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살해하고 시신 옆에서 치킨 시켜먹은 부모
2016년 1월13일 부천교육지원청은 장기결석자 전수조사에 나섰다.
각 초등학교에는 장학사가 파견됐다. 원미구의 한 초등학교에도 장학사가 조사를 나왔다. 이 학교에는 3년9개월 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는 최건우군이 있었다. 최군은 입학 한달 후부터 등교하지 않았다. 장학사는 학교 측에 최군이 등교하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학교 측에 따르면 최군은 2012년 3월 또래들과 함께 입학했다. 얼마 후 같은 반 여학생의 얼굴을 연필로 찌르고 옷에 색연필로 낙서하는 등 말썽을 피웠다. 학교 측은 최군을 학생폭력자치대책위원회에 회부했다. 최군의 부모는 “홈스쿨링을 하겠다”며 4월30일부터 학교에 출석시키지 않았다.
최군의 담임교사는 어머니 한소영(35)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가 왜 학교에 오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한씨는 “대안학교에 보내거나 집에서 가르치겠다”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해당 학교 행정실은 5월30일과 6월1일 최군 거주지 관할 주민센터에 “장기 결석하는 학생이 있으니 출석을 독촉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심곡3동 주민센터는 학교에서 공문을 받고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묵살했다.
같은 해 8월31일 학교는 90일 넘게 장기 결석한 최군을 ‘정원외 관리대장’에 등록했다. 이렇게 최군은 행정관청의 무관심 속에 잊혀져 갔다. 그러다 2015년 11월 집에서 학대받다 탈출한 ’16kg 여아’ 사건이 터지면서 장기결석자들에 대한 전수조사에 들어갔다.
장학사는 최군의 어머니 한씨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만나는 것을 극구 회피했다. 아이의 소재를 묻자 한씨는 “2012년 가출해서 경찰에 실종신고 했다”고 말해 경찰에 확인해보니 거짓말이었다. 장학사는 11월14일 오전 원미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최군 소재에 대한 수사를 요청했다.
이날 오후 경찰관 3명, 주민센터 사회복지사 2명, 학교관계자 2명 등 8명이 함께 최군 집을 방문했다. 한씨가 횡설수설하자 경찰은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경찰은 이튿날인 11월15일 한씨를 상대로 남편의 소재를 확인해 집 근처에서 배회 중이던 최경원(35)을 발견했다. 그는 경찰을 보자마자 달아났으나 곧바로 붙잡혔다.
경찰은 최씨를 상대로 아들의 소재를 따져 물었다. 그는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다가 “죽었다”고 실토했다.
최씨는 “2012년 10월 초 평소 목욕을 싫어하던 아들을 씻기기 위해 욕실에 강제로 끌고 들어가다가 아들이 앞으로 넘어지면서 의식을 잃었다”며 “이후 아들이 깨어났는데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한 달간 방치했고 같은 해 11월 초 숨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아들이 사망한 뒤 시신을 훼손해 비닐에 넣어 냉동상태로 보관하다가 학교 관계자와 경찰이 집에 찾아올 것이란 아내의 말을 듣고 시신이 발견될 것이 두려워 최근 인천 지인 집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경찰은 최씨가 말한 지인의 집을 찾아가 심하게 훼손된 시신이 들어있는 운동용 가방 2개를 발견했다. 최씨 지인은 “이삿짐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보관해준 것 뿐”이라며 “가방에 뭐가 들었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경찰은 최씨를 상대로 아들 사망원인을 집중 추궁했다. 그는 “스스로 넘어져서 의식을 잃었다”는 말을 반복하며 살인 혐의는 부인했다. 하지만 최씨의 말은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경찰 수사결과 드러난 최씨 부부의 엽기 만행은 경악할 정도다.
최씨는 아들이 5살 때인 2010년 어린이집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또래 친구들과 반복적으로 말썽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때리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입학 이후에는 폭행 강도를 더욱 높였다. 최씨는 경찰에서 “권투하듯이 세게 때렸는데 이렇게 때리다가는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12년 11월2일 저녁 최씨는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왔다. 그는 아들을 욕실로 끌고 가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기 시작했다. 이것으로도 부족했는지 엎드리게 하고 발로 차는 등 2시간 동안 무차별 폭행을 가했다. 당시 최군의 몸무게는 16kg 정도였다. 최군은 지속적인 폭행과 굶주림으로 탈진해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대소변도 누워서 봐야 할 정도였다.
이런 아들을 때리느라 힘이 빠졌는지 최씨는 이내 잠에 골아 떨어졌다. 아빠가 잠을 잘 때 최군은 죽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부모는 아들을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집에 방치했다. 아내 한씨는 다음날인 11월3일 아침 죽어가는 아들을 두고 직장에 출근했다.
최씨는 오후 5시가 돼서야 잠에서 깼다. 아들의 상태를 확인해보니 의식이 없었다. 그는 병원으로 옮기지 않고 아내에게 전화해 “애가 이상하니 집에 오라”고 했다. 오후 5시30분쯤 한씨가 귀가했지만 최군은 이미 숨져 있었다.
최씨는 아내에게 “딸(5세)과 친정에 가 있으라”며 내보냈다. 오후 8시30분쯤 한씨는 친정에 딸을 맡기고 남편이 있는 집으로 갔다. 이때 최씨가 “배고프다”고 말하자 함께 아들의 시신을 옆에 두고 치킨을 시켜 먹었다. 허기를 채운 부부는 아들의 사체 처리방법에 대해 논의하다가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토막 내서 유기하기로 결정한다.
부부는 5∼6일 대형 마트 등지에서 시신 훼손에 사용할 흉기와 둔기 등 다양한 도구를 구입했다. 그리고 11월6일부터 사흘간 집에서 도구를 이용해 아들의 시신을 심하게 훼손했다. 토막 낸 시신 중 일부는 집 냉장고 냉동실에 보관했다. 냉장고에 들어가지 않는 부위인 손목과 발목 부분은 비닐봉지에 담아 음식물 쓰레기 수거함에 버렸다.
피부와 장기 조직은 집과 야외 공공 화장실 변기를 통해 흘려보냈다. 신원을 알 수 있는 얼굴 부위는 집안 냉장고 냉동실에 보관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약 4년 동안 보낸 것이다.
최씨는 경찰에 붙잡히기 직전 인터넷을 통해 경찰 체포 시 대응요령을 검색한 사실도 드러났다. 그는 아내 한씨가 경찰에 출석하자 체포시 대응요령 등을 검색한 결과를 보내주기도 했다. 경찰은 프로파일러를 투입해 최씨 부부의 심리를 분석했다. 사이코패스 성향은 나타나지 않았다.

경찰은 최씨와 아내 한씨에게 “극도의 배고픔과 탈진 상태인 아들의 치료를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책임이 있다”며 살인죄를 적용했다. 검찰은 최씨 부부를 살인, 사체손괴와 유기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최씨에게 징역 30년에 몰수형, 전자장치부착형 등을, 한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이들은 “형량이 높다”며 항소를 제기했으나 2심은 원심을 인용했다.
한씨는 상고를 포기했으나 최씨는 상고를 신청하며 재차 양형부당을 주장했다. 이에 대법원은 “피고인의 연령과 지능, 환경, 피해자와 관계, 범행의 동기 수단 및 결과 범행 후 정황 등을 따져볼 때 원심 판결이 부당하지 않다며 최씨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최씨는 누구인가
최씨는 2008년부터 부모 등 가족들과 연락을 끊고 지냈다. 2003년 한씨를 만나 그해 11월부터 동거를 시작했다.
2005년 5월 최군을 낳은 후에야 혼인신고를 하고 법적 부부가 됐다.
최씨는 일정한 직업이 없었다. 20대 초반부터 게임에 푹 빠져 살았고, 결혼 당시에는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게임 캐릭터를 팔아 생계를 유지해 왔다.
그는 또 여러차례 범죄 전과가 있었다. 2004년에는 인터넷 포털과 전자상거래 사이트에 카페를 만들어 놓고 사제폭탄, 청산가리, 엑시터시 등을 판다고 광고해 이를 보고 연락해 온 피해자들에게 430여만 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2005년 6월에는 사기혐의로 구속돼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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