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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번 뱀에 물리고 100년을 살다 간 남성


173번의 치명적인 독사 교상(물림 사고)을 겪고도 100세까지 건강하게 천수를 누린 사나이가 있다. 전 세계 과학계와 대중을 경악하게 만든 ‘인간 항체’, 빌 하스트(Bill Haast)의 이야기다. 그는 매일 스스로의 몸에 뱀독을 주입하는 이른바 ‘면독법’을 60년 넘게 실천하며 독에 대한 완전한 면역력을 구축했다. 그의 삶은 단순한 기행을 넘어, 의학적 불모지였던 뱀독 연구를 개척하고 수많은 생명을 구한 위대한 집념의 역사였다.

수로에서 시작된 호기심, 소년과 뱀의 위험한 조우

빌 하스트는 1910년 12월30일 미국 뉴저지주 패터슨에서 태어났다. 소년 하스트와 뱀의 인연은 다소 우연하고도 위험하게 시작됐다. 7살 되던 해, 동네 수로를 탐험하던 그는 평범한 가터뱀에게 손을 물렸다. 대개 아이들이라면 자지러지게 놀라며 울음을 터뜨렸겠지만, 하스트는 달랐다. 자신을 문 생명체의 빠르고 날렵한 움직임, 그리고 피부에 닿는 서늘한 감촉에 완전히 매료된 것이다.

본격적인 위기는 12살 때 찾아왔다. 보이스카우트 캠프에 참여했던 그는 숲속에서 치명적인 방울뱀과 마주쳤고, 이내 날카로운 독니에 팔을 물렸다. 병원이 멀리 떨어진 고립된 상황이었지만, 소년은 놀라울 정도로 침착했다. 주머니칼을 꺼내 물린 부위를 직접 찢고 독을 짜낸 뒤 응급조치를 취했다. 팔이 퉁퉁 부어올랐지만, 그는 병원에 가지 않고 오직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이를 버텨내며 회복했다.

같은 해 말, 그는 또 다른 치명적인 독사인 살모사류에게 물려 결국 일주일간 병원에 입원하는 소동을 겪었다. 두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음에도 하스트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오히려 뱀이라는 생명체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는 갈망만 커질 뿐이었다. 이때부터 그는 집안 가득 뱀을 모으기 시작했다. 기겁하는 어머니의 격렬한 반대도 아들의 눈을 빛나게 만든 집념을 꺾을 수는 없었다.

학교 중퇴와 밀주업, 그리고 전쟁터를 누빈 뱀 수집가

15세가 되던 해, 하스트는 이미 뱀의 머리를 고정하고 독을 추출하는 고난도의 기술을 독학으로 터득했다. 뱀과 함께하는 삶 외에 다른 길은 없다고 확신한 그는 이듬해인 16세에 과감히 학교를 중퇴하고 본격적인 ‘뱀 비즈니스’에 뛰어들었다.

19세에는 동업자를 따라 플로리다주의 에버글레이즈 늪지대 인근으로 이주했다. 당시 미국은 금주법 시대였기에 그는 생계를 위해 밀주업자들의 일을 도왔는데, 이 위험한 밤일은 그에게 뜻밖의 기회가 되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깊은 늪지대를 누비며 미국 전역에서 가장 다양하고 희귀한 독사들을 마음껏 수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호숫가 리조트를 빌려 생애 첫 ‘뱀 전시회’를 열었다. 이곳에서 그는 자신의 열정을 지지해 준 첫 번째 아내 앤(Ann)을 만나 결혼에 골인한다. 부부는 본격적인 뱀 농장을 차리겠다는 꿈을 품고 다시 플로리다로 내려갔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아내가 임신을 하자 당장 생활비가 시급해졌고, 하스트는 다시 밀주업에 손을 댔다가 당국의 대대적인 단속에 걸려 직장을 잃고 자산까지 압류당하는 실패를 맛보았다.

결국 다시 뉴저지로 돌아온 하스트는 악착같이 공부해 항공정비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당시 최고의 항공사였던 팬아메리카항공(Pan Am)에 비행 엔지니어로 취업한 것은 그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곧이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미 공군 무역 수송 정비공으로 자원했다. 군용기를 타고 남미의 밀림, 아프리카의 사막, 인도의 오지 등 전 세계를 합법적으로 비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비행이 끝날 때마다 현지 주민들을 찾아가 코브라, 맘바, 북아메리카 독사 등 치명적인 외래종 독사들을 수집했고, 이를 정비 부품 상자에 숨겨 미국으로 밀반입했다.

마이애미 세르펜타리움의 탄생과 목숨을 건 ‘면독법’

1946년, 항공사 근무와 군 복무를 통해 충분한 자금을 모은 하스트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플로리다 마이애미 남쪽에 땅을 매입했다. 하지만 대규모 뱀 농장을 짓겠다는 그의 광적인 집착은 가족 간의 불화를 낳았다. 평범하고 안정적인 삶을 원했던 아내 앤과의 갈등 끝에 결국 이혼 도장을 찍게 된다. 하스트는 낮에는 팬암 항공사의 정비사로 일하고, 밤에는 홀로 땅을 일구며 농장을 건설했다. 이 과정에서 그의 비전을 진심으로 이해해 준 두 번째 아내 클라리타 매튜스를 만나 재혼하게 된다.

1947년, 마침내 전설적인 뱀 농장인 ‘마이애미 세르펜타리움'(Miami Serpentarium)이 문을 열었다. 초기에는 하스트와 아내 클라리타, 그리고 전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직원의 전부인 영세한 규모였다.

이 무렵 하스트는 인류 의학사에 남을 가장 위험천만한 실험을 시작한다. 바로 자신의 몸을 시험대로 삼은 ‘자가 면역 실험'(면독법)이었다. 1948년부터 그는 약 60여 종의 독사에게서 추출한 독을 아주 미량으로 희석하여 매주 정기적으로 자신의 혈관에 직접 주입했다. 만에 하나 치명적인 독사에 물렸을 때 즉사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예방책이자, 인간의 몸이 뱀독에 대한 완전한 항체를 형성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무모한 도전이었다.


위기는 곧 찾아왔다. 1954년, 치명적인 신경독을 가진 우산뱀에게 물린 것이다. 하스트는 평소 주입해 둔 독 덕분에 버틸 수 있다고 자신했으나, 예상보다 강력한 독성 앞에 쓰러져 며칠 동안 혼수 상태로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그의 실험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일반인이라면 수 시간 내에 호흡 마비로 사망했을 양이었음에도, 그의 몸속 항체가 독을 중화시키며 기적적으로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이후 1950년대에만 코브라에게 20번 넘게 물렸지만, 그는 별다른 치료 없이 가벼운 붓기만 겪은 채 툭툭 털고 일어났다.

인간 항체가 된 사나이, 수많은 생명을 구하다

1960년대에 이르자 세르펜타리움은 500마리가 넘는 희귀 독사를 보유한 세계 최대 규모의 뱀 연구소이자 관광 명소로 우뚝 섰다. 한 해 평균 5만 명, 매달 4000명이 넘는 관람객이 그의 독 추출 쇼를 보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뤘다. 하스트는 뱀을 통해 막대한 부를 거머쥐었다.

그러나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단순한 돈벌이가 아니었다. 하스트는 매일 70~100번씩 독을 짜내며 전 세계 의학 연구소에 연구용 뱀독을 공급했다. 특히 코브라의 신경독이 인간의 신경을 마비시키는 메커니즘이 소아마비 증상과 유사하다는 점에 착안, 마이애미 대학교 의학연구원과 함께 소아마비 치료제 개발 시험에 전폭적으로 독을 지원했다. (이 연구는 훗날 소크 백신이 발명되면서 주류 의학계에서 밀려났지만, 뱀독의 의학적 활용 가능성을 크게 열어젖힌 사건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의 ‘피’였다. 수십 년간 뱀독을 맞아온 하스트의 혈액은 그 자체로 걸어 다니는 ‘만능 항독소’였다. 전 세계 어디선가 희귀 독사에 물려 기존의 해독제가 듣지 않는 위급 환자가 발생하면, 국경을 막론하고 하스트의 피를 요청했다.

그는 자신의 피를 뽑아 항체를 분리했고, 이를 통해 공식적으로 전 세계 21명의 죽어가는 환자를 직접 살려냈다. 특히 베네수엘라의 한 소년이 치명적인 뱀에 물려 목숨이 경각에 달했을 때, 하스트는 즉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자신의 피를 수혈해 소년의 목숨을 구했다. 이 공로로 그는 베네수엘라 정부로부터 명예 시민권을 수여받기도 했다.


1977년 나일악어의 비극, 그리고 멈추지 않은 집념

거칠 것이 없던 그의 삶에 거대한 어둠이 드리운 것은 1977년 9월3일이었다. 하스트는 농장 한편에 거대한 악어 연못을 조성해 두었는데, 그날 담벼락 위에서 구경하던 6세 소년 데이비드 와슨이 중심을 잃고 연못 아래로 추락했다. 연못에는 ‘쿠키’라는 이름의 12피트(약 3.6m) 짜리 거대한 나일악어가 살고 있었다.

소년의 아버지와 주변 남성들이 비명을 지르며 연못으로 뛰어들었으나, 굶주린 맹수의 공격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비보를 듣고 달려온 하스트 역시 직접 물속으로 뛰어들어 악어의 머리를 맨손으로 내리치며 소년을 구하려 사투를 벌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소년은 현장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깊은 슬픔과 충격, 그리고 자신의 시설에서 아이가 목숨을 잃었다는 극심한 죄책감에 휩싸인 하스트는 그날 밤, 평소 아끼던 루거 권총을 들고 연못으로 가 소년을 해친 악어에게 9발의 총탄을 퍼부어 사살했다. 그리고 오랜 세월 자신의 전부였던 마이애미 세르펜타리움의 문을 영구히 닫아걸었다. 수많은 관람객의 환호성이 가득했던 명소는 그렇게 비극적인 사건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00세의 나이로 증명한 면독법의 기적

비록 대중을 위한 쇼는 끝났지만, 과학자로서의 하스트는 멈추지 않았다. 1990년, 그는 플로리다 푼타 고다로 이주하여 ‘마이애미 세르펜타리움 연구소’를 재설립하고 오직 순수 의학 연구를 위한 뱀독 정제 작업에만 몰두했다.

그는 평생 공식적으로 173번 독사에 물렸고, 그중 20번은 일반인이라면 즉사했을 만큼 치명적인 물림이었다. 수십 년간 쌓인 독의 부작용과 감염증으로 인해 오른손 집게손가락 한 마디를 절단해야 하는 신체적 훼손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세포를 파괴하는 강한 독의 부작용 속에서도 그의 장기와 면역 체계는 기적적으로 멀쩡했다. 말년에는 웬만한 독사에게 물려도 약간의 가려움증만 느낄 뿐, 몸에서 자체적으로 독을 완벽하게 분해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많은 이들이 뱀독을 매일 주입하는 그가 단명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빌 하스트는 과학계의 상식을 비웃듯, 백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돋보기안경 없이 글을 읽고 매일 정원을 가꿀 정도로 극도의 건강함을 유지했다.

그리고 2011년 6월15일, 그는 만 100세의 나이로 평온하게 눈을 감았다. 사인은 독사병이나 질병이 아닌, 자연사였다.


빌 하스트의 삶은 무모한 기인의 해프닝이 아니다. 뱀에 대한 순수한 공포를 인류를 구원할 의학적 자산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자신의 육체를 인류 최초의 ‘인간 항독소 실험실’로 제공했던 한 과학자의 위대한 집념이었다. 그가 남긴 뱀독 연구 데이터와 항체 형성 기록은 오늘날 현대 면역학 및 독소학 분야에 깨지지 않을 이정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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