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자전거 고무 튜브 감고 귀순했던 ‘최승찬 월북사건’


최승찬은 황해도 개성시 부산동에서 태어났다. 16살 때인 1983년 북한 38항공육전여단에 입대해 10년간 복무했다. 상사로 제대한 뒤 개성의 벽돌공장에서 건축자재인수원으로 일한다.

노임이 제대로 나오지 않자 밀주장사를 하다 적발돼 10일간 구류를 살고 재산을 몰수당했다. 살길이 막막해진 최씨는 29살 때인 1996년 탈북을 결심한다. 더 이상 북한에서는 희망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기는 마찬가지. 이럴바엔 차라리 남한으로 가자고 마음먹었다. 아내(26)와 두 살 배기 딸이 눈에 밟혔으나 그는 탈출을 감행한다. 최씨는 한 달 정도 준비에 들어갔다.

구명조끼와 자전거 튜브 3개, 북한 돈 100원을 마련했다. 같은해 7월8일 오후 8시쯤, 최씨는 개성을 떠나 서쪽으로 이동했다. 평소 수영에 자신이 있었던 만큼 예성강을 통해 바다로 탈출할 계획이었다.

그는 감시망을 피해 인적이 드문 강변을 따라 걸어서 10일 밤, 예성강 벽란도에 도착했다. 상의 티셔츠 위에 준비해온 구명조끼를 입고 그 위에 다시 자전거 튜브 3개를 감았다.


다행히 바닷물이 만조여서 물살이 빠르게 내륙 한강쪽으로 흘렀다. 13km를 헤엄쳐 군사분계선을 넘은 후 11일 새벽, 강화도 최북단인 북성리 북장곶 돈대 절벽 아래까지 접근했다.

오전 2시45분쯤, 야간 경비를 서고 있던 해병 초병에게 이상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첨벙’하는 물소리가 나자 야간 관측장비로 전방을 집중 감시했다. 이때 의심스런 물체가 움직였다.

즉각 상부에 상황을 보고하자 서치라이트가 비춰졌다. 최씨였다. 귀순 의사를 확인한 초소병들은 40m 길이의 로프를 내렸다. 최씨는 이걸 타고 절벽으로 올라왔다. 거의 탈진상태였던 그는 초병들에게 “3일 동안 굶었습니다. 배가 고파 죽겠소”라고 말했다.

그는 하나원(북한이탈북민정착사무소)을 나와 농협에 취업했다. 번듯한 직장을 둔 중산층의 삶을 누리며 비교적 순탄하게 살았다. 북한의 처자식을 그리워했던 최씨는 중국을 통해 탈북시키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그러자 2004년 1월 농협에서 퇴직한 후 재산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퇴직금과 저축한 돈 등 약 1억원을 마련한 후 두만강을 건너 북한으로 다시 넘어갔다.

서울 중계동 임대아파트와 개인 승용차는 처분하지 않은 채 그대로 두고 갔다. 남한에 정착한 지 8년 만이다. 최씨는 가지고 간 돈의 일부를 북한 당국에 바쳤고, 탈북을 용서받아 가족들과 재회해서 살고 있다고 전해진다.

탈북자들 사이에서 ‘탈남 현상’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누가 갑자기 사라졌다”거나 “북한에서 누구를 봤다”는 말도 심심찮게 나돈다.


현재 재입북자들 대부분은 중국을 통해 북한으로 넘어간다. 중국에 잠시 다녀온다고 떠났던 탈북민들 중 행방이 오리무중인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 중 상당수가 북한으로 재입북했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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