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

친모 성폭행 살해한 패륜 악마 김영호


가족과의 사이에서 인륜(人倫)과 천륜(天倫)을 저버린 행위를 ‘패륜(悖倫)’이라고 한다. 지금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김영호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잔혹한 패륜 악마였다.

경기도 가평에 살던 김영호(31)는 5살 때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동생과 함께 고아원에 맡겨졌다. 김씨의 어머니 이아무개씨(53)는 시어머니의 학대로 남편과 이혼한 뒤 아들 형제를 고아원에 맡긴 후 나중에 재혼했다.

19세 때 고아원에서 나온 김씨는 일정한 직업 없이 서울과 목포, 여수, 부산 등지를 돌아다니며 구두닦이와 날품팔이 생활을 했다. 폭력과 절도 등으로 입건돼 교도소를 들락거리며 전과 5범이 됐다.

김씨는 결혼해 1남 1녀를 낳았으나 상습적으로 가정폭력을 휘둘렀다. 1983년 10월 부인 정아무개씨(30)가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가출했다. 당시 김씨에게는 한 살인 아들과 세 살인 딸이 있었다. 김씨는 남매의 양육을 포기하고 서울 청량리 맘모스백화점 앞에 내다 버렸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망친 책임을 어머니 이씨에게 돌렸다. 툭하면 어머니에게 찾아가 행패를 부렸다. 자신과 동생을 고아원에 맡기고 재혼한 것에 앙심을 품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땅 판돈 2100만 원을 강제로 뺏어 사업을 하다 날려먹기도 했다.

1989년 11월25일 밤 11시쯤 김씨는 이날도 자신의 집 안방에서 어머니에게 행패를 부렸다. 욕을 하고 폭력을 휘둘렀다. 이걸로도 성이 차지 않았던지 “어린 자식을 두고 어떻게 재가했느냐”며 자살을 강요했다. 어머니 이씨는 아들의 강요에 못 이겨 칼로 복부를 3~4회 찔렀다.

이씨가 피를 흘리자 김씨는 방안에 있던 광목천으로 어머니의 손발을 묶고 윗옷으로 얼굴을 씌워 마당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손수레에 눕힌 뒤 나무와 콩깍지 더미를 쌓은 후 석유를 뿌려 불을 붙였다. 김씨는 이렇게 살아 있는 어머니를 불에 태워 죽였다. 김씨는 그 길로 줄행랑을 쳤다. 경찰이 그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11월28일 새벽 2시,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한성여인숙에 건장한 남성들이 들이닥쳤다. 한 투숙객이 잠자고 있던 방을 불시에 열고 “김영호, 너를 모친 살해혐의로 체포한다”고 말하고는 손에 수갑을 채웠다. 이들은 경기 가평경찰서 형사들이었다. 경찰은 김씨가 동생(28)이 사는 봉천동에 다녀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일대 여인숙을 뒤져 김영호의 소재를 파악했던 것이다.


김씨는 가평경찰서로 압송됐다. 경찰은 김씨를 존속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했다. 그런데 김씨의 범행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어머니 이씨를 살해하기 약 한 달 전 의부인 김아무개씨(78)를 때려 숨지게 한 사실도 드러났다.

김씨는 의부인 김씨가 중풍으로 앓아누워 대소변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데다 토지를 매각한 돈을 주지 않는다고 주먹과 음료수 병으로 마구 때려 숨지게 했다. 경찰에는 병에 걸려 사망했다며 ‘병사’로 신고했다. 하지만 김씨의 거짓말이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던 것이다.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김씨가 어머니 이씨를 성폭행했다는 사실도 추가로 드러났다. 단 한 번에 그쳤는지, 상습적인지는 기록에 나와 있지 않으나 어머니에게 못된 짓을 했던 것은 사실이다.

김씨는 살인 및 사체 유기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과 2심은 사형을 선고했다. 김씨는 이에 상고했고, 대법원은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잔인한 범행방법 등에 비춰 극형에 처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씨는 1992년 10월29일 사형이 집행됐으며, 죽기 전 장기기증을 서약했다.■

<저작권자 ⓒ정락인의 사건추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