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5명과 불륜 행각벌인 ‘오체불만족’ 작가
세상에는 신체적 한계를 정신력 하나로 이겨내며 수많은 이들에게 등불이 되어준 인물이 있다. 전 세계인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던 일본의 오토타케 히로타다(乙武洋匡)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사지가 없는 몸으로 태어났지만, 그 누구보다 당당하고 역동적인 삶을 살았던 그는 한때 희망의 상징 그 자체였다. 하지만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섰을 때 마주한 사생활의 민낯은 그를 아끼던 이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팔다리 없는 아이, 세상의 벽을 넘다
1976년 봄, 일본 도쿄도 신주쿠구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아기는 태어날 때부터 양팔과 다리가 없었다. 의학계에서는 이를 매우 보기 드문 유전 질환인 ‘테트라 아멜리아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자라면서 겨우 10센티미터 남짓 자란 짧은 신체 구조가 그가 가진 전부였다.

부모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낙담하는 대신 아이에게 평범한 삶을 선물하기로 마음먹었다. 오토타케 역시 자신의 신체를 부끄러워하거나 숨기지 않았다. 그는 비장애인 아이들과 똑같은 교육 과정을 밟으며 성장했다. 몸은 불편했지만 마음은 늘 운동장을 달렸다. 학창 시절에는 친구들의 도움과 자신만의 요령을 터득해 야구와 농구를 즐겼고, 물속에서는 자유롭게 수영을 하며 신체적 한계를 하나씩 깨뜨려 나갔다.
고등학교를 마친 그는 일본의 명문 사학인 와세다대학에 입학해 정치학을 공부했다. 캠퍼스에서는 언제나 밝은 미소로 동기들과 어울렸다. 그는 늘 “장애는 불행이 아니라, 내가 가진 조금 독특한 신체적 특징일 뿐”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며 주변을 밝게 만들었다.
580만 부의 기적, 세상을 울린 청년
대학 생활이 막바지에 접어든 1998년, 오토타케는 자신의 성장 과정과 삶을 담담하게 기록한 자서전 <오체 불만족>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일본 사회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삶을 즐기는 하나의 방식으로 풀어낸 그의 글솜씨에 대중은 열광했다. 책은 일본에서만 580만 부가 넘게 팔리며 단숨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듬해인 1999년, 이 책은 한국에서도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국내에서도 50만 부 이상 판매되며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매스컴에 등장한 그의 환한 미소와 특수 휠체어는 희망을 상징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수많은 독자가 그의 글을 읽고 눈물을 흘렸으며, 삶의 용기를 얻었다고 고백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그의 행보는 더욱 거침이 없었다. 방송국 리포터로 활동하며 현장을 누볐고,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통신 교육 과정을 이수해 초등학교 교사 자격증까지 땄다. 실제로 그는 2007년부터 3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단에 섰으며, 이후 도쿄도 교육위원으로 발탁되어 교육 정책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 시기 그는 대학 후배와 결혼해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두며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사랑으로 신체적 장애를 뛰어넘은 이들 부부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붕괴의 서막, 주간지의 한 줄 기사
대중적 인기와 사회적 존경을 동시에 거머쥔 그에게 일본 정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시 집권당이었던 자민당은 그를 선거의 핵심 후보로 영입하고자 공천을 제안했다. 오토타케 본인 역시 사회를 바꾸겠다는 포부로 정치 입문을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강연료와 방송 출연료, 그리고 수억 원에 달하는 광고 모델료가 쏟아지며 그는 경제적으로도 큰 부를 쌓았다.
그러나 대중이 바라보던 영웅의 모습 뒤에는 전혀 다른 삶이 숨겨져 있었다. 2016년 3월, 일본의 유력 주간지인 <주간신조>가 그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기사를 실었다. ‘일부일처로는 불만족…오토타케 5명과 불륜’이라는 제목은 그가 쓴 책의 제목을 비튼 자극적인 내용이었다. 해당 매체는 오토타케가 젊은 여성과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왔으며, 주위의 눈을 속이기 위해 다른 남성을 동행시키는 치밀함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처음에는 사실을 부인하던 오토타케는 이내 쏟아지는 증거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는 추가 언론 인터뷰에서 보도 내용이 사실임을 인정했다. 심지어 결혼 생활 도중 만난 불륜 상대가 한두 명이 아닌 5명에 달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털어놓았다. 대중이 믿고 있던 도덕적인 지도자의 이미지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고백이었다.
환호가 비난으로 바뀐 순간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오토타케는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사죄의 글을 올렸다. 자신을 믿어준 가족과 사회를 배신한 행위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사건 초기, 그의 아내는 “남편의 행동에 아내인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며 세 아이를 위해 가정을 지키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어떻게든 가정을 유지해 보려는 노력이었다.
하지만 대중의 실망감은 분노로 변해 있었다. 그의 사생활에 대한 온갖 자극적인 폭로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지인들의 입을 통해 그가 평소 음담패설을 즐겼으며, 이성 관계에 있어서 대외적인 이미지와 180도 다른 모습을 보였다는 증언이 계속되었다. 심지어 불륜 상대였다고 주장하는 여성이 언론에 나와 그와의 은밀한 관계를 상세하게 이야기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의 신체적 조건이 오히려 이성에게 다가가는 비결이 되었다는 폭로는 사회에 더 큰 충격을 주었다. 말솜씨가 뛰어났고, 사지가 없는 조건 때문에 여성들이 경계심 없이 쉽게 다가갔다는 분석이었다. 이 과정에서 확인되지 않은 자극적인 사생활 소문들이 인터넷을 뒤덮었다. 그렇게 그를 정계로 이끌려던 움직임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대중의 시선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깨진 거울 뒤에 남겨진 질문
가정을 지키겠다던 아내의 다짐도 쏟아지는 폭로와 사회적 비난 앞에서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사생활 폭로 사건이 터진 지 불과 6개월 만인 2016년 9월, 오토타케는 공식적으로 이혼을 발표했다. 15년 동안 이어져 온 결혼 생활이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그는 개인적인 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사과의 뜻을 전했다.
그가 보여준 끝없는 도전 정신과 성취는 분명 많은 이들에게 삶의 원동력을 주었다. 신체의 한계를 이겨낸 그의 전반생은 여전히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도덕성이 결여된 사생활은 그가 쌓아 올린 탑을 단숨에 무너뜨렸다.
인간은 누구나 완벽할 수 없으며, 대중이 만든 영웅의 모습 역시 때로는 허상일지 모른다. 오토타케 히로타다의 삶은 우리에게 한 인간을 바라볼 때 신화와 현실의 간극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그리고 진정한 극복이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그가 남긴 휠체어의 궤적은 이제 희망의 기록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지울 수 없는 커다란 얼룩으로 사회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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