형 코드아담인 ‘실종예방지침’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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