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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분계선 넘은 중대장 ‘석정현 대위’ 월북사건

석정현은 경기도 장호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단기사관 12기생으로 입대했다.

1976년 2월 소위로 임관, 육군 1사단 15연대 1대대 1중대장(대위)으로 근무한다. 그는 28세 때인 81년 8월14일 군사분계선을 넘어 월북했다. 당시 남한에는 부모와 아내, 딸 둘이 있었다.

그가 왜 월북했는지는 자세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석 대위와 함께 군생활을 했다는 A씨는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석정현은 우리 수색중대장 이었다. 나는 당시 도라 OP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했다”며 석 대위와 자신과의 관계를 언급했다.

A씨는 이어 “바둑을 좋아한 석 대위는 내게 자주 찾아왔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월북 전 석 대위의 아내가 면회를 왔는데 “아버님이 위독하니 돌아 가시기 전 상봉해 달라”고 했고, 석 대위는 연대장에게 휴가를 신청했으나 아내가 보는 자리에서 ‘안돼’라는 통보를 받았다는 것이다.

석 대위의 아내는 울면서 돌아갔고, 석 대위는 월북하기 10여분 전 A씨에게 전화해 “너와 더 이상 바둑은 못 둔다”고 했다. A씨는 갑자기 무슨 말인가 했는데, 석 대위가 월북한 후 그 뜻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석 대위는 월북 후 김정일 총비서로부터 ‘국가수훈’을 받았고, 군 소좌(남한의 소령) 계급으로 북한군에 편입됐다. 북한은 군 장교출신자는 남한에서의 군 경력을 고려, 1계급 진급시켜 북한군에 편입시키고 있다.

북한군에 편입된 월북장교들은 대개 대남공작원 양성교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석정현은 다른 월북자들과 마찬가지로 북한의 체제선전과 대남비방에 이용됐다. 그는 또 북한 당국이 정해준 여성과 결혼해 자녀들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2년 4월15일 북한 평양방송은 김일성 주석의 90회 생일을 기념해 ‘방송무대’란 이름의 월북자 좌담프로그램을 방송했다. 참석자 중에 석정현도 있었다.

석씨는 북한의 선전물에 여러차례 등장하며 체제 선전에 단골로 이용돼 왔다.

그러나 월북자들에게 북한은 창살없는 거대한 감옥이다. 처음 이용가치가 있을 때만 활용하고 나중에는 끝없는 감시를 당해야 한다. 국가안전보위부와 사회안전부가 2중3중 감시망을 펴고 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잘못했다가는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게 된다.

그 중 한 명이 이준광씨다.

그는 정보부대 소속 소령으로 복무하다 진급이 누락되자 여기에 불만을 품었고, 1978년 6월13일 강원도 인제에서 함께 있던 운전병에게 월북을 제의했으나 거부하자 다리에 총상을 입히고 혼자 월북했다.

북한 중앙방송은 4일 뒤 그의 월북사실을 발표했다.

1994년 국제사면위원회가 공개한 북한 정치범수용소 ‘승호리수용소’ 수용자 중에 이준광의 이름이 있었다. 1999년 통일연구원이 발간한 ‘북한인권백서’에도 이씨가 여전히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돼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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