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탈옥

국내 최초 미성년자 사형수가 된 ’10대 가정파괴범’의 정체


국내 범죄역사상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10대 미성년자는 총 세 명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부녀자들을 상대로 한 ‘가정파괴범’이었다는 사실이다.

1984년 10월7일 새벽 3시쯤, 경남 울산시 우정동에서 김아무개(19) 등 4명은 범행대상을 물색하고 있었다. 이때 귀가하던 정아무개양(20)을 목격하고 훔친 봉고차를 이용해 납치했다. 이들은 정양을 인근 야산으로 끌고가 폭행하고 잔인하게 살해해 암매장했다.

김군 일당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약 두 달 동안 모두 32차례에 걸쳐 부녀자들만을 상대로 강도강간을 일삼았다.

검찰은 강도살인·강도강간 등의 혐의를 적용해 이들 5명 전원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1985년 5월21일 부산지법 울산지원 형사부(재판장 이상현 부장판사)는 주범인 김군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이아무개(18) 등 2명에게 무기징역, 박아무개(18) 등 2명에게는 각각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이들이 비록 미성년자들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느낄 만한 나이인데 약한 부녀자들만을 상대로 잔인한 범죄를 상습적으로 저지르는 등 가정과 사회의 미풍양속을 깬 행위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며 사형을 선고한 이유를 밝혔다.

당시 재판부가 이례적으로 10대 미성년자에게 극형을 선고한 것은 가정파괴범 등 흉악범에 대해서는 미성년자라고 해도 단호하게 응징해야 한다는 사회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호주 상원의원, 앰네스티 회원 등 외국인 16명은 법무부장관 등에 사형만은 면할 수 있게 해달라는 탄원서를 보내왔다.

이들은 탄원서에서 김군 등에 대한 사형선고는 미성년자에 대한 사형선고를 제한한 국제인권규약의 정신에 위배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군 등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2심 재판부는 박군 등은 징역 7년으로 감형했지만 나머지는 원심을 그대로 인용했다. 1986년 2월26일 대법원은 김군에 대한 사형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범행당시 18세 남짓한 미성년자라는 점을 들어 관대한 처벌을 호소하고 있으나 18세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느낄만한 연령일 뿐더러 더욱 약한 부녀자들만을 골라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는 등 가정과 사회의 미풍양속을 깬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로써 김군은 형사사건 미성년자 피고인에게 사형이 확정된 첫 사례가 됐다. 다만 김군에 대한 형이 실제 집행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배진순‧김철우 사형 집행

1991년 8월29일 대법원은 특수강도강간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철우(19), 배진순(20) 등 2명의 상고를 기각하고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공범인 박영환(20), 김권석(20) 등도 원심대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이들 일당은 10대의 나이에 가정집에 침입해 부녀자 5명을 가족 앞에서 성폭행한 가정파괴범이다.

1990년 6월12일 새벽 4시40분쯤, 서울 강동구 둔촌동 강아무개씨(여·41) 집 안방에 칼을 들고 침입해 강씨의 딸(21)을 4명이 번갈아 성폭행하고 1500여만원을 터는 등 10여차례에 걸쳐 부녀자 성폭행과 강도짓을 일삼아온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김철우는 살인 전과가 있었으나 배진순은 강도 전과 2범에 불과한데도 사형이 확정됐다.

1995년 11월2일, 흉악범 19명에 대한 사형이 전격 집행된다. 지존파 두목 김기환 등 일당 6명과 택시를 이용해 부녀자를 연쇄 납치해 살해한 온보현 등이다. 이날 ‘배진순·김철우’도 처형됐다.

다시 정리하면 한국 범죄역사상 10대 미성년자가 사형이 선고된 것은 3명이며, 이중 2명은 형이 집행됐다. 10대 중 최초 사형이 선고된 김군의 형 집행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살인을 저지르지 않고 사형이 확정돼 집행된 것은 배진순이 처음이다.


이것은 잔인한 범죄와 가정파괴범에 대해서는 미성년자라고 해도 엄단하겠다는 사법부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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