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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겸 영화배우 윤영실 실종사건


1980년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톱 모델이자 영화배우가 한 순간에 사라졌다.

30년이 넘었지만 이 여배우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라졌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말 그대로 감쪽같이 ‘증발’됐다. 그녀가 바로 윤영실이다.

윤씨는 지난 1956년 7월8일 제주도 제주시 건입동에서 1남3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여섯 살 위 언니인 영화배우 오수미(본명 윤영희)를 따라 서울로 올라와 상명여고를 졸업했다.

고교 때 배운 무용 실력을 인정받아 국립무용단에 입단해 단원으로 활동했다. 22살 때인 1977년 모델로 데뷔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다.

1980년대 여자성인의 평균키는 155cm 정도였는데, 윤영실은 174cm였다.

윤씨는 서구적인 외모와 세련미 넘치는 이미지로 일약 모델계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여기에 당대 최고의 배우였던 언니 오수미의 후광까지 얻으며 ‘자매전성시대’를 구가했다.

윤영실은 승승장구했다. 모델 데뷔 첫해에 영화배우로도 데뷔해 단번에 홍파 감독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의 주연을 맡았다. 1977년 이원영 작가의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나리오 부문 당선작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이로써 윤영실은 패션모델 출신 여배우 1호가 됐다.

이듬해인 1978년에는 TBC 동양방송 드라마에도 첫 출연했다. 1983년에는 <부러진 화살>로 유명한 정지영 감독의 데뷔작인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에서 언니 오수미와 나란히 주연을 맡기도 했다. 극중 배역도 자매로 나온다.

1982년 6월4일자 <경향신문>에는 “디자이너 역의 오수미와 그녀의 단골 모델 윤영실은 가슴은 물론 아래옷까지 모두 벗고 촬영했다.

대체로 정사신을 찍을 경우 여배우가 벗는 장면은 촬영기사와 감독만 입회하고, 촬영 중에도 반창고나 살색팬티 등으로 카무플라주(유기체의 몸 빛깔을 주변 환경과 식별하기 어렵게 위장하는 방법) 하는 게 통례. 그러나 이들 자매는 서슴없이 벗어 붙이고 나서 무색의 경지를 벗어났다”고 적고 있다.

한 영화에 자매가 주연을 맡은 경우도 처음이지만 자매가 동시에 정사신을 찍은 것도 처음이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지영 감독은 윤영실을 가리켜 ‘한국의 실비아 크리스텔’(엠마뉴엘 주연의 여배우)이라고 표현했다.


윤영실은 화장품‧의류 광고에 단골 출연 모델, 배우, 드라마, 광고 등에 종횡무진했다. 1983년 6월에는 패션모델 등 6명과 함께 오늘날 패션모델 양성의 산실인 ‘(주)모델라인’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런 윤영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1986년 5월 윤영실의 연락이 두절됐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당시 그녀는 언니 오수미가 사는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25평) 근처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오수미는 동생과 연락이 끊기자 직접 집을 찾아갔다.

초인종을 아무리 눌러도 집 안에서 인기척이 없었다. “얘가 집에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언니는 걱정하는 마음이 커졌다. 일단 동생이 집 안에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오씨는 건물 경비실로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열쇠기술자를 불렀다.

그런 다음 경비원을 대동하고 현관문을 강제로 따고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에 사람은 없었지만 살림살이도 그대로 있었다. 평소 때와 다름없이 깔끔하게 정리된 상태였다. 누군가 침입했다면 살림살이가 어지럽혀 있고, 몸싸움한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집 안은 너무도 깨끗했다. 현관문 열쇠가 안에서 잠겨있었고, 누군가 강제로 문을 딴 흔적도 없었다.

그녀가 말없이 스스로 사라질 이유는 없었다.

윤씨는 모델, 배우, 광고 등을 넘나들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여기에 동료 모델과 회사까지 설립해 후배 양성에 열정을 쏟던 참이었다. 한참 잘 나가던 윤영실이 아무런 연락도 없이 스스로 잠적했을 리가 만무했다. 한때 ‘자살설’이 제기됐으나 사전 징후나 유서로 추정할만한 것도 없었다.

윤영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언니 오수미는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지금처럼 곳곳에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지도 않았고, 통신수사 등 과학수사기법이 발달되지 않아 단서를 찾는데 더 어려움을 겪었다.

윤영실은 유명인인데다 큰 키와 서구적인 외모로 인해 어디를 가던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 그런 윤씨를 실종 이후 목격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윤영실의 친구, 모델 동료, 연예계 지인 등 누구도 윤영실의 마지막 행적을 알지 못했다. 경찰이 출입국 기록을 조사해봤지만 해외로 출국한 사실도 없었다.

이렇게 완벽하게 사라진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경찰도 윤영실 실종수사에 소극적이었다. 톱 모델이자 주목받던 배우가 사라졌는데도 수사에 적극성을 띄지 않았다. 언론에는 수사의 진행 상황을 알려주거나 별도의 브리핑도 없었다.

언론도 다르지 않았다. 유명 연예인이 실종됐다면 지금 같으면 연일 매스컴의 주요 기사로 다룰 것이 분명하다. 종편의 경우 해당 모델의 사진을 배경으로 해서 패널들이 다각적인 분석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당시 언론은 침묵했다.

필자가 언론의 보도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에서 ‘윤영실 실종’으로 검색해 봤다.

그랬더니 <경향신문>의 기사 단 두 건이 검색됐다. 이마저도 사건 내용을 쓴 것이 아니라 86년 12월 <레이디경향>에 윤영실 실종과 관련한 기사가 나온다고 예고한 것이며, 또 하나는 실종 9개월에 접어든 윤영실이 서울 변두리에 숨어 살고 있다는 독자제보가 있었다는 짤막한 내용이다.

윤영실 실종을 직접적으로 다룬 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참고로 뉴스라이브러리는 1920년부터 1999년까지의 <경향신문>, <매일경제>, <동아일보>, <한겨레>를 볼 수 있는 무료서비스다.


당시는 전두환이 정권을 잡은 서슬퍼런 5공화국 시절이었다.

문화공보부 홍보정책실에서 거의 매일 각 언론사에 기사보도를 위한 가이드라인인 보도지침을 작성하여 은밀하게 시달했고, 이를 통해 정부는 언론을 철저히 통제했다.

여기에는 각종 사건이나 상황, 사태 등의 보도도 포함됐다. 윤영실 실종에 대해 정권 차원의 ‘보도지침’이 있었던 것인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결국 윤영실 실종은 미궁으로 빠지며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그녀가 죽었는지 아니면 살았는지 살아있다면 어디에 있는지 확인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때문에 지금까지 연예계 최대의 ‘미스터리’로 꼽힌다.

유명 연예인이 이렇게 완벽하게 사라진 것에 대해 ‘권력 희생양설’도 끊이지 않았다.

언니 오수미도 불운했다. 1992년 6월30일, 미국 하와이 빅 아일랜드로 여행을 갔다가 변을 당했다. 친구부부와 마우이산을 돌아본 뒤 밴 승합차로 도로를 달리다 브레이크가 파열되면서 차가 낭떠러지로 굴렀고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다. 당시 그녀의 나이 42세였다.

풀리지 않는 의문점

1.윤영실은 어디로 사라졌나.
윤영실의 실종은 의문투성이다. 개인적으로 잠적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연예생활도 최고조에 이르렀고, 인기도 절정에 달했을 때다. 더더욱 자살할 동기도 없었다. 집안이 평상시와 다름없이 깨끗하게 정리 정돈되고 평소 쓰던 물건도 그대로 있었다. 스스로 잠적했거나 자살했다면 ‘주변 정리’ ‘신변 정리’를 하게 되는 데 그런 징후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실종과 관련해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았다는 것도 의아하다. 당시 집안을 보면 외부침입 등의 흔적이 전혀 없다. 범죄에 희생됐다는 증거나 목격자도 없다. 만약 윤영실이 자살했다면 시신이라도 발견돼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었다. 하늘로 솟았는지 아니면 땅으로 꺼졌는지 물음표만 남았을 뿐이다.

2.이상한 경찰수사와 언론보도.
윤영실 실종과 진행되는 수사에 대해 경찰은 철저하게 함구했다. 윤씨가 일반인이 아니라 톱 클래스의 연예인이었기 때문에 사회적 관심이 컸는데도, 경찰은 언론에 수사관련 발표를 하지 않았다. 어찌된 일인지 언론에서도 윤영실 실종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고, 심층취재에 나서지도 않았다. 그러다보니 윤영실 실종은 큰 사건인데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묻혀버리고 말았다.


3.정권의 희생양 아닌가.
윤영실 실종과 전두환 정권과의 직접적인 관련성은 찾기 어렵다. 다만 윤영실의 실종이 신상옥‧최은희 부부의 북한 탈출과 맞물린다. 두 사람은 1986년 3월 북한을 탈출했는데, 2개월 후 윤영실이 행방불명된다. 같은 해 7월에 윤씨의 언니인 오수미가 김중만과 이혼했고, 김씨는 곧바로 미국으로 강제 추방된다.
김씨에 따르면 그의 추방에는 안기부가 주도적으로 관여했다. 이런 것 때문에 세간에는 윤영실의 실종에 정권 차원의 음모가 있지 않았느냐는 ‘전두환 정권 희생설’이 떠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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