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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호 아버지 ‘배우 허장강’ 연예인 축구대회 사망사건


1925년 5월9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3남2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본명은 허창현이다.

서울 인문중학교(현 동성중학교)와 경성 고등부기학교를 졸업했다. ‘부기학교’는 일종의 경리직원을 양성하는 고등학교다.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일본 태도세 비행학교정비과를 거쳐 청삼해군기지서 복무하다 광복을 맞아 귀국했다. 어릴 적부터 꿈꾸던 배우가 되기 위해 극단 ‘백마산’을 조직해 <황토를 찾는 사나이>를 무대에 올렸으나 흥행에 실패하면서 쓴잔을 맛봤다.

그는 여기서 좌절하지 않고 ‘반도가극단’에 입단해 배우수업에 들어갔고, 1954년 이강천 감독의 <아리랑>을 통해 영화배우로 정식 데뷔한다.

이듬해에는 <피아골>에 출연한다. 한국전쟁 당시 핏빛으로 물든 지리산 자락에서 활동하던 빨치산들을 다룬 것으로 허장강은 잔혹한 빨치산 대원 ‘만수 역’을 맡아 개성파 배우로 주목받았다.

이후 <종각>(1958), <두만강아 잘 있거라>(1962), <서울의 지붕 밑>(1961), <상록수>(1961), <외나무다리>(1962), <5인의 건달>(1966), 메밀꽃 필 무렵>(1967), <분례기>(1971), <소장수>(1972) 등 300여 편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계에서 이름을 날렸다.

허장강은 선과 악을 오가며 ‘천의 얼굴’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주연보다는 조연급의 음흉스럽고 거친 악역을 주로 맡았다.

악역을 하든 선한 역을 하든 그의 표정과 몸짓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희로애락과 인간적인 정감이 녹아들었다.

영화 ‘피아골’

극중에서는 욕을 바가지로 먹을지라도 밉지만 미워할 수 없을 만큼 친근한 배우였다. 풍부한 인간미와 구수한 유머감각은 그의 또 다른 매력이다. 허장강은 정과 의리에 죽고 살았으며 연기에 목숨을 건 배우였다.

그는 당대의 유명배우였던 김승호, 장동휘, 박노식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허장강은 유명세 만큼이나 숱한 영화상을 수상했다.


1961년 제9회 아시아영화제 남우조연상(상록수), 1963년 제6회 부일영화상 남우조연상, 1966년 제4회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군번없는 용사), 1970년 제7회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봄봄) 등을 받았다. 1974년 제21회 자카르타 아시아영화제서는 <꽃상여>로 남우조연상을 거머쥐었다.

그의 대표작 중에 고 이만희 감독의 <시장>(1966)에서는 가난하지만 착하고 소박한 시장 생선 장수로 분했다. 극중 낮은 목소리의 침통한 대사였던 “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집이 있어야지요…”는 한때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이 영화는 제4회 청룡영화상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허장강이 출연했던 작품.

“마담, 우리 심심한데 뽀뽀나 할까?”

지금도 개그맨들이 곧잘 흉내내는 영화 속 명대사다.

1966년 김화랑 감독의 <살살이 몰랐지>라는 코미디 영화가 개봉했고, 당시 ‘살살이’라는 별명으로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코미디언 서영춘씨가 주연을 맡았다. 이 영화에서 범인 역으로 허장강이 나왔는데, 바로 그가 남긴 대사다.

세월히 흐르면서 영화는 대중의 기억으로부터 잊혀졌지만 이 한줄의 대사만큼은 지금까지 살아남아 회자되고 있다.


2000년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다찌마와 리>에서 인용됐고, 지금도 개그 프로그램 등에서 종종 ‘우심뽀까’라는 줄임말로 유행어가 됐다.

당시 언론보도.

1975년 9월21일 오후 2시부터 서울운동장에서 제4회 새마을돕기 연예인 축구대회가 열렸다. 허장강은 영화배우 OB팀으로 출전했다.

그런데 전반 시작 20분 만에 허장강은 갑자기 숨이 가쁘다며 다른 선수와 교체했다. 탈의실서 안정을 취하려고 했지만 심한 호흡장애를 일으켜 병원으로 실려갔다. 그는 끝내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오후 6시30분쯤 스크린과 영원히 이별했다. 사망원인은 심장마비. 향년 52세였다.

그의 비보가 전해지자 병원에는 신성일, 김진규, 황해, 이대엽 등 많은 동료 배우가 영안실에 모여 졸지에 고인이 된 그를 애도했다. 허장강이 입원해있던 중앙의료원 정문 앞에는 소식을 듣고 몰려온 팬들이 장사진을 이루며 애통해했다.

영화인협회의 결정에 따라 고인의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치러졌으며,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슬하의 3남2녀 중 허기호와 허준호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허준호는 부친의 모습을 꼭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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