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화제

알프스 빙하에서 75년 만에 발견된 실종 부부


스위스 남서부 발레 주의 고지대 마을 디아블르레. 1942년 여름의 한가운데였던 8월15일, 이곳에 살던 마르셀린 뒤물랭(당시 40세)과 그의 아내 프란시네 뒤물랭(당시 37세)은 평소와 다름없는 아침을 맞이했다. 구두 수선공으로 일하며 성실하게 가정을 꾸려가던 남편과 마을의 교사로 존경받던 아내는 그날, 해발 2600m 고지에 위치한 목장으로 향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축들에게 풀을 먹이기 위한 여정이었다.

집을 나서는 부부의 뒤편으로 7명의 아이들이 손을 흔들었다. 당시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 있었지만, 알프스의 깊은 산골 마을은 비교적 평화로웠다. 부부가 집을 나설 때만 해도 하늘은 청명했고 햇살은 따뜻했다. 그것이 아이들이 기억하는 부모님의 마지막 모습이 될 줄은 누구도 알지 못했다.

화창했던 여름날의 급변, 빙하속으로 추락

목장으로 가는 길을 단축하기 위해 부부는 차스플레우론 빙하를 가로지르는 지름길을 택했다. 그러나 알프스의 날씨는 변화무쌍했다. 부부가 빙하 위에 진입했을 무렵, 맑았던 하늘에 갑자기 짙은 구름이 끼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눈보라를 동반한 악천후로 돌변했다. 시야가 완전히 차단된 상황에서 부부는 길을 잃었고, 빙하가 갈라져 생긴 깊은 틈새인 ‘크레바스’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채 그 아래로 추락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저녁이 되어도 부부가 돌아오지 않자 마을에는 비상이 걸렸다. 경찰과 주민들은 즉각 수색대를 구성했다. 두 달 반이라는 긴 시간 동안 수색대원들은 빙하 곳곳을 뒤지며 크레바스 내부를 손전등으로 비추었으나, 끝없는 얼음 구덩이는 아무런 흔적도 뱉어내지 않았다. 당시의 기술력과 장비로는 수십 미터 아래의 얼음 틈새를 모두 조사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결국 경찰은 부부가 악천후 속에서 크레바스에 빠져 사망한 것으로 결론짓고 수색을 종료했다.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7남매의 삶은 급격히 흔들렸다. 슬픔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아이들은 친척 집과 이웃 가정으로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한마을에 살면서도 각자의 생계를 가꾸느라 남매들의 사이는 점차 소원해졌다. 이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인 것은 실종 15년이 지난 1957년의 일이었다. 남매 중 한 명이 목사가 되어 부모님이 사라진 빙하 근처에서 추도 예배를 집전했을 때에야 비로소 일곱 형제 자매는 서로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시간은 무정하게 흘렀고, 부모에 대한 기억은 빛바랜 사진첩 속에만 남았다.

지구 온난화가 드러낸 과거의 시간

그로부터 75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2017년 7월13일, 디아블르레 빙하 인근의 스키 리조트 ‘글래시어 3000’의 한 직원은 여느 때처럼 현장을 점검하던 중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해발 2600m 지점, 녹아내린 빙하 표면 위로 바위 같기도 하고 마네킹 같기도 한 물체가 드러나 있었던 것이다.

가까이 다가간 직원은 그것이 사람의 형태라는 것을 알았다. 오랜 세월 얼음 속에 갇혀 있던 남녀의 시신이 나란히 누워 있는 상태로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시신은 스위스 알프스의 극심한 추위와 얼음 덕분에 부패하지 않고 냉동 미라 형태로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현장에는 그들이 살아온 시대를 증명하는 유품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행했던 가죽 신발과 의복, 두 사람이 짊어지고 있던 배낭, 함께 나누어 먹으려 했던 통조림 그릇과 유리병, 그리고 멈춰버린 시계까지 발견되었다. 알프스의 얼음 감옥이 수십 년간 봉인해 두었던 시간이 마침내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온 것이다.

실제 발견 당시 뒤물랭 부부의 모습과 유류품들.

스위스 경찰은 즉시 시신을 수거하여 현장 감식과 DNA 검사를 진행했다. 결과는 예상대로 뒤물랭 부부였다. 최근 수십 년간 지속된 지구 온난화로 인해 알프스의 빙하 두께가 급격히 얇아지면서, 오랜 세월 깊은 얼음 속에 묻혀 있던 부부의 유해가 자연스럽게 지표면으로 밀려 내려온 결과였다.

부모가 사라졌을 때 불과 4살이었던 막내딸 마르셀린 우드리-뒤물랭은 어느덧 79세의 백발노인이 되어 있었다. 부모의 신원이 확인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그녀는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마르셀린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매년 부모님이 사라진 날이 되면 빙하에 올라가 시신이라도 찾게 해달라고 평생을 기도해 왔는데, 마침내 그 기도가 하늘에 닿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오랜 기다림 끝에 치러지는 장례식에 대해 특별한 결정을 내렸다. 보통의 장례식에서 입는 검은색 옷 대신 ‘흰색 옷’을 입기로 한 것이다. 마르셀린은 “흰색은 내가 평생 동안 부모님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잃지 않았던 ‘희망’을 상징한다”며, 이 날이 슬픔의 날이 아닌 오랜 기다림이 마침내 마침표를 찍은 경이로운 날임을 강조했다.

실종 당시 11살로 부모의 얼굴을 가장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던 딸 모니크 고쉬(당시 86세) 역시 깊은 소회를 밝혔다. 그녀는 “우리 집 부엌 창문에서는 늘 부모님이 사라졌던 그 산이 보였다. 평생 매일 같이 저 산을 바라보며 부모님 생각에 눈물을 흘렸는데, 이제 두 분이 어디에 편히 계시는지 알게 되어 마음의 짐을 덜었다”고 전했다.

슬픔 대신 희망의 흰 옷을 입은 장례식

2017년 7월22일, 시신이 발견된 지 9일 만에 부부의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장소는 부부가 생전에 아이들의 손을 잡고 매주 찾았던 마을의 작은 성당이었다. 백발이 된 두 딸과 손자, 증손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부는 마침내 차가운 빙하를 벗어나 따뜻한 안식처로 돌아왔다. 화장된 부부의 유해는 그들이 실종된 이후 먼저 세상을 떠나 부모를 기다리고 있던 장남의 묘지 바로 옆에 나란히 안치되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뒤물랭 부부의 귀환은 단순한 실종 사건의 종결을 넘어, 인간의 기술로 해결하지 못했던 과거의 비극을 자연의 변화가 역설적으로 해결해 준 사례다. 전 세계를 위협하는 지구 온난화와 빙하의 감소라는 환경적 재앙이, 이 노령의 가족들에게는 오랫동안 품어온 한을 풀어주는 기적의 열쇠가 된 셈이다.


알프스의 두꺼운 얼음은 부부의 육신과 소지품을 반세기 넘도록 온전히 지켜내며 그날의 진실을 보존해 주었다. 비록 부모와 자식으로서 함께 보낸 시간은 짧았지만, 유족들은 기나긴 세월 동안 단 한순간도 희망을 놓지 않았기에 마침내 부모의 영면을 눈으로 확인하며 진정한 작별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거대한 자연의 순리 앞에서 이루어진 이 극적인 재회는, 인간의 기억과 사랑이 얼음보다 더 단단하고 오래 지속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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