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판 세월호 ‘둥팡즈싱호’ 침몰 사고
양쯔강은 중국의 젖줄이다.
중국 서부의 칭하이성에서 남동쪽의 상하이까지 걸쳐 있는 양쯔강은 그 길이가 6300km에 이른다. 중국 대륙 중앙부를 횡단하는 중국의 가장 긴 강이다.
본래의 명칭은 ‘긴 강’이라는 뜻의 창장(長江)이다.
양쯔강에는 매년 넓은 유역 곳곳에 있는 관광명소를 관람하려는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2015년 6월1일 밤 난징에서 관광객들을 태운 ‘둥팡즈싱’(東方之星·동쪽의 별)호는 승객과 승무원 456명(승객 405명 포함)을 태우고 충칭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 배가 오후 9시28분쯤 양쯔강 후베이성 젠리현 부근을 지날 때였다.
갑자기 강한 회오리 바람이 불더니 2분도 채 안 돼 배가 순식간에 뒤집혔다. 당시 사고 현장 부근에는 12급(초속 35m)의 회오리바람이 불었고 1시간에 97㎜의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중국 기상청 관계자는 “양쯔강 중하류지역이 우기에 접어들면서 회오리바람이 자주 발생하지만 이번처럼 심한 경우는 5년 만에 한번 나타날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배가 방향을 전환하던 중 회오리바람을 맞아 더욱 쉽게 뒤집힌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둥팡즈싱호의 선장은 수차례의 기상악화 경고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출항했었다. 세월호 출항 당시에도 짙은 안개로 인해 운항이 어려웠는데도 선장이 무리하게 출항한 것과 비슷하다.
배가 침몰하면서 배 안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당시는 승객들이 잠들 시간이었기 때문에 미처 배안에서 탈출할 여유가 없었다. 뒤늦게 배가 침몰하는 것을 알아차린 승객들은 “살려달라”며 아우성을 쳤지만, 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승객들의 안전과 탈출을 책임져야 할 선장과 선원들은 가장 먼저 배를 빠져나왔고, 헤엄쳐서 뭍으로 나와 구조됐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세월호 선장 이준석과 선원들이 떠오른다. 속옷 차림으로 배를 빠져나와 구조되는 모습에서 중국 선장과 선원들이 오버랩 된다.
‘중국판 이준석’이 된 둥팡즈싱호의 선장과 선원들이 배와 승객들을 버리고 도망치면서 희생자는 더욱 늘어났다. 이런 것이 알려지면서 둥팡즈싱호의 침몰은 ‘중국판 세월호’라고 불렸다.
생존자들에 따르면 “사고 직후 침몰선 안에서 있는 승객들이 구조를 요청하는 아우성이 들리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승객들은 장쑤성과 상하이 등 지역 여행객들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50~80세 연령대의 노년층 단체여행객도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사고 수역의 깊이는 15m 정도로 2013년에도 침몰사고가 있었다. 사고 후 유람선은 침몰된 상태에서 3㎞가량 하류로 떠내려갔다. 유람선은 1994년 2월에 건조된 것으로 21년쯤 됐다. 배의 길이는 76.5m, 폭은 11m이며, 정원은 534명이다. 정원초과는 아닌 셈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사고 직후 최고 권력기관인 국무원이 현장 지휘에 나서 인명구조에 총력을 기울일 것을 지시했다.
당시 리커창 총리는 마카이 부총리, 양징 국무위원 등과 함께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 구조작업을 지휘했다.

리커창 총리는 “선체 절단, 공기 주입 등 모든 수단을 세울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다. 또 “조그마한 희망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인명 구조에 나서달라”며 군부대와 지방당국 인력이 밤샘 구조에 나서도록 했다.
특히 리 총리는 잠수요원들에게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면서 선체를 반복적으로 면밀하게 수색해 생명구조의 기적을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그의 지휘에 따라 무장경찰 후베이 본부는 1천명의 구조대원과 40여 척의 선박을 동원해 인명구조와 수색에 나섰고, 해군은 잠수병력 140여 명을 급파했다. 또 공군은 6대의 항공기를 지원했다.
중국 정부가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14명을 구조하는 데 그쳤다. 악천후 속에서도 구조대원들은 밤샘 수색작업을 벌였으나 더 이상의 생존자를 발견하지 못했다.
한때 일부 잠수요원이 선체 내 생존자가 있다고 밝혀 생존자 구조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선체를 두드렸을 때 일부 반응을 보인 경우도 있어 ‘생환 기적’에 기대를 걸었지만 허사였다.


결국 승객 총 456명 중 생존자는 14명에 불과했고, 나머지 442명은 사망하거나 실종된 것으로 집계됐다.
배가 침몰한 직후 선박과 승객들을 버리고 밖으로 헤엄쳐 나온 선장과 기관장에 대해 중국 당국은 조사를 벌였고, 배가 침몰한 정확한 원인 규명에 집중했다.
중국은 침몰 이틀 만에 둥팡즈싱호를 인양했다. 그때 이 배를 인양한 업체가 바로 세월호를 인양한 중국의 상하이샐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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