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죽은 영혼을 찍는 사진사의 비밀

1863년 영국 크루에서 태어난 윌리엄 호프(남)는 목수로 일하면서 취미로 사진을 찍었다.

42살 때인 1905년 그는 우연히 동료 목수이자 친구의 사진을 찍게 된다. 얼마 후 현상한 사진을 본 윌리엄은 소스라치게 놀란다. 친구 옆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형체가 찍혀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은 입소문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얼마 후 한 노신사가 윌리엄을 찾아와 “영혼을 찍는 사진사가 맞느냐?”고 물었다. 윌리엄은 “그건 우연이었다”고 말했으나 이 남성은 죽은 아내가 보고 싶다며 혹시 모르니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이 남성은 영국의 유명한 과학자 윌리엄 크룩스였다.

윌리엄은 크룩스의 사진을 찍었는데, 놀랍게도 사진을 현상했더니 그 옆에 한 여성이 서 있었다. 크룩스의 죽은 아내 모습이 찍혀 있었던 것이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수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달라며 윌리엄을 찾아왔다. 당시 영국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의 영혼과 산 사람이 영매를 통해서 만날 수 있다고 믿었다.

더욱이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 중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고, 죽은 가족을 그리워하던 많은 사람들이 윌리엄을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정말 그가 찍은 사진에는 죽은 가족들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자 윌리엄은 목수 일을 그만두고 ‘크루 서클’이라는 심령사진 단체를 만들어 사진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당시 그를 만났던 사람들에 따르면 윌리엄은 사진 찍기전 항상 고인을 기리는 특별한 의식을 치렀다. 사진 찍는 순간에는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나누며 고인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언제부터인가는 사진이 찍힌 영혼과도 대화를 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유명 추리소설 ‘셜록 홈즈’의 작가 아서 코난 도일도 그의 사진을 높이 평가하면서 윌리엄은 심령 사진 작가로 명성을 얻는다.

그러던 1920년 윌리엄에게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된다. 보낸 사람은 ‘우드’라는 남성이었다. 그는 “직접 찾아갈 순 없지만 죽은 아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알고 싶다”는 내용이었고, 아들의 사진도 첨부했다. 윌리엄은 그 남성에게 “고인은 좋은 곳에서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답장을 보낸다.

얼마 후 윌리엄이 사기꾼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그는 캠브리지대학 교수들이 심령을 연구하기 위해 세운 심령연구협회 회원 에드워드 부시였다. 윌리엄에게 편지를 보낸 사람이 바로 그 였던것이다.

에드워드는 “살아있는 사람의 사진을 보냈는데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채 마치 죽은 아들의 영혼을 본 것처럼 답장했다”고 폭로했다.

그는 또 심령협회에서 윌리엄의 사진을 조사했는데 놀라운 비밀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사진에 죽은 영혼들이 찍혀있는 건 ‘이중 노출기법’을 이용한 것으로 먼저 사진을 찍어 현상한 후 그 위에 죽은 사람의 사진을 겹쳐서 촬영하는 것을 말한다.

에드워드는 윌리엄이 이 기법을 이용해 영혼인 것처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영국 최고의 심령사진작가로 명성을 얻은 윌리엄이 알고보니 사진을 조작한 사기꾼이었다는 사실이 만천하게 밝혀진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윌리엄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그 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모든 게 조작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은 것이다.

윌리엄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서 코난 도일은 강력한 지지자이자 ‘영혼 사진 사건’이라는 책을 썼고, 당시 과학계에서 존경받던 윌리엄 크룩스와 ‘사후 인간의 생존’이라는 책을 쓴 찰스 트위데일 목사도 있었다.

코난 도일은 “그의 사진을 진짜라고 믿는 사람들도 많지만, 무엇보다 죽은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그렇게라도 떠난 가족들을 보고 싶어 진실 여부를 떠나 그 유령같은 모습이 진짜라고 믿고 싶었던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렇게 윌리엄 호프는 1933년 3월8일 사망할 때까지 계속해서 심령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들은 윌리엄 호프의 죽음과 함께 세상속에서 사라졌다.

그러다 83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 한 고서점에서 사진첩이 발견된다. 브래드포드에 있는 국립 미디어 박물관의 한 큐레이터의 눈에 띄면서 세상에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