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한 줄에 ‘1000원’ 30년 동안 가격 올리지 않는 할머니의 사연
서울 강북구 수유동, 북부시장 건물의 낡은 복도를 지나다 보면 코끝을 찌르는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발길을 붙잡는다.
냄새를 따라 들어간 곳에는 세월의 흔적이 겹겹이 쌓인 작은 가게 ‘하나 김밥’이 있다. 이곳의 메뉴판은 경이로울 만큼 단출하다. 요즘 흔한 참치김밥도, 치즈김밥도 없다. 오직 ‘천 원짜리 김밥’ 단 하나가 전부다.
한때는 순대와 떡볶이, 부침개도 팔았지만, 이제 할머니는 오직 김밥에만 집중한다. 라면 한 그릇에 5000원이 넘고 김밥 한 줄이 4000원을 호가하는 고물가 시대지만, 이곳의 시계는 30년 전인 1993년에 멈춰 있다.

“남는 게 없어도 꾹꾹 눌러 담는 이유”
가격이 저렴하다고 해서 내용물까지 부실할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주인장 강순희(78) 할머니의 손길 아래 단무지, 오이, 햄, 계란, 맛살 등 필수 재료들이 빈틈없이 자리를 잡는다. 시중 김밥집의 3분의 1 가격이지만, 김밥의 두께와 무게감은 그 세 배의 가치를 담아낸다.
30년 넘게 장사를 하며 단 한 번도 가격을 올리지 않은 고집. 이문을 따진다면 벌써 문을 닫았어야 할 장사다. 하지만 할머니는 “돈을 생각하면 진작 관뒀을 것”이라며 담담히 웃어 보인다. 그 투박한 웃음 뒤에는 할머니가 살아온 모진 세월의 풍파가 숨어 있다.
할머니의 삶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젊은 시절, 산에서 농사일을 하던 남편과 결혼해 아들을 낳았지만 남편의 건강이 악화되며 가장의 짐을 짊어져야 했다. 김치 장사와 국수 장사, 미아리 고개의 작은 구멍가게를 거쳐 지금의 자리에 잡기까지 할머니는 쉼 없이 손을 움직였다.
가장 큰 아픔은 가족의 부재였다. 남편은 아들이 겨우 11살이 되던 해 세상을 떠났고, 하나뿐인 혈육이었던 아들마저 성인이 된 후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할머니 곁을 떠났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할머니에게 남은 마지막 안식처는 오직 이 작은 김밥 가게뿐이었다.
“아들도 가고 남편도 갔지만, 여길 잊지 않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내 가족이야. 그들과 옛날이야기 나누다 보면 적적함도 가시고 살아있음을 느껴.”

사라져가는 ‘정(情)’을 마는 노년의 손길
할머니의 건강은 예전 같지 않다. 굽어버린 허리는 늘 통증을 동반하고, 얼마 전에는 길에서 넘어져 무릎까지 다쳤다. 주변에서는 이제 그만 쉬라고 만류하지만, 할머니는 오늘도 새벽같이 일어나 밥을 짓고 김을 편다.
할머니에게 김밥 한 줄을 파는 행위는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이 아니다. 주머니 가벼운 이웃들에게 베푸는 따뜻한 배려이자, 스스로의 외로움을 달래는 치유의 과정이다. 손님들과 나누는 짧은 대화 속에서 할머니는 남편과 아들을 잃은 상실감을 메우고 있다.
“계속 천 원에 팔 것이냐”는 물음에 할머니는 “나는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정을 나누고 베푸는 마음으로 김밥을 말아. 그 자체가 내게는 가장 큰 행복”이라고 말한다.

이는 각자도생의 시대에 우리가 회복해야 할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를 시사한다. 개인의 이익보다 타인의 허기를 먼저 살피는 할머니의 김밥 한 줄은, 차가운 도시 한복판에서 여전히 ‘사람답게 사는 법’이 무엇인지를 증명하고 있다.
모든 가치가 자본의 논리와 효율성으로 치환되는 현대 사회에서, 할머니의 가게는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공동체의 온기’와 ‘상생의 가치’를 묵직하게 묻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