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

대전 국민은행 권총 강도 살인사건

2001년 12월21일 오전 10시, 대전 국민은행 둔산지점 지하주차장에 현금 수송차량인 이스타나 승합차가 들어선다.

이 차량은 대전 용전지점의 은행 영업자금을 지역본부로 옮기는 중이었다.

차량 트렁크 안에는 각각 1만원권 3만장씩 담긴 가방 2개가 실려 있었다. 이날 현금수송 담당은 출납과장 김아무개씨(45)가 맡았고, 청원경찰과 운전기사가 동승했다.

현금수송차량이 주차장에 들어선 후 김 과장 일행이 차에서 내렸다. 이들은 현금 가방을 손수레에 옮겨 싣기 위해 트렁크를 열고 가방을 꺼냈다.

그때 주차장에 있던 검정색 그랜저XG 한 대가 급히 후진하더니 현금수송차량 뒤쪽을 가로막았다.

그랜저 차량에서 복면을 한 괴한 2명이 나왔고, 한 명의 손에는 권총이 들려있었다. 이들은 김 과장 일행을 향해 “꼼짝마! 손들어!” 라고 소리치며, 권총 한 발을 발사했다.

이에 놀란 청원경찰과 운전기사는 재빨리 승합차 앞쪽으로 몸을 숨겼다. 하지만 김과장은 미처 피하지 못해 범인이 쏜 총탄에 허벅지와 팔을 관통했다.

김 과장은 그 자리에 쓰러졌고 얼마 뒤 사망했다. 괴한들은 손수레 위에 있던 돈 가방을 옮겨 실었다. 이때 승합차 운전기사가 재빨리 운전석에 올라타 차를 후진시키면서 괴한들이 타고 온 승용차를 들이받았다. 3억원이 든 현금가방 1개를 그랜저에 옮겨 실었던 괴한들은 나머지 한 개를 싣지 못하고 급히 도주했다.

경찰이 수사에 들어갔다. 범행에 사용한 승용차는 전날 경기도에서 도난신고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차량은 사건 현장에서 130m 쯤 떨어진 빌딩 주차장에서 버려진 상태로 발견됐다.

범인들의 동선도 파악됐다. 운전자를 포함한 범인 3명은 국민은행 용전지점에서 출발한 현금수송차를 계속 쫓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범인이 권총을 사용한 것에 주목했다. 권총의 출처를 확인하는 것이 시급했다. 이를 위해 군인, 우범자, 경비업체 직원, 전직 경찰관 등을 대상으로 CCTV 분석, 탐문 등 광범위한 수사를 했다.

범행에 쓰인 총알은 경찰용 38구경 리볼버의 총탄이었다. 이어 권총의 출처도 확인됐는데, 범행 두 달 전인 2001년 10월 대전 송촌동에서 순찰하던 노아무개 경사(33) 경사가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탈취당한 것이었다.

범인에 대한 목격자의 제보도 이어졌다. 한 목격자는 그랜저 차량을 몰고 다니는 20~30대 남성들이 중구 부사동에서 선팅지를 구입해 갔다고 제보했다. 실제 범행에 사용된 차량의 유리창에는 선팅지가 3중으로 덧붙여져 있었다.

경찰은 이들을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하고 목격자의 진술을 토대로 두 명의 몽타주를 작성해 전국 경찰관서에 배포했다.

경찰은 발생 후 1년 동안 목격자·전과자 등 5321명, 차량 9276대, 통신기록 18만2378건을 조사하고, 2만9260곳을 탐문 수사했지만 이들의 신원을 밝히는 데는 실패했다.

2002년 8월에는 용의자 3명을 검거했지만 권총 등 직접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범인으로 특정하지 못했다.

범인들은 현장에 지문 등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으면서 수사는 난항에 빠졌다. 시간이 갈수록 범인들에 대한 제보도 시들해졌다. 수사도 제자리걸음을 맴돌았고, 결국 2003년 3월 수사본부가 해체됐다.

원래 이 사건은 2016년 공소시효가 만료될 예정이었으나 2015년 2000년 8월 이후 발생한 살인사건 공소시효가 폐지되면서 범인을 잡으면 처벌이 가능하다.

그러던 2022년 8월25일 경찰은 국민은행 강도 살인용의자 2명을 사건발생 21년만에 검거했다고 밝혔다. 유전자 분석 기술이 발전하면서 실마리를 찾았다.

사건 현장 수거품 가운데 범인들이 얼굴을 가리는데 사용한 손수건에서 용의자의 DNA를 확보한 것이다. 경찰은 이 유전자가 2015년 충북의 한 불법게임장 현장 유류물에서 검출된 유전자와 동일하다는 것을 2017년 10월 알게됐다.

경찰은 종업원과 손님 등 게임장에 출입했을 가능성이 있는 1만5000여명에 대한 수사 끝에 이정학(당시 31세)을 유력 용의자로 특정했다. 이어 과거 행적과 주변인 등을 보강 조사해 이씨를 검거했고, 이승만(당시 30세)과 함께 했다는 자백을 받았다.
30세)도 체포했다. 이들은 그동안 한 번도 용의선상에 오르지 않았던 인물들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이 총을 쐈다며 떠넘겼다. 형량을 줄여보려는 꼼수였지만 결국 이승만이 “내가 범행을 주도했다”고 실토했다. 이승만은 군 복무당시 수색대대에서 복무했고, 사격 솜씨도 우수했다. 반면 이정학은 군 면제를 받아 사격 경험도 없었다.

경찰은 신상공개심의위를 통해 두 사람의 얼굴과 이름, 나이 등을 공개했다.

이들은 강도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됐으며, 1심 재판부는 이승만에게 무기징역을, 이정학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아울러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10년을 명령했다.

1심 선고 후 형량이 부당하다며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는 이승만과 이정학에게 각각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대법원도 같은 판단을 내리면서 형량이 확정됐다.

2023년 3월 경찰은 2002년에 발생해 미제로 남아 있었던 전주 금암파출소 백선기 경사 피살사건의 범인으로 이정학을 지목했다. 이승만이 전북지방경찰청에 편지를 보내 “이정학이 백 경사를 살해했고, 권총은 울산에 있다”고 제보한 내용을 토대로 수사를 벌여 밝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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