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생활

국회의사당이 30년 동안 숨긴 ‘미국 대통령’ 가짜 기념식수의 비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 앞 광장에는 기념식수된 나무 세 그루가 있다.

태극기 게양대 바로 옆에는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기념식수가 있고, 국회기 게양대 옆에는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기념식수가 있다. 태극기 게양대 뒤편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심은 소나무(일명 ‘화합의 나무’)가 있다.

모두 최고의 명당자리로 꼽히는 곳에 나란히 식재됐다.

지금까지 국회의사당에 기념식수한 외국인은 부시와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두 명 뿐이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이 유일하다. 김 전 대통령은 1998년 2월25일 대통령 취임기념으로 나무를 심었다.

국회의사당에서 대통령 취임식 직후 기념식수를 하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

국회의사당에 처음으로 기념 식수한 사람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아버지 부시)이다. 부통령 때인 1982년에 방한해서 심었는데, 한·미 수교 100주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부시 부통령은 4월25일에 2박3일 일정으로 방한한다. 청와대를 찾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예방하고, 이틀째인 4월26일에는 국회의사당을 방문했다. 본회의장에서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연설하고, 국회 경내로 나가 기념식수를 했다.


이것이 국회 기념식수 1호다.

국회의사당 ‘기념 식수 1호'(위)와 부시 전 미국 부통령 기념 식수 표지석(아래) 당초 심었던 주목이 죽자 일본산 화백나무로 대체한 가짜였다.

1982년 4월27일자 <동아일보>를 보면 ‘부시 부통령은 의사당 현관 앞에 100년생(한·미 수교 100주년을 상징) 주목 한 그루를 기념 식수했다’고 나와 있다.

같은 날 <경향신문>의 보도는 좀 더 자세하다. ‘부시 부통령 일행과 정 의장(정래혁 당시 국회의장을 말함) 등 국회 간부들은 한·미 수교 100주년을 기념해 의사당 현관 앞 잔디밭에 높이 3.5m의 100년생 주목을 기념 식수했다”고 보도했다.

2012년 5월 나는 한 통의 제보를 받았다. 당시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국회 기념식수가 가짜라는 내용이었다. 사실 제보자는 문화재제자리찾기 혜문 대표였다.

나는 이때부터 집중 취재에 들어갔다.

먼저 제보 내용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국회의사당에 가서 기념식수를 살펴봤다. 그랬더니 정말 이상한 것이 있었다. 부시 전 대통령이 기념 식수한 나무가 주목이 아닌 ‘화백나무’였던 것이다. 처음에 심었던 주목이 화백나무로 둔갑해 있었다. 어찌된 영문일까.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 당시 최재성 의원실(민주통합당)을 통해 국회 사무처에 공식 질의를 했다. 그런데 국회에서 온 답변이 예상 밖이었다. 국회 사무처는 부시 전 대통령이 심은 나무가 “화백나무”라고 했다.


이 나무가 기념식수의 수종으로 결정된 이유는 “당시 경내에 식재되어 있던 생육 양호한 수종으로, 다른 특별한 사유는 없다”고 밝혔다. 당시 “주목을 심었다”는 언론보도와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다. 이것만 보면 둘 중 한 쪽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 분명했다.

국회가 뭔가를 숨기고 있거나 당시 언론 보도가 오보이거나 하는 것이다. 하지만 두 곳의 언론사가 동시에 오보를 낼 확률은 극히 낮았다. 의문을 풀 열쇠는 ‘근거 자료’에 있었다.

당시 촬영한 사진과 보도 자료가 있다면 충분한 근거 자료가 될 수 있었다. 나는 재차 최재성 의원실을 통해 국회 사무처에 국회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근거 자료를 요구했다.

그랬더니 5월30일에 당시 기념 식수할 때 촬영한 흑백 사진 두 장을 보내왔다. 본청 앞 경내에 여러 사람이 모여 있고, 부시 부통령과 정래혁 국회의장이 기념 식수할 나무를 보면서 대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나무의 모양은 3분의 1 정도만 보였다.

부시 당시 미국 부통령과 정래혁 국회의장이 기념 식수에 앞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그런데 사진 속에 진실이 담겨 있었다.

나무의 형태와 잎의 모양 등을 볼 때 한눈에 봐도 당시 심어져 있는 것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화백나무가 아닌 ‘주목’이었다. 사진 속 나무는 끝이 뾰족하고 밑 부분은 좁아지는 형태다. 나무줄기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잎이 촘촘하다.


반면 당시 심어져 있던 화백나무는 뿌리에서 네 개의 큰 줄기가 뻗어 있고, 잎은 긴 달걀 모양이며 촘촘하지도 않다. 나는 국회에서 보내온 사진을 원예 전문가에게 보냈더니 그도 “나무의 모양이나 잎의 생김새 등을 볼 때 화백나무는 아니다. 주목이 확실하다”고 확인해줬다.

국회 사무처가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국회는 왜 부시 전 대통령의 기념식수를 ‘화백나무’라며 진실을 숨기고 있었던 것일까. 여기에는 말 못할 속사정이 있었다. 부시 전 대통령이 심은 나무가 1년여 만에 죽자, 그 대체 나무로 몰래 화백나무를 심어 놓았던 것이다.

1년 뒤에 방한한 레이건 대통령 기념식수에서도 알 수 있다.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은 1983년 11월에 국회를 방문해 기념식수를 했다. 이때 심은 나무가 바로 ‘화백나무’다.

국회 사무처는 부시 전 대통령의 기념식수 대체 나무로 화백나무를 심었고, 격을 맞추기 위해 레이건 대통령 기념식수용 나무로도 같은 종을 골랐던 것이다. 그런데도 국회는 30년 동안 이런 사실을 숨겨왔고, 이게 드러날까 두려워 언론에도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나는 여러 근거를 가지고 국회사무처에 따져 물었고, 국회에서도 나중에 이런 사실을 인정했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부시 전 대통령이 기념 식수한 나무가 1년여 만에 죽었다. 다시 주목을 심었는데 얼마 살지 못했다. 그래서 국회 경내에 식재되어 있던 화백나무를 대신 심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화백나무’를 기념식수로 선정한 것도 문제였다. 이 나무의 원산지는 ‘국내산’이 아니라 ‘일본 특산종’이었던 것이다. 즉, 민의를 상징하는 국회에 그것도 최고 명당자리인 본청 앞에 일본산 나무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화백나무가 심어져 있는 곳은 태극기와 국회기 게양대 바로 옆이다. 따라서 당시의 ‘국회 기념식수 1호’는 역사를 왜곡하고 있었다. 가짜 기념식수에 ‘부시 대통령 기념식수 표지석’을 세워놨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문화재제자리찾기 혜문 대표는 “국회의사당에 일본산 나무가 있다는 것은 역사 왜곡이자 국가의 수치다. 당장 화백나무를 뽑아내고 한국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 수종으로 교체해야 한다. 아울러 부시 전 대통령 기념식수 표지석의 내용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시사저널> 제1181호(2012년 6월5일자)에 ‘국회의사당 기념식수 1호는 가짜였다’는 단독 보도 기사를 실었다. 보도 이후 국회는 곧바로 입장을 내놨다.

시민단체인 문화재제자리찾기가 ‘사실 확인’ 민원을 제기했고, 국회는 “향후 수종을 교체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라고 밝힌 것이다. 일본산 화백나무를 뽑아내고 다른 나무로 심겠다는 뜻이었다. 레이건 대통령의 기념식수인 ‘화백나무’도 교체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같은 해 6월7일 국회에 공식 질의를 했다. 그랬더니 국회는 “교체 시기 적기 등을 검토한 후 구체적인 교체 계획을 수립하겠다”고 답변했다. 기념 식수 1호의 표지석에 대해서도 물었다. 당시 표지석에는 식수 이유, 식수자 소속, 식수자 이름, 식수 일자가 기록돼 있었다.

이에 대해 국회는 “표지석 자체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놨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해석이었다. 원래 심었던 나무가 죽고, 새로운 나무로 대체했을 경우 이런 사실을 표지석에도 기록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국회는 ‘가짜 기념식수’와 관련한 근거를 남겨 놓지 않고 싶었던 것이다.

국회사무처는 일본산 화백나무를 뽑아내고 처음에 심었던 주목으로 교체한 후 이와 관련한 내용을 표지석 위 나무판에 적어놓았다.

<시사저널> 보도 5개월 후인 11월3일 국회 사무처는 ‘가짜 기념식수 1호’를 뽑아내고 처음에 심었던 주목으로 교체했다. 국회기 게양대 옆에 당시 레이건 대통령이 심었던 화백나무도 뽑아내고 역시 주목을 심었다. 기존의 표지석 옆에 기념식수를 교체한 내막을 적은 나무 표지석도 세웠다. 이로써 내가 요구한 모든 내용을 수용한 것이다.

국회 정문 출입문 초소 앞 사잇길로 이전된 일본산 ‘가짜 기념식수’ 1호와 3호.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주목은 국내 농원에서 국내산으로 가져다 심었다. 기존 식수(화백나무)는 국회 정문 출입문 초소 앞 사잇길에 이식했다”고 말했다. 또 “기념식수 교체와 관련해 미국 대사관측과 사전 교감은 없었다”고 밝혔다.


이로써 30년간 국회의사당에 숨겨져 있던 역사적 왜곡이 드러났고, 또 바로잡는 성과를 거뒀다. 국회 경내를 차지하고 있던 일본산 나무도 뽑아냈다. 잘못된 역사 하나를 바로잡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