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파타야 ‘한국인 관광객’ 드럼통 살인사건
경남 김해가 고향인 노아무개씨(남·34)는 취업을 준비하던 ‘취준생’이었다.
그는 평소 태국에 흠뻑 빠져 있었고, 여행을 통해 현지의 음식과 문화 등을 체험했다. 그는 또 태국인 여성을 여자친구로 두고 있었다.
2024년 4월30일 노씨는 관광 목적으로 태국에 입국했다. 그는 방콕의 한 호텔에 숙소를 정하고 5월2일 오후 7시46분쯤 여자친구와 함께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방콕의 유흥가인 RCA 지역 ‘루트66’ 클럽에 갔다.
이곳은 근처에 클럽이 밀집해 있어 현지의 젊은이들과 한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이튿날 새벽 2시18분쯤 노씨에게 두 명의 한국인 남성이 접근한다. 이들은 약 10분 후 노씨의 팔을 잡고 나가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로부터 5일 후인 5월7일 국내에 있던 노씨 어머니에게 의문의 전화가 걸려 온다. 노씨 휴대전화 번호였지만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당신 아들이 강에 마약을 버려 손해를 입혔으니 몸값으로 300만밧(약 1억1200만원)을 5월8일 오전 8시까지 입금해라. 그렇지 않으면 노씨를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노씨 부모는 아들이 납치됐다고 판단하고 태국 주재 한국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다. 대사관이 현지 경찰에 신고하면서 수사가 시작된다.

태국 경찰은 노씨의 동선을 추적해 그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클럽의 폐쇄회로(CC)TV를 확보했다. 여기에는 3일 오전 2시쯤 두 명의 남성이 흰색 셔츠를 입은 노씨를 렌트카에 태우고 파타야 방향으로 떠나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노씨의 태국인 여자친구는 경찰에 “이 남성들은 클럽에서 처음 만났고, 그들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진술했다.
일당들은 노씨에게 수면제를 먹인 후 의식을 잃자 차에 태워 파탸야 방향으로 이동했다. 도중에 픽업트럭으로 갈아타던 중 노씨가 의식을 찾았고 이내 몸싸움이 벌어진다.
이 과정에서 일당들은 주먹과 무릎 등으로 노씨의 상복부 등을 가격하다 저항이 거세자 목을 졸라 살해한다. 노씨 시신에서 양쪽 갈비뼈 등에 골절 흔적이 있었는데, 이때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추정됐다.
일당들은 파타야 마프라찬 호수 인근에 미리 예약한 숙소로 들어간다. 이 호수의 물은 인근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하고 있어 낚시가 금지된 곳이다. 평소에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인적이 드물다.
이날 오후 차량을 타고 숙소를 나온 일당들은 인근 상점에서 대형 검은색 플라스틱통과 가위, 나일론끈을 구매한다. 이 모습은 가게에 설치된 CCTV에 잡혔다.

이튿날 오전 9시쯤 짐칸을 검은 천으로 덮은 픽업 트럭이 숙소를 빠져나간다. 이들은 마프리찬 호수 인근에 약 1시간 정도 머물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여기까지 확인한 태국 경찰은 일당이 머문 숙소를 덮쳤으나 이미 사라진 뒤였고, CCTV 선이 모두 잘려있었다.
경찰은 이들이 노씨를 살해한 후 시신을 유기했다고 보고 잠수부를 투입해 마프라찬 호수를 수색했다. 얼마 후 잠수부들은 수심 3m 지점에서 검은 플라스틱통을 발견해 육지로 인양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통 안은 콘크리트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 안에서 나체상태로 구부러진 채 숨져 있는 노씨의 시신이 나왔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시신의 손가락 10개가 모두 잘려 있었다는 것이다. 범인들은 노씨의 시신이 발견됐을 경우 신원을 확인할 수 없게 훼손한 것이다. 부검결과 시신은 사망한 지 3~4일 지난 것으로 추정됐다.

태국 경찰은 한국 경찰과 공조해 한국인 남성 3명을 용의자로 특정했다.
이때는 일당 모두 태국을 빠져나간 뒤였다. 이중 이로운(26)은 국내로 입국했다가 5월12일 거주지인 전북 정읍에서 경찰에 검거됐다. 캄보디아로 출국한 이용진(27)은 5월14일 프놈펜의 한 숙박업소에서 체포했다.
일당 중 최고 연장자인 김형권(39)은 태국 인근 국가인 미얀마로 도주한 것으로 추정됐다. 그는 밀입국해 출국 기록이 없다.
태국 매체는 이들 일당 3명의 사진과 이름 등 신상을 모두 공개했다. 경찰청은 캄보디아에서 검거된 이씨의 송환을 위해 현지 경찰과 협의 중이다.
노씨를 살해한 일당들은 국내에서 다수의 범죄 전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태국 경찰은 이들 3명 모두 한국에서 전과가 있다고 밝혔다.
미얀마로 도주한 김씨는 2020년부터 태국을 8차례 드나들었다. 그는 한국에 머물던 2016∼2017년에 경남 창원시에서 차량을 털고 150만 원 상당의 현금을 훔친 혐의로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일당들이 과거 불법 도박장 등에서 활동한 전력도 드러났다. 김씨의 경우 폭력 전과도 있다. 여러 정황상 노씨를 살해한 일당이 국내의 폭력조직과 연계됐을 가능성도 있다.
2015년 파타야에서 한국인 프로그래머 임동준씨(25)를 살해한 김형진도 성남 국제마피아 조직원이었다. 태국에서 불법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던 그는 통합 도박사이트 관리시스템을 개발하려고 국내에 있던 임씨를 태국으로 유인해 잔혹한 폭행을 일삼다가 살해했다.
그렇다면 일당들은 왜 노씨를 살해한 것일까. 정읍에서 잡힌 이로운은 살인 혐의를 부인했다. 반면 캄보디아에서 검거된 이용권은 “금품을 노린 계획범죄였다”고 진술했다.
한때 노씨가 마약과 관련있지 않냐는 의문이 제기됐으나 노씨의 여자친구와 친구, 누나 등 가족들은 전혀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다. 현지 경찰도 이와 관련한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
태국 경찰은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상 관광객의 돈을 노린 범행에 무게를 싣고 있다. 일당들이 노씨의 어머니에게 전화해 돈을 요구한 날 노씨의 계좌에서는 170만원과 200만원 등 두 차례에 걸쳐 총 370만원이 빠져나간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다만 정확한 범행동기 등 사건 전말은 미얀마로 도주한 김형권이 잡혀야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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