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화제

영국판 ‘과속스캔들’ 13세 아빠 15세 엄마의 반전


2008년 12월 한국 극장가를 뜨겁게 달군 영화가 있다. 배우 차태현과 박보영이 주연을 맡은 영화 <과속스캔들>이다.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는 연예인 남현수(36)에게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딸이라며 미혼모인 황정남(22)이 아이를 업고 찾아온다. 그제서야 정남은 오래 전 연상여자와의 속도위반 연애로 낳은 친딸이라는 걸 기억해내고 멘봉에 빠진다.

영화 속 설정에 따르면 현수는 중학교 3학년 때, 그 딸이자 남자친구와의 속도 위반으로 아들을 낳은 정남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아이를 가졌다. 영화는 두 사람이 만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담고 있다. 그런데 영화 개봉 두 달 뒤 이 황당한 일이 영국에서 실제로 일어났다.

알피 패튼(왼쪽)과 챈들러 스테드먼(오른쪽).

120cm 소년, 아빠가 되다

2009년 2월9일, 영국의 타블로이드지 <더 선>(The Sun)을 비롯한 주요 언론들은 일제히 한 장의 사진을 1면에 실었다. 사진 속 주인공은 앳된 얼굴의 13세 소년 알피 패튼(Alfie Patten)과 그의 여자친구인 15세 소녀 챈들러 스테드먼(Chantelle Steadman)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챈들러가 건강한 여자아이를 출산했고, 패튼이 그 아이의 친아버지라고 했다.

이들이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출산을 불과 몇 달 앞둔 임신 12주 차 무렵이었다. 평소 체중이 늘고 복통을 호소하던 챈들러가 병원을 찾았다가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알피와 챈들러가 약 3개월 전 가졌던 단 한 번의 성관계가 임신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이런 사실이 부모에게 알려질까 두려웠던 두 사람은 고민 끝에 아이를 낳아 기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당시 패튼은 아버지가 아닌, 돌봄을 받아야 할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그의 키는 120cm 안팎이었고 변성기조차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학생 신분이었기에 아이를 부양할 경제적 능력은 전무했다. 패튼이 수중에 쥘 수 있는 돈은 가끔 아버지가 쥐여주는 용돈 10파운드(당시 한화 약 2만 원)가 전부였다.

알피 패튼(왼쪽)과 챈들러 스테드먼(오른쪽).

패튼은 18주가 되었을 때 챈들러의 임신 사실을 부모에게 알렸다. 그의 아버지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아들이 성관계를 갖는다는 것의 의미와 아기를 낳고 아버지가 된다는 책임의 무게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였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우려 속에서 챈들러는 5시간의 진통 끝에 4킬로그램(kg)의 건강한 딸 메이시를 출산했다. 알피는 매일 병원을 찾아 갓 태어난 딸을 돌보며 의젓한 모습을 보이려 애썼다.

이번 일은 단순히 한 가정의 문제를 넘어 영국 사회 전체의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당시 영국의 10대 임신율은 유럽 내에서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도를 접한 당시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공식 석상에서 “우리 모두가 나서서 10대 임신을 막아야 한다”며 국가적 차원의 대책 마련과 우려의 뜻을 표명하기도 했다.


유전자 검사가 마주한 진짜 진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두 사람의 출산 소식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같은 동네에 살던 15세 소년 타일러 바커(Tyler Barker)가 나타나 자신이 진짜 친부일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그는 “출산 9개월 전 챈들러와 성관계를 맺은 적이 있다”며 “내가 진짜 아버지가 아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바커의 등장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챈들러가 알피 외에도 다른 소년들과 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세간에는 이른바 ‘친부 논란’이 일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바커를 포함해 챈들러와 관계를 맺었다고 주장하거나 의심되는 동네 소년만 총 11명에 달했다.

법원의 명령에 따라 진실을 가리기 위한 유전자(DNA) 검사가 진행되었다. 결과는 반전이었다. 알피는 친아빠가 아니었으며, 진짜 아빠는 99.99퍼센트(%)의 확률로 뒤늦게 나타난 타일러 바커로 확인되었다. 대중은 또다시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알피와 챈들러의 임신과 출산을 보도한 영국 매체.

특히 자신이 아빠라고 굳게 믿고 분유를 먹이며 온 정성을 쏟았던 알피는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다른 소년과의 관계가 드러난 챈들러 역시 거센 사회적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가족과 함께 다른 지역으로 황급히 이사를 떠난 뒤 자취를 감췄다.

시간이 흐른 뒤 성인이 된 알피의 근황이 언론을 통해 다시 전해졌다. 어린 시절 전 세계적인 관심과 조롱을 동시에 받았던 그는 정상적인 성인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학교를 제대로 마치지 못했고, 직장을 구하는 데도 번번이 실패했다. 오랜 시간 대중의 시선에 노출되었던 탓에 마음의 병을 얻었고, 결국 술에 의지하다가 좀도둑질이나 주거침입 같은 범죄에 연루되어 법정을 드나드는 처지로 전락했다.

타일리 바커.

알피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 사건 이후 내 인생은 완전히 망가졌다”고 고백했다.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아기에게 젖병을 물리던 13세 소년은, 자신이 어른들의 돈벌이와 자극적인 뉴스 소비의 희생양이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이 사건은 단순히 철없는 10대들의 일탈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제대로 된 성교육의 부재, 그리고 자극적인 사건을 이용해 돈을 벌려고 했던 일부 언론의 이기심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사회적 단면이다.


만약 어른들이 이들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관심을 거두고, 조용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왔다면 결과는 달랐을지 모른다. 책임감이 무엇인지 배우기도 전에 세상의 중심에 서야 했던 소년은 결국 홀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야 했다.

반짝이는 카메라 불빛은 꺼졌고 대중의 기억 속에서 이들은 잊혔지만, 준비되지 않은 채 세상의 문을 열었던 소년의 상처는 여전히 깊은 흉터로 남아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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