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갈 때 가족을 돌보지 않은 가장의 비참한 말로
가족은 최후의 보루다. 세상 인심이 아무리 차갑고 각박해도 가족은 언제나 따뜻한 보금자리다. 가장 힘들 때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나를 반겨주는 것은 가족 뿐이다.
그런데 잘 나갈 때 가족을 돌보지 않고 외면하면 어떻게 될까. 그가 쫄닥 망해 쪽박을 차면 가족이 따뜻하게 받아줄까. 절대 그렇지 않다. 뿌린대로 거둔다는 말처럼 가족에게도 똑같이 외면 당한다. 자업자득인 셈이다.
가족을 돌보지 않으면 누구라도 이런 비참한 말로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가족한테 버림받고 쓰레기통 뒤지는 노숙자 된 천만장자
중국 산둥성 옌타이 출신의 장위엔천(남‧70대)은 한때 천만장자로 불리는 재력가였다.
그는 고향에서 의류회사를 창업해 성공을 거뒀고, 이후 홍콩과 선전에서 차례로 식품제조회사를 설립했다. 3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회장에 취임한 그는 매년 큰 폭의 성장세를 기록하며 탄탄하게 입지를 굳혀갔다.
현지 언론은 그를 중국을 이끌 차세대 경제계 리더로 선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하면서 적신호가 켜졌다.
결국 은행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며서 파산을 면치 못했다. 장씨는 자신이 소유했던 3개의 사업체 중 두 곳에 대해 파산 신청한 뒤 거리를 떠도는 노숙자로 전락한다.
그는 도심 일대를 배회하며 폐지 수거로 생활비를 마련했다. 장씨의 일과는 날이 밝으면 길거리를 떠돌며 쓰레기 더미를 뒤져 폐지를 줍고, 오후에는 공원 벤치에서 잠을 자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장씨는 자신의 사업체가 있던 광둥성 선전시 일대를 유랑하며 노숙을 이어갔다.
현지 언론에도 장씨의 사연이 소개됐다. 보도에 따르면 장씨는 도심 공원 벤치에서 노숙하다 선전시 공익단체 관계자들에게 구조됐다. 당시 그는 헝클어진 머리와 얇은 티셔츠 한 장으로 추운 겨울을 견디고 있었다.
장씨의 신원을 확인한 공익단체 회원들은 그의 부인과 두 자녀에게 연락해 지금의 처지를 알렸다. 하지만 이들은 “도움을 주고 싶지 않다”며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장씨는 사업에 성공을 거두며 잘 나갈 때 가족들을 돌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뒤에는 아예 가족들과 연락을 끊고 살았다.
장씨의 아내는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고향을 떠난 직후 홍콩으로 이주했고, 이 시기부터 고향에 남겨진 가족들과는 인연을 끊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젊었을 때의 남편이자 가장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그를 집으로 데려오고 싶지는 않다”고 잘라 말했다.

장씨의 두 자녀 중 한 명은 명문대 출신의 회사원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그 또한 아버지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공익단체 측은 장씨를 산둥성 소재의 양로원에 입주하도록 주선했고, 그는 현재 이곳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싫든 좋든 장씨는 이곳에서 쓸쓸한 여생을 보내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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