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청소년 범죄 사각지대 ‘가출 팸’의 함정


청소년들의 가출은 범죄 유혹에 빠져들거나 범죄 피해자가 되는 지름길이다.

요즘 청소년들은 무턱대고 집을 나가는 경우는 드물다. 철저히 계획을 세운 다음 가출에 나서는 경향이 있다.

끼리끼리 문화에 익숙한 청소년들은 가출 전에 ‘동반 가출’을 도모한다. 본능적으로 일행을 찾는 것은 청소년들의 습성이다. 같은 처지의 친구들에게 상처받은 마음을 의지하고, 가출에 따른 외로움과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서다.

이들은 인터넷 가출 카페나 채팅 앱 등을 통해 가출할 친구들을 찾기 시작한다. 포털사이트 카페와 SNS에는 각종 가출 관련 커뮤니티가 개설돼 있다.

이곳에는 가출 청소년들이 동반 가출할 일행을 찾거나 가출 관련 글이 넘쳐난다. ‘동반 가출’ ‘일행 구함’ ‘숙식 제공’ 등의 글이 계속해서 올라온다.

가출할 친구들을 찾으면 날짜를 정해 가출을 실행한다. 이들은 가출 후 일행이 되어 함께 다닌다. 마음이 맞는 경우에는 3~5명이 아예 팸(Family)을 이루어 함께 지낸다.

이른바 ‘가출 팸’이다. 청소년들에게 ‘가출 팸’은 탈출구나 해방구로 인식되기도 한다. 일단 가출 팸이 구성되면 나이 등의 순서에 따라 역할을 분담한다. 주택가 반지하나 원룸 등을 얻어 숙식을 하는데, 이때 보증금은 각자 가출할 때 집에서 갖고 나온 돈으로 해결한다.


그런 다음 PC방, 당구장, 주유소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아 월세를 내고 나머지는 생활비로 쓴다. 처음에는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해방감을 맛보지만 얼마 가지 못한다.

가출 팸은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가족을 의미하지만 ‘아주 위험한 동거’다. 이런 생활은 일탈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흡연, 음주, 본드 흡입 등을 자연스럽게 경험하기도 한다. 마약에 손댄 사례도 있었다.

일시적으로 해방감을 만끽할지 몰라도 범죄에 노출되거나 직접 범죄에 나서며 ‘비행 청소년’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여자아이들의 경우에는 성폭행을 당하거나, 팸 안에서 문란한 성관계를 맺기도 한다. 조기 임신으로 아이가 아이를 갖는 경우도 있다.

돈벌이가 여의치 않고 생활비가 떨어지면 ‘생계형 범죄’에 빠져든다. 일단 돈이 떨어지면 ‘어떻게 돈을 마련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나이가 어려 일을 못하거나 벌이가 마땅하지 않을 때는 결국 범죄에 빠져드는 수순을 밟는다.

보통 남자들은 뻑치기, 삥뜯기, 아리랑치기, 소매치기, 절도, 차량털이 등에 나서고, 여자들은 조건만남 등을 통한 성매매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생계형으로 시작했지만 범죄가 반복되면서 상습범이 되어가는 전철을 밟는다.

이들의 범죄 형태는 다양하고 일부는 성인보다 더 잔혹하다. 각각 역할 분담을 해서 함께 범죄에 나서는 ‘공모형 범죄’는 심각하다. 조건만남을 미끼로 성인을 유인해 폭력을 휘둘러 돈을 갈취하는 것이 대표적인 수법이다.


이런 경우 먼저 여자 청소년을 내세워 채팅 앱(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성 매수자를 찾는다. 피해 남성이 미끼에 걸려들면 모텔로 유인한 후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일당들이 집단 폭행해 항거불능 상태로 만든다.

이 과정은 협박을 위해 영상으로 촬영한다. 그런 다음 피해자를 위협하거나 협박해 금품을 빼앗는다. 이와 비슷한 사건은 서울을 포함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다.

2023년 1월 인천에서는 10대 남녀 학생 6명이 성매매 조건으로 40대 남성을 모텔로 유인해 집단 폭행한 후 금품을 갈취한 혐의로 입건됐다. 이중에는 초등학교 5학년도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SNS를 통해 피해 남성을 인천 미추홀구의 한 모텔로 불러냈다. 그가 모텔 객실로 들어오자 기다리고 있던 일당들은 각목, 소화기 등 둔기로 무차별 폭행한 후 금품을 빼앗았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차라리 돈을 줄게”라고 애원했으나 이들의 폭행은 멈추지 않았고 낄낄대며 조롱하기까지 했다. 일당 중 한 명은 폭행 장면을 촬영한 후 자랑하듯 온라인을 통해 유포했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 일당 중 일부는 가출 청소년들이었다.

10대의 나이에 범죄에 빠져들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할 뿐 아니라 성인이 돼서도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가평 계곡살인 사건’의 주범 이은해가 대표적이다. 그도 가출 팸에 들어가면서 범죄의 늪에 빠졌다. 이씨의 중학교 동창에 따르면 이은해는 10대 시절 가출 팸 무리에 속해 있었다.


이때부터 조건만남을 하거나 절도 행각에 나섰다. 범죄는 생계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됐다. 돈벌이로 남자들을 만났고, 돈을 갈취한 후 사치 향락을 충족시켰다. 이은해에게 결혼은 또 하나의 진화된 생계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가출 청소년들은 또 성폭행 등 범죄 피해에 무방비 노출돼 있다. 법적 보호자가 없고 가출 상태이다 보니 피해를 입어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게 된다.

2019년 6월 경기도 오산에서는 성인이 가출 팸을 만들어놓고 청소년들을 유인한 후 불법행위를 시키다 가출 팸을 탈퇴하자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심지어 조건만남에 나섰다가 범죄자에게 목숨을 잃기도 했다. 2014년 11월 충북 증평에 사는 중학교 2학년 한아무개양(15)은 어머니에게 “며칠 바람 좀 쐬고 오겠다”는 쪽지를 남기고 가출했다.

한양은 그 길로 서울에 올라왔고, 돈 벌이가 마땅치 않자 조건만남의 유혹에 빠지고 말았다. 이듬해 3월 한양은 채팅 어플을 통해 30대 남성인 김아무개씨와 조건만남이 성사됐다. 한양은 모텔 앞에서 성매수남을 만나 객실로 들어갔지만, 얼마 후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경찰 수사결과 김씨는 여성들과 성관계를 가진 후 미리 준비한 범행도구를 이용해 저항을 무력화시킨 후 돈을 갈취하는 상습 범죄자로 드러났다. 그는 경찰에서 “한양과 성관계 도중 다툼이 있었고, 미리 준비한 마취제를 이용해 잠들게 한 후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가출 청소년이 성인남성과 조건만남을 하다 향정신성 의약품인 케타민을 투약하고 대마를 흡연하다 적발된 사례도 있었다.

가출 청소년이나 가출 팸의 문제는 대안이 마땅치 않다. 가출을 강제로 막을 수 없는 반면 가출을 부추기는 온라인상의 커뮤니티는 넘쳐나고 있다. 가출 청소년이 어렵게 학교나 가정으로 돌아가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또다시 가출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현실이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2월 발표한 ‘위기청소년 지원기관 이용자 생활실태조사’를 보면 가출의 주된 원인은 ‘가족과의 갈등’(69.5%)이 가장 많았다. 이어 ‘자유로운 생활’(44.3%), ‘부모·형제 등 가족의 폭력’(28.0%) 등의 순이었다.

정부도 위기의 청소년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 놓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는 가출 청소년들이 머무를 수 있는 쉼터 132개가 운영 중이다. 이곳에서는 가출 청소년들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한다.

아울러 가정·학교·사회로 복귀해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일정 기간 보호하면서 상담·주거·학업·자립 등을 지원한다.

문제는 ‘가출 팸’ 등 자유로운 생활에 익숙한 아이들이 쉼터 같은 ‘제도권 간섭’을 받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쉼터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 그들만의 공간인 ‘가출 팸’으로 돌아가는 일도 상당하다.


청소년 전문가들은 거리의 아이들을 가정과 학교로 돌려보내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가출 청소년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를 통해 근본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 <박화영>은 가출 팸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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