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독립운동가 ‘김정수 가족사기단’의 실체
일가족 ‘3대 5명’이 독립운동가의 공적을 가로 채 ‘애국지사’로 둔갑했다.
정부는 이들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하고 매달 유족 연금을 지급했다. 국가와 민족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인 ‘애국지사 가족사기단’의 실체를 고발한다.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있는 묘지번호 181번 김정수는 가짜다.
1909년 평안북도 영변에서 출생한 김정수는 항일무장독립운동 단체인 ‘참의부’ 등에서 항일투쟁 활동을 했다며 독립유공자 신청을 했다. 국가보훈처는 1968년 김정수에게 건국 훈장 애국장(현 독립장, 3등급)을 수여했다.
김정수는 1980년에 사망한 후 서울 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묻혔다. 정부는 이때부터 김정수 유족에게 보훈연금 등을 지원하며 각종 혜택을 줬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이 생긴다.
2009년에 김정수와 거의 유사한 공적으로 ‘김정범’이라는 인물이 새로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은 것이다. 김정범은 1899년 평안북도 초산 출신이다. 1920년대 만주지역의 대표적인 항일조직인 통의부, 참의부에서 활동했으며 군자금 모집과 친일분자 척결에 나서다가 1932년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김정범은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10년을 선고받고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 중 8년10개월의 옥고를 치른 후 1941년 6월 가출옥했다. 정부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해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4등급)을 추서했다. ‘김정수’와 ‘김정범’. 이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인물이지만 같은 공적을 갖고 독립운동가로 인정 받았다. 둘 중 하나는 ‘가짜’라는 뜻이다.
평북 영변 출신의 ‘김정수’가 가짜고, 평북 초산 출신의 ‘김정범 선생’이 진짜 독립운동가다. 가짜 김정수가 진짜 김정범 선생의 공적을 가로채 1968년에 훈장을 받았고, 보훈처는 그로부터 41년만인 2009년에 김정범 선생에게도 훈장을 추서했다. 즉 보훈처는 동일한 공적에 ‘이중포상’을 한 셈이다.
김정수가 가짜라는 근거는 차고 넘쳤다.
김정수는 보훈처에 공적서류를 낼 때 인우보증서 7통을 함께 제출했다. 김씨의 독립운동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증명하는 서류다. 보훈처는 이것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보내 김정수의 필적과 대조해 봤다. 그랬더니 7통 중 2통이 김정수의 필체와 동일한 것으로 나왔다. 즉 다른 사람의 이름을 도용한 후 자신이 써서 제출했다는 뜻이다. 나머지 5통의 신뢰성도 떨어진다.
김정수와 김정범 선생이 동일인인지 지문도 대조했다. 보훈처 관계자는 “일제강점기에 남아 있던 김정범 선생의 지문 원본과 해방 후 채취한 김정수의 지문을 대조해 봤으나 다른 사람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김정수의 공훈록을 보면 그의 독립운동 기록은 ‘1933년 2월8일자’ 동아일보 등에 근거를 두고 있다. 김정범 선생의 공훈록에도 이와 같이 동일하게 기록돼 있다. 기자가 당시 동아일보 기록을 확인해보니 제목이 ‘참의부원 김정범 공판’으로 돼 있었다. 김정범 선생이 일본 경찰에 체포된 후 재판에 넘어가 검사가 징역 10년을 구형했다는 내용이다.

이 기사에서 주목할 점은 ‘김정수’라는 이름이 전혀 거론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판은 실명으로 하기 때문에 ‘김정수’를 ‘김정범’으로 잘 못 적은 것도 아니다. 즉 같은 신문기사를 독립운동 근거로 제시하고 있지만 이것은 김정수가 아니라 김정범 선생의 공판내용이며, 김정수가 가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앞서 나온 동아일보 1932년 10월1일자 관련기사에도 ‘김정범 선생’의 실명으로 독립운동하다 체포됐다고 나와 있다. ‘김정수’라는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 그가 이명(다른 이름)으로 활동했다면 재판기록 등에는 기록돼 있어야 하지만, 그런 사실이 전혀 없다.
독립운동가 공훈록에 있는 ‘가짜 김정수’와 ‘김정범 선생’의 사진을 비교해 보면 한 눈에 봐도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진짜에게 훈장을 줬다면 가짜의 서훈은 취소하고, 현충원에서 파묘하는 게 맞는데도 보훈처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김정수는 지금까지 40여 년 동안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됐을 뿐만 아니라 유족들에게는 매달 수 백 만원의 보훈연금을 지급해 왔다. 엄청난 세금 낭비이며 국가적인 수치다.
그런데 김정수는 또 다른 가짜 독립운동가와도 깊게 연결돼 있다. 보훈처는 1998년 애국지사 묘역에 있던 ‘가짜 김진성’을 파묘한 후 그 자리에 진짜 애국지사인 ‘김진성 선생’을 안장했다. 가짜 김진성은 진짜 김진성 선생의 공적을 가로 채 30년 동안이나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돼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가짜 김진성(1913년생)이 애국지사 묘역에 묻혀 있는 가짜 김정수(1909년생)의 동생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형제가 모두 가짜였던 것이다. 이에 대한 근거는 김정수 묘비 뒤에 있는 직계 후손들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다. ‘김득봉’, ‘김현종’, ‘김득룡’이 아들로 올라가 있는데, 가짜 김진성의 묘비에는 조카로 나와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정수 일가는 ‘3대 5명’이 독립운동가로 올라있다. 이중 김진성은 파묘됐다.
김정수도 가짜가 확실하다. 그러니까 독립운동가 공훈록에 올라 있는 5명 중 2명이 가짜였던 것이다. 여러 근거를 종합하면 독립운동가로 올라있는 김정수의 할아버지 김낙용(1860~1905년), 아버지 김관보(1882~1924년), 큰아버지 김병식(1880~미상) 또한 가짜 독립운동가일 확률이 아주 높다.
김정수의 공훈록을 보면 그는 조부인 김낙용이 1919년 3·1운동 때 체포돼 옥사하자 부친 김관보가 친형인 병식과 함께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한 것으로 나와 있다. 김관보 형제는 이런 사실이 일본 경찰에 탐지되자 1920년 봄 만주로 망명했다고 기록돼 있다.
그리고 김정수는 2년 후인 1922년 5월 부친 김관보를 쫓아 만주로 망명해 함께 독립운동을 한 것으로 나와 있다. 김정수가 가짜라면 함께 독립운동을 했다고 한 부친의 독립운동 사실도 거짓일 확률이 높다. 이들 일가가 조직적으로 신분세탁을 해서 ‘독립운동가’로 둔갑했다는 얘기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중국과 한국의 외교관계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김진성 선생의 경우 1946년 중국으로 건너갔다. 18살의 나이에 만주지역 독립군 체포에 앞장선 일본 밀정을 처단했고, 1934년 일제 경찰에 체포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1948년 광복 때까지 꼬박 11년의 옥고를 치러야 했다.
그 후 김진성 선생은 중국 심양에서 머물다 한국전쟁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1961년 타계했다. 당시 한‧중 사이에는 국교가 없어서 선생은 물론 자손들도 한국에 들어올 수가 없었다. 7년 후인 1968년 ‘김재원’이라는 여자가 나타나 아버지인 ‘가짜 김진성’을 내세워 독립유공자로 지정해 줄 것을 요구해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고 현충원에 안장됐다. 이렇게 해서 감쪽같이 가짜가 진짜로 둔갑할 수 있었다.
그러다 1992년 한중수교가 이뤄지고 양국 간 왕래가 시작된다. 1993년 9월 김진성 선생의 장남 세걸씨가 귀국해 보훈처에 부친의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가짜의 실체가 드러났다. 이미 누군가 부친의 공적을 가로채 훈장을 받아갔던 것이다. 그게 바로 ‘가짜 김진성’이었다.
대개 가짜는 호적을 위변조 한 후 실제 인물과 똑 같거나 혹은 비슷하게 만든 후 여기에 애국지사의 항일투쟁 공적을 가로채 독립유공자로 둔갑하는데, 가짜 김진성도 이와 비슷한 수법을 사용했다. 중국이나 북한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의 기록이나 후손들을 확인할 방법이 없는 것을 악용한 것이다. 가짜 김정수가 공적을 가로챈 김정범 선생 또한 중국에서 활동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정부는 독립운동가 후손에게는 매달 보훈연금을 지급하고 있다. 김정수의 경우 본인과 승계자인 아내가 사망했기 때문에 아들에게 승계됐다. 매달 200만 원이 넘는 독립유공자 보훈연금이 꼬박꼬박 통장으로 입금된다. 연간으로 따지면 2400만원이 넘는다.
필자는 2014년부터 김세걸 선생과 함께 가짜 김정수와 그 일가족을 단독으로 고발해왔다. 보훈처는 가만히 뒷짐지고 있다가 2015년부터 가짜 김정수에 대한 연금과 예우를 정지시켰다. 2017년 하반기 부터는 나머지 가짜(김낙용‧김관보‧김병식) 유족들이 받던 연금와 예우를 정지했다.
김정수와 그의 자식들은 독립유공자로 등록된 1968년부터 연금지급이 정지된 2015년까지 47년 동안 꼬박꼬박 세금으로 연금을 받았다. 화폐 가치를 감안해 단순 계산해도 10억 원이 훨씬 넘는다. 여기에다 취업, 교육, 공공시설과 의료 등 각종 혜택을 합치면 천문학적 금액이다.
가짜 김진성의 후손도 30년 동안 보훈연금을 받았다. 여기에 독립운동가로 이름이 올라 있는 김정수 할아버지 김낙용, 아버지 김관보, 큰아버지 김병식까지 합치면 이들 일가족에게 지급된 연금과 혜택 등이 총 50억원을 훨씬 넘는다는 계산이 된다.
문제는 가짜 독립운동가로 판명돼도 자진 반납하기 전에는 ‘훈장’의 강제회수가 안 된다.
이미 지급된 보훈연금도 자진 반납하지 않는 한 소급해서 회수할 방법도 없다는 것이다. 파묘도 강제성이 없다. 가짜 후손들에게 묘를 이장해 달라고 사정해야 할 판인 것이다. 진짜 독립운동가의 공적을 가로챈 범죄행위인데도 처벌할 법적근거도 마땅치 않다. 때문에 가짜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가짜로 판명돼도 전혀 손해 볼 것이 없다. 그래서 ‘독립운동가 장사’라는 말까지 나도는 실정이다.
보훈처는 필자의 계속된 고발기사가 나가자 2016년부터 공적심사위원회(공심위)를 개최해 김정수 등 가짜 일가족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서훈 취소 등을 검토했다.


그리고 2018년 8월27일 정부는 대통령령으로 가짜 독립운동가인 김정수, 김낙용, 김관보, 김병식의 서훈을 취소했다. 이에 따라 훈장 박탈, 보훈연금 국고 반환, 파묘 등 후속조치도 취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현충원은 파묘 전 단계로 김정수의 묘비를 철거하고 그자리에 유족에게 묘소를 이장하라는 안내문 표지판을 세워놓았다. 현행 국립묘지법상 유족의 동의없이는 파묘나 강제 이장이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김정수는 가짜로 판명되었는데도 여전히 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돼 있다. 기막힌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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