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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기이한 성(性)문화 ‘요바이 풍습’과 여인들


‘요바이'(夜這い)는 일본의 옛 성풍습이다. 구혼이나 성관계를 목적으로 남자가 밤중에 여자의 침소에 침입해 밤을 새고 아침에 나온다.

옛날 일본은 전쟁이나 지진 등의 천재지변으로 남자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마을마다 혼기를 넘긴 처녀들과 남편을 잃은 과부들이 넘쳐났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으니 시골마을에는 늙은 남자들과 여자들 밖에 없어 노동력이 상실됐다.

마을의 존립이 위태롭자 촌장의 허락하에 요바이 풍습이 행해진다. 대상은 주로 혼기가 찬 여자와 과부, 신분이 낮은 여성들이었다. 다만 동거남이 있거나, 남자의 이웃집 여자는 요바이가 금지됐는데, 치정문제를 우려한 것으로 풀이됐다.

남자는 해질무렵 평소 점찍어 둔 여자의 집을 몰래 찾아가는데 여자는 남자가 싫으면 거절할 수 있었다. 상대의 의사를 묻지 않고 강압적으로 하는 성폭행과는 다르다.

남자는 밤새도록 여러 여자의 집을 드나드는 것도 가능했다.

남자를 기다리는 산골 마을에서는 집집마다 문을 잠그지 않고 찬밥과 과일 등의 먹을거리를 준비해 두었다. 이는 해 뜰 무렵 돌아가는 남자들이 허기를 채울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당시 일본의 남녀관계는 여자가 결혼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했는데, 요바이 기간 중 여자가 임신하면 요바이를 했던 남자들 중에 마음에 드는 남자를 선택해서 결혼할 수 있었다. 이때 남자는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묻지 않고 평생 자신의 아이로 알고 키웠다.

요바이가 행해지면서 일본 농촌에서는 “마을의 젊은 아가씨와 과부는 젊은이들 차지”라는 말이 있었다. 남자가 여자의 처소에 다니는 경우가 많았지만, 반대인 지역도 있었다.

에도 시대 중기에는 축제로까지 발전했다. 이때는 전국적으로 축제를 빌미로 한 야외 혼음이 허용됐다. 여기에는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고 어떤 행위도 비난 받지 않았다고 한다. 여성들은 이 기회를 이용해 자기보다 높은 신분의 남성과 결혼해 신분 상승을 기대했다.


요바이는 서일본 지역에서 전해내려왔으며 간토 이북지방에는 없다. 시골 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행해졌다. 일반적으로 서민의 풍습이었으나, 무사계급도 예외가 아니었다.

요바이는 시대적 지리적 차이에 따라 그 모습이 다양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낮선 손님이 마을에 찾아오면 그 손님에게 여자를 내어주기도 했다. 자신의 집에 찾아온 손님에게 아내를 밤에 빌려주는 곳도 있었다.

요바이는 다이쇼 시대(1912~1926)까지 각지의 농어촌에 남아 있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로 일본이 근대화되면서 요바이는 점점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후에도 시골지역에서 한동안 지속됐고, 1950년대를 기점으로 소멸된다.

1937년 오카야마 현에는 도이 무쓰오(21)라는 청년이 있었다. 그는 요바이에 심취했다가 그해 징병검사를 받으면서 폐결핵에 걸린 것을 알게 된다. 도이가 결핵에 걸렸다는 소문은 금새 마을 사람들에게 퍼져나갔고, 그때부터 여자들이 도이를 외면하기 시작한다.

요바이를 거부당하자 그의 가슴속에는 여자들에 대한 증오가 차오른다. 그는 자신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여자들을 죽이겠다고 마음먹는다.

1938년 5월20일 도이는 전기선을 잘라 마을을 어둠에 빠트린 후 일본도와 비수, 개조한 9연발 브라우닝 엽총을 들고 요바이를 하던 때처럼 마을을 다니며 끔찍한 살인극을 벌인다.


도이는 1시간30분 동안 마을을 휩쓸고 다니면서 30명을 살해한다. 당시 쓰야마시 외곽의 니시카모 마을 주민 중 절반 가까이 그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게 그 유명한 ‘쓰야마 사건’이다. 1983년에 개봉된 영화 <오밤중의 아들>의 모티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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