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트라우마 치료한다며 또 강간한 유명 심리상담사
서울에 거주하는 20대 여성 A씨는 직장 내 성폭행 피해를 당한 후 회사를 그만 뒀다.
범죄 피해로 인한 상처와 고통은 자꾸만 커져만 갔다. 성폭력 트라우마에서 빨리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그녀는 심리 상담을 받고 안정을 찾기로 마음먹는다.
2017년 2월15일 A씨는 서울 서초구에 있는 H치료연구소를 찾아갔다.
개신교 교단의 목사이기도 한 김아무개 소장(56)은 심리요법의 일종인 ‘사이코드라마’를 통한 심리치료를 하는 것으로 유명세를 얻었다.
언론과 방송매체에 출연하고 대중강연을 하는 등 상당한 명성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서울의 한 대학원에서는 겸임교수로 활동하며 상담학 강의도 해왔다.
A씨는 김씨의 유명세를 믿고 자신의 치료를 맡겼다.
그런데 김씨의 치료 방법이 이상했다. 상담 첫날부터 역할극을 한다며 A씨의 몸을 만지기 시작했다. 다음에는 “편안한 상담을 위해선 숙박시설이 낫다”며 A씨에게 서울과 부산 등지의 숙박시설을 예약하게 했다.
김씨는 치료를 한다며 A씨를 추행하고 급기야 성폭행으로 이어졌다. A씨가 거부하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연습의 일환이다” “이런 태도면 앞으로 새로운 삶을 살 수 없다” 등의 말을 하며 거부하지 못하게 했다.
그는 또 지속적으로 A씨에게 모바일 메신저를 보내고 전화를 걸어 “내가 너를 엄청 도와주고 있으니 고마워해야 한다”며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시켰다. 김씨의 범행은 2017년 2월부터 5월까지 총 8차례에 걸쳐 이어졌다.
결국 참다 못한 A씨는 김씨를 성폭행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김씨는 경찰에서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며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또 “치료도 상담료를 받지 않은 순수한 도움”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A씨는 “성폭력 당시 확실한 거부 의사를 밝혔다”며 “김씨가 상담료로 50만원을 요구해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인출해 바로 전달했다”고 반박했다.
경찰은 김씨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범행에 사용한 증거물 등을 압수하고 범행을 입증할 증거도 상당수 확보했다. 경찰은 김씨의 범행이 전형적인 ‘그루밍 성폭력(가해자가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행하는 성폭력)’이라고 판단했다.
김씨는 피보호자 간음, 성폭력처벌법 위반(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이 사건 범행은 피해자의 심리상태를 이용해 3회에 걸쳐 위계와 위력으로 간음하고, 4회에 걸쳐 위력으로 추행한 것으로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며 김씨에 대해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아울러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와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장애복지 시설에 7년간 취업제한을 명령했다.
김씨는 재판 중에도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으나 재판부는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고, 피해자가 기록해온 스케줄러와 카드 결제 내역, 김씨 사무실에서 압수된 성적 기구 등은 현존하는 객관적 증거”라며 “반면 김씨의 진술은 오락가락한다”고 했다.

김씨와 검찰은 1심 판결에 불복해 모두 항소하면서 사건은 2심으로 넘어왔다.
항소심에서는 원심을 파기,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김씨를 석방했다. 40시간의 성폭행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80시간의 사회봉사, 7년간 아동·청소년 및 장애인 관련 시설 취업제한도 명령했다. 다만 검찰이 요청한 전자장치 부착 명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증거에 의하면 피고인이 위계 또는 위력으로 범행했다는 1심 판단 정당했다고 수긍된다”며 “심리 상담자가 피해자의 심리적 상태를 이용해 여러 차례 위계 또는 위력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죄질도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강제추행으로 인한 기소유예 전력 외 달리 형사처벌을 받은 적이 없고, 피해자와 합의한 점을 고려하면 1심 형은 무거웠다고 보인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또 “김씨의 연령·범행 경위 등을 볼 때 검사가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할 정도로 다시 성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검찰의 전자장치 부착명령 청구는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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