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이상한 김동민 일병 부모
국방부는 김동민 일병의 단독범행으로 결론지었으나 유족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김일병을 살려야 한다며 구명운동에 나섰다.
다른 사건 같으면 가해자 부모들이 피해자 부모들을 찾아가서 무릎 꿇고 “제발 내 아들 좀 살려달라”고 애원할 텐데, 530GP 사건은 거꾸로였다.
유족들은 김일병의 부모를 만나기 위해 먼저 집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김일병 부모는 유족들의 방문을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
문을 걸어 잠그고 만나주지 않았다. 몇 차례의 설득 끝에 자리를 함께했고, 유족들은 “당신 아들은 범인이 아니다”며 진실 찾기에 동참해 줄 것을 간곡하게 부탁했다.
유족들은 군사재판이 고등법원까지는 재판을 통해 진실을 밝히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정기승 전 대법관의 주선으로 최환 전 서울지검장 등의 변호인단을 꾸려 대법원에서 진실을 규명하려고 했다.
그런데 김일병 부모가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어 버린다. 이때문에 상고를 하지 못해 대법원 재판은 받지 못하고 군사재판인 고등법원의 선고로 사형이 확정됐다.
김일병 부모가 자식을 살릴 마지막 기회였던 대법원 상고를 포기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도 유족측에서 변호인단을 구성해 구명하기로 했는데, 참으로 아이러이한 일이다.

유족들은 자식을 죽인 범인으로 지목된 김일병을 살리려고 하고, 김일병 부모는 자식을 살릴 마지막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으니 말이다.
유족들이 이렇게 까지 한 이유는 대법원이 법적으로 진실을 밝힐 마지막 기회였고, 사건의 열쇠를 쥔 김일병을 살리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가 사실상 사형제 폐지국가에 있기 때문에 김일병을 사형시킬 수는 없겠지만, 유족들은 만에 하나 김일병이 사형당하지 않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했던 것이다.
김일병의 아버지가 공식석상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2007년 9월2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있었던 ‘연천 GP 총기사건’ 관련 기자회견이다. 유족들의 간청에 의해 기자회견장에 나왔으나 그 다음부터는 유족들을 피했다.
2008년쯤 필자는 유족들과 함께 김일병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부천으로 갔다. 유족들이 어렵게 약속을 받아낸 것이다. 약속 장소에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었더니 얼마 후 김일병 아버지가 나타났다. 필자와는 초면이었다.
필자는 기자 명함을 꺼내 김일병 아버지에게 건넸다. 그러자 김일병 아버지는 도망치듯 뒤돌아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도와주러 간 것인데,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는지 지금까지도 의문이다.
이렇듯 김일병의 부모는 아들을 살리는데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유족들이 사형을 선고받은 아들의 구명에 나서는데도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이에대해 고 조정웅 상병의 아버지 조두하 한국폴리텍대학 교수는 “동민이 부모는 자식의 생명이 달린 문제인데도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동민이의 수사기록을 볼 생각도 안 하고 유족들을 만나는 것도 기피했다”며 “‘당신 아들은 범인이 아니다’고 했는데도 남의 자식 생각하듯 했다. 같은 부모로서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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