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국정원 직원’ 마티즈 의문의 변사사건

2015년 7월5일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해킹업체 ‘해킹팀’의 일부 자료가 위키리크스에 공개됐다. 이 업체는 잔혹한 독재 국가 등에 감시 프로그램을 팔아 주머니를 챙긴 악의 무리들이었다.

그런데 유출된 이 업체의 고객 명단에 익숙한 이름이 들어 있었다. 바로 한국의 ‘국가정보원’이다. ‘5163 부대’라는 가면을 쓰고 우리 몰래 검은 거래에 나서고 있었던 것이다.

국정원이 업체에서 구매한 것은 도·감청 프로그램인 ‘RCS'(리모트컨트롤시스템). 스파이웨어를 통해 표적이 된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을 원격으로 조작해 감시하는 시스템이다. 만약, 이탈리아 해킹팀의 서버가 해킹 당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이런 사실을 깜빡 몰랐을 것이다.

‘해킹팀’에서 유출된 이메일을 보면, 국정원은 2013년 6월 해킹팀에 ‘갤럭시노트2 기종의 통화 내용 녹음이 가능하냐’고 문의했다. 왜 이런 것을 질문했을까. 답은 뻔하다. 해킹할 대상이 존재하기 때문에 구입 전에 가능성을 물어봤던 것이다.

국정원의 간첩조작 피해자인 유우성씨는 “아무런 조작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스마트폰이 누군가 원격조종하는 것처럼 저절로 작동된 적이 있다”고 했는데, 유씨가 쓰던 스마트폰 기종은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2였다.

이탈리아 해킹팀 서버에는 SKT와 SK브로드밴드, KT 등 국내 망 사업자들에 할당된 IP에서 접속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

국정원은 해킹용 스파이웨어를 유포하기 위해 지역 벚꽃축제나 맛집 등의 내용을 담은 일반 네이버 블로그 글과 삼성 제품 업데이트 웹사이트 등을 활용했다. 국정원은 ‘대북 첩보 수집 활동’이었다고 주장했지만, 민간인 사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국내 언론에는 7월9일부터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의혹이 불거졌다. 정치권과 언론에서 국정원의 민간인 해킹 의혹을 제기했고, 국정원은 점점 막다른 길에 몰리고 있었다.

이때 돌발 변수가 발생한다. 국정원 제3차장 산하 과학정보국 연구개발단에서 해킹업무를 총괄해온 임아무개 과장(45)이 돌연 숨진 채 발견된다. 그는 이탈리아 업체 해킹팀의 해킹 프로그램을 직접 구입해 사용한 장본인이다. 임과장은 대테러, 방첩 파트에서 요주의 인물(타깃)을 찍어주면 이들에게 RCS와 같은 스파이웨어를 보낸 뒤 정보 및 첩보를 수집하는 역할을 했다.

경찰은 임과장의 사망을 자살로 결론지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타살설’ ‘마티즈 차량 바꿔치기’까지 온갖 의혹이 난무했다.

임과장은 7월18일 오전 4시50분쯤, 짙은 감색 정장 바지에 흰색 와이셔츠를 입고 집을 나섰다.

보통 자살자들은 죽기 전 ‘자살 징후’를 보이는데 임과장의 행동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4시52분쯤 집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3분 뒤인 55분쯤에 빨간색 마티즈를 타고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이어 용인시 처인구의 한 마트 앞에서 내려 소주 1병과 담배 1갑, 은박 도시락 2개(번개탄 받침용)를 현금으로 구매했다.

30분쯤에는 편의점에서 숯 2봉을 산 후 현금을 냈고, 18분 뒤인 48분쯤에는 또 다른 마트에서 번개탄 5개를 구입하고는 카드로 계산했다. 6시22분쯤 자살 현장으로부터 약 950m 떨어진 마을 입구를 통과했고, 야산으로 가는 장면도 CCTV에 포착됐다.

이날 오전 10시, 국정원에서는 임과장에 대한 내부 감찰 조사가 있을 예정이었다. 그런 그가 출근하지 않았다. 오전 9시쯤 국정원은 임과장 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임과장 부인은 “새벽에 회사에 간다고 집에서 나갔다”고 말했다.
오전 10시4분쯤 임과장 부인은 소방관서를 찾아가 “남편이 부부싸움을 하고 나갔는데 연락이 안 된다”며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요청했다. 매뉴얼대로 소방대원이 112신고를 권유하자 임과장 부인은 파출소에 찾아가 위치추적 신고를 했다.

10시32분쯤 임과장 부인은 “내가 먼저 남편이 갈만한 데를 찾아보려고 한다”며 112신고를 취소한다. 이후 재차 “신고가 취소되지 않은 것 같다”며 확인 전화를 걸기도 했다. 오전 11시51분쯤 임과장 부인은 다시 112에 실종신고를 접수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임과장 부인은 처음 ‘112’가 아닌 119에 신고했고, 112 신고를 했다가 취소한 뒤 다시 재신고를 통해 실종신고를 했다. 임과장 부인에게 112가 아닌 119에 신고하도록 한 것은 바로 국정원이었다. “신고가 취소되지 않았다”는 것도 국정원에서 얘기해 재차 확인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소방관들은 임과장의 부인이 알려준 번호로 휴대전화 위치추적에 나섰고, 실종신고 2시간 만인 이날 정오쯤 집에서 13㎞ 정도 떨어진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의 한 야산에서 임과장의 시신을 발견한다.

이곳은 화산CC 인근 화산1리 마을회관에서 500여m를 산길로 들어간 일명 ‘고라지골’로 불리는 곳이다. 임과장이 평소 자주 낚시를 가던 곳이었다. 레저를 즐겼던 곳이 ‘죽음의 장소’가 된 것이다.

경찰은 소방관이 사건현장을 발견한 뒤 30분쯤 지나서야 현장에 도착했다. 현장 수색을 경찰이 아닌 소방당국 위주로 진행된 것이다. 또 경찰에 앞서 현장에 간 것도 국정원 직원이었다. 때문에 119에 신고하도록 하고, 112신고를 취소했다가 재신고 한 것은 경찰의 개입을 막기 위한 국정원의 술책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임과장의 시신을 찾기까지의 현장 소방관과 소방본부 사이의 무전 내용을 보면 차량 발견과 시신 발견에 대한 내용은 없고 가장 중요한 시간대에 “거미줄 치겠다”(유선으로 보고한다)는 내용만 있었다.

당시 국회안전행정위원회 간사였던 정청래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현장에 가봤는데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다. 그러면 무전을 할 수밖에 없는데 거미줄을 치겠다는 것은 휴대폰으로 통화하겠다는 것이다”며 당시 상황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시신 발견위치도 논란이다. 경찰은 임과장의 시신은 운전석에서 발견됐고, 차량 보조석과 뒷좌석에서는 번개탄을 피운 흔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정청래 의원은 “경찰이 안행위에서 첫 보고를 할 때는 ‘차량 뒷좌석에서 발견됐다’고 했다가 하루 뒤 ‘운전석 발견’이라고 정정했다”고 밝혔다. 또 임과장의 차량을 먼저 발견한 소방당국이 시신을 찍은 사진과 나중에 현장에 도착한 경찰이 찍은 사진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차량에서는 17개의 쪽지문이 발견됐지만 경찰은 식별불능지문이라며 파악되지 못했다고 했다.

마티즈 조수석에서는 A4용지 크기의 노트 3장 분량의 유서가 발견됐는데, 2장은 가족과 부모에게, 1장은 국정원에 남겼다.

현장에서 필기구는 발견되지 않았다. 임 과장의 유족은 처음에는 유서공개 거부를 천명했다가 갑자기 입장을 바꿨다. 유서는 언론에 공개됐고, 이중에는 “내국인이나 선거에 관한 사찰은 없었다”는 대목이 있었다. 국정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직원 일동’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한다.

임과장은 가족에게 “극단적인 아빠의 판단이 아버지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인데 요즘 짊어져야 할 일들이 너무 힘이 든다”고 적었다. 임과장은 또 “지나친 욕심이 오늘의 사태를 일으켰다”고도 적었다. 이는 이탈리아 해킹팀을 동원하면서까지 정보수집에 나선 것이 결과적으로 국정원 불법사찰 의혹을 일으킨 점을 곤혹스러워한 듯한 대목이다.

이어 “내국인이나 선거에 관한 사찰은 없었다”고 적고 있으나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그가 결백하다면 굳이 자살할 이유가 없었다. 얼마든지 당당하게 조사를 받고 무죄를 증명할 수 있었다. 바꿔 말하면 임과장의 죽음은 무언가 숨기고 싶었던 게 있었다는 뜻이다. 잔뜩 움츠려 있던 국정원은 임과장의 죽음과 유서가 공개되자 목소리를 높였다. 성명서가 직원 전체에게 회람된 것이 아닌 걸 보면 국정원이 반전의 기회로 삼으려 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임과장의 마티즈 승용차도 의혹투성이였다. 그는 7월2일 2005년식 빨간색 GM대우 올뉴마티즈 차량을 중고차 매매상을 통해 구매했다. 당시 중고차 시장에서는 200~300만원에 거래되고 있었다.

임과장의 집에는 이미 부인 명의의 차량이 있었다. 국정원에서 ‘과장’ 직급은 중앙부처와 비교하면 ‘서기관급’에 해당하고, 국정원이 일반직 공무원보다 대우가 좋은 것을 감안하면 ’10년 된 중고 마티즈 구입’은 이해되지 않았다.

마티즈를 구입한 시기도 의아하다.

국내에서 이탈리아 해킹팀의 서버가 해킹 당했다는 언론보도는 7월7일부터 나왔고 ‘국정원’이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9일이다. 임과장이 마티즈를 구입한 것은 이보다 7일이나 빠르다. 때문에 일부에서 말하는 자살한 후 폐차하기 쉽게 마티즈를 구입했다는 것과는 연관관계가 없다. 더욱 이상한 것은 CCTV에 찍힌 마티즈와 시신이 발견된 현장의 마티즈가 다른 점이다.

임과장은 자살직전인 오전 6시18분과 22분, 자살 장소에서 각각 2.4km와 1.4km 떨어진 지점에 설치된 CCTV에 찍힌 것을 보면 번호판 색상이 확연하게 다르다. 경찰이 제시한 임씨의 차량이 찍힌 CCTV에는 차량의 번호판은 ‘흰색’이었는데, 번개탄을 피우고 자살한 마티즈는 ‘녹색’이었다.

흰색 번호판은 신형이고, 녹색은 구형 번호판이다. 색상만 다른 게 아니라 크기도 다르다. 임과장이 차를 사면서 골동품이나 다름없는 구형 번호판을 달았다는 것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마티즈에 부착된 자동차 회사 로고도 의문이었다.

임과장이 구입한 마티즈는 2005년 식이다. 2011년 GM대우는 상호를 ‘한국GM’으로 바꾸면서 ‘쉐보레’ 브랜드를 도입했기 때문에 2005년식인 임과장의 마티즈에는 이전 ‘대우 마크’가 붙어 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여기에 ‘쉐보레’ 로고가 붙어 있다.

임과장의 자살 현장에 있던 마티즈에는 검은 범퍼 가드(보호대)와 안테나가 확연하게 보이지만, CCTV 속 마티즈에는 검은 범퍼 가드와 안테나가 없다. 임과장의 마티즈가 트랜스포머처럼 자유자재로 변신이 가능했던 것일까.

이에 대한 의혹이 커지자 경찰은 차량 번호판과 규격이 다른 것에 대해 “카메라 각도와 빛 반사 각도에 따른 착시 현상”으로 돌렸다.

용인동부경찰서 관계자는 “동이 트면서 햇빛이 반사돼 녹색 바탕에 흰색 글씨가 박힌 번호판이 흰색으로 보인 것”이라고 설명했고, 의혹이 사그라들지 않자 동종차량으로 같은 시간대 재연 실험을 10여 차례 해보니 실제로 녹색 번호판이 흰색으로 왜곡, 변형된다고 밝혔다.

경찰의 해명에도 자살 현장에 있던 마티즈와 CCTV 속 마티즈가 다른 것에 대한 의문은 확산됐다. 경찰이 ‘빛의 각도에 따른 착시현상’이라고 해명은 했지만 CCTV에 드러난 것과 자살 현장에 있었던 마티즈의 차이가 확연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마티즈는 임과장이 사망한 지 4일 만에 폐차된다. 21일 임과장의 장례를 치른 다음날인 22일 번호판을 반납하고 폐차됐다. 2005년 처음 등록돼 임과장이 구입할 때까지 주행거리는 21만9149㎞였고, 임과장으로 명의가 이전된 뒤 1천㎞를 더 달렸다. 그가 사망하기 전까지 16일 동안 주행했고, 하루 평균 62.5km를 달린 셈이다. 한창 논란이 되고 있던 중요 증거물인 ‘마티즈’를 왜 서둘러 폐차했을까.

그리고 2년이 흘렀다. 2017년 7월12일 ‘CBS 노컷뉴스’는 전북 익산시 용동면에 사는 임과장의 아버지 임희문씨(80)를 인터뷰했다. 그는 아들의 자살과 관련한 의문을 제기했다. 희문씨는”아들의 얼굴에 상처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서 놀랐다”며 “몸이 저렇게 당할 정도면 뼈까지 상했을까 걱정돼 오죽하면 감정(부검)해 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임씨는 “간단하게 유서 쓰고 잠들게 하는 방법이 있을 텐데 왜 몸뚱이에 상처가 있고 얼굴에 안 터진 곳이 없냐”며 “나만 본 것이 아니라 아들 염(시신을 씻고 수의를 입히는 일)을 한 사람들도 대번에 알아봤다”고 말했다.

당시 임과장의 어머니와 아내는 아들이자 남편의 시신을 못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아들은 자살할 성격이 아니었다. 자살이라는 결론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당시 정부와 경찰의 협박과 외압도 있었다고 폭로했다.

그는 “장례식에서 한 경찰관이 언론 등 외부접촉을 하지 말라고 사실상 ‘협박’했다”고 말했다. 임씨는 육군사관학교에 재학 중이었던 손녀에게 피해가 있을까봐 며느리가 외부접촉을 만류했다면서 그동안 타살 의혹을 제기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했다. 지금까지의 의혹으로만 봐도 임과장의 ‘죽음’은 석연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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