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피해 여군 또 성추행한 ‘육군 17사단장’의 최후
군대는 성(性)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남자들의 세계라고 해서 성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사회와 격리돼 있고, 계급사회인지라 성은 때론 동성 간에도 고참이나 상관의 고문과 착취의 대상이 된다.
군대 안에는 남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직업군인인 여군과 사회의 공무원에 해당하는 군무원도 있다.
요즘에는 여성들에게도 군대의 문이 활짝 열려있고, 여군에 지원하는 여성들도 많이 늘었다. ‘금녀의 벽’이 깨진지 오래됐다는 뜻이다. 그러다보니 이성인 상관에게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하는 사례가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군대 안에서의 성범죄 가해자는 지휘관인 장성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군 장성들의 ‘성(性) 일탈’이 종종 부대 담장 밖으로 새어나왔지만 형사 책임을 물은 적은 없다. 이런 와중에 육군 보병 제17사단장의 성추행 사건이 터졌다.
2014년 10월8일 송유진 육군 제17보병 사단장(55)이 성추행한 혐의로 긴급 체포된다. 육군 현역 사단장이 성추행 혐의로 긴급체포된 것은 창군 이래 처음이다. 인천에 주둔하는 17사단(번개부대)은 육군 최대 규모의 보병 사단이다.
육군에 따르면 송 사단장은 그해 8월과 9월 자신의 집무실에서 20대 초반의 여군 부사관 A하사를 5차례에 걸쳐 껴안거나 볼에 입을 맞추는 등 강제 추행했다.
그런데 이 여군 부사관은 이전에도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였다. 같은 해 6월쯤 17사단의 다른 부대에서 상사(계급)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가 사단 사령부로 옮겼다. 가해자인 상사는 구속돼 6개월 형을 받고 복역 중에 있었다.
송 사단장은 처음에는 피해 여군 부사관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차원에서 집무실로 불렀다. 제대로 된 지휘관이었다면 상처 입은 부하를 따뜻하게 위로하고, 군 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보살피고 배려했어야 한다. 하지만 송 사단장은 늑대에게 물려 상처 입은 피해자를 불러놓고는 자신도 음흉한 늑대로 변했다.

피해 여군은 같은 부대 병영생활 상담관에게 이런 사실을 제보했으며, 육군 중앙수사단은 송 사단장을 불러 조사하는 과정에서 긴급 체포했고, 같은 날 육군 검찰에 구속 영장을 청구했다. 육군본부 보통군사법원은 송 사단장에 대해 ‘강제 추행 혐의’로 구속영장을 발부함으로써 영창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송 사단장이 긴급 체포되고 구속된 배경에는 녹취록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피해 여군은 송 사단장과 성추행 관련 대화를 나눴으며, 이를 휴대전화로 녹취했고, 육군 중앙수사단에 증거자료로 제출했던 것이다.
송 사단장의 성추행 피해자는 A하사 뿐이 아니었다. 그는 같은해 9월 B하사를 집무실로 불러 이마에 입을 맞추는 추행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격려의 의미였을 뿐 성추행 의도가 없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언제나 그렀듯이 군은 사건 발생 후 호들갑을 떨었다. 한민구 당시 국방부장관 주재로 긴급 주요지휘관 화상회의가 소집됐다. 합동참모본부 작전회의실에는 한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전군 주요 지휘관들을 화상으로 불러내 회의를 했다.
군은 “이번 사건을 엄중히 처리하고, 성관련 사고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묻겠다는 무관용 원칙을 확인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군은 성범죄 ‘원아웃’ 제도를 적용해 진급에 반영하고 성 군기 예방교육을 더 철저히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군에서 대형 사건사고가 일어나면 대응 매뉴얼은 똑 같다. 군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 특정 피의자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것이다. 군에 부적응하고, 어울리지 못하고, 처신을 못하는 등이 사고를 불렀거나 사건을 일으키는 동기가 됐다는 것이다.
‘사고’나 ‘사건’의 동기를 개인의 문제로 돌려 조직의 문제로 확대시키지 않겠다는 꼼수가 있다. 조직의 문제가 되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고 문책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군대 사건이 근본적인 예방과 근절이 되지 않고, 악순환이 거듭되는 것이다.
실제 17사단의 성 군기는 말 그대로 개판이었다. 피해 여군을 성추행한 상사와 해당 여군을 재차 성추행한 사단장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이 부대의 대대장 이 아무개 중령도 같은 해 6월 성희롱 혐의로 보직 해임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령은 4월 부대 내에서 부하 여성 장교에게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언행을 일삼았고, 군 당국은 징계위원회를 열어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그런데 이 중령의 혐의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2010년 3월 강원도 화천 전방부대 인근에서 자살한 심 아무개(여) 중위의 자살 사건과도 관련된 것이 드러났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중령은 17사단에서 재판장(심판관)으로 근무했었고, 재판장을 맡는 동안 10명의 피의자를 재판했다는 사실이다. 그 중 3명은 성 범죄자였다. 영락없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다. 이 중령을 재판장에 앉힌 것은 다름 아닌 송 사단장이었다.

성추행, 직권남용 가혹행위를 저질러 감찰까지 받은 사건의 당사자(이 중령)를 성범죄를 재판하는 재판장으로 임명했던 것이다. 이처럼 17사단은 사단장인 소장부터 대대장인 중령, 그리고 부사관인 상사까지 사단 전체에 성범죄가 만연해 있었다.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군사재판에 회부된 송 소장은 1심에서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아울러 성범죄자 신상정보 등록명령도 내려졌다. 현역 장성에게 ‘성범죄자 신상정보 등록 명령’도 사상 처음이다. 그러나 송 소장은 항소했고, 2015년 3월 31일 열린 고등군사법원에서 1심을 유지했다.
송 소장 측은 재판 과정에서 “격려의 의미로 한 포옹이었을 뿐 성추행 의도가 없었고 포옹 과정에서 완력을 행사하는 등 강제성도 없었다”며 줄곧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송 소장이) 강제추행 사건의 피해자를 위로하고 상담한다는 명목으로 집무실로 불러 다시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죄질과 범죄의 정황이 매우 불량하다”며 실형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1심 재판부 취지와 같이 송 소장의 행위가 강제추행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성범죄자 신상정보 등록으 명령했다.
이에 불복한 송 소장은 대법원에 상고했다. 2018년 2월28일 대법원 2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송 전 소장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로써 그는 부하여군을 성적도구로 여겼던 육군 장성. 최악의 오명을 쓴 장군으로 기록됐다.
한편, 송 사단장은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마산고등학교를 37기로 졸업했다. 1980년 육사 40기로 입학해 84년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그 후 3사단 연대장, 연합사 작전처장 등을 역임했고, 2012년 11월 17사단장에 취임했다. 2013년에는 여군 관련 교육을 잘 했다는 이유로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
송 사단장은 구속되기 전 육군본부 정보작전부장으로 영전할 예정이었다. 이쯤 되면 국방부의 인사검증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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