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사연

대재앙에서 주민 3천명 살린 촌장


2011년 3월11일 일본 도호쿠 지방에서 규모 9.0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의 영향으로 초대형 쓰나미가 몰려들어 마을을 덮쳤다. 이로 인해 사망자(1만5894명)와 실종자(2561명)를 포함해 2만 5천여 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그런데 이 최악의 재앙이 기적적으로 비껴간 작은 마을이 있었다. 이와테현 북부에 있는 인구 3천명의 ‘후다이 마을’이다. 방조제 바깥으로 배를 보러 나갔던 주민 1명이 행방불명됐지만 마을은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

다른 마을은 초토화 됐는데, 어떻게 이 마을만 무사할 수 있었을까. 운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유비무환’ 자세가 마을을 재난으로부터 지켜냈다.

이 마을은 원래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1896년 메이지 산리쿠 지진(규모 8.5)과 1933년 쇼와 산리쿠 지진(규모 8.1) 당시 마을에 쓰나미가 몰아쳐 각각 1천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두 번째 대형 쓰나미 때 극적으로 살아남은 한 아이가 있었다. 그는 1947년 후다이 마을의 촌장이 된다. 바로 ‘와무라 고토쿠(和村 幸得)’다.


와무라 촌장은 1896년 쓰나미를 어른들에게 듣고 자랐고, 1933년 쓰나미를 직접 경험했다. 그는 과거 두 번의 참상을 늘 마음에 담고 있었다. 다시는 마을에 지진으로 인한 피해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촌장이 되자 쓰나미를 막기 위해 높은 방조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가 생각한 것은 높이 15m 이상의 방조제와 수문이었다.

당시 논의되던 수문 높이는 10m. 와무라 촌장은 10m는 부족하다며 15.5m를 주장했다. 마을 주민들은 예산 낭비를 이유로 촌장을 비난했다. 문제는 ‘예산’이었다.

주민들은 너도 나도 ‘예산 낭비’라며 방조제 건설에 반대했다. 하지만 그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두 번 있었던 일은 세 번 있어서는 안 된다”며 공사를 강행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1984년 높이 15.5m, 길이 155m의 방조제와 높이 15.5m, 길이 205m의 수문 건설이 완료됐다. 여기에 투입된 예산만 35억 6천만엔(약 500억원)에 달했다.

건설 당시 일본에서 ‘만리장성’으로 불리던 같은 현의 미야코(宮古)시 방조제 높이(10m)를 크게 넘어 “너무 높다”는 비판이 많았다.


1987년 퇴임식에서 와무라 촌장은 “‘마을 사람들을 위해서’라고 확신을 두고 시작한 일은 반대가 있어도 설득해서 이뤄주십시오. 마지막에는 이해해 줄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선물입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와무라씨는 퇴임 이후에도 예산 낭비 촌장이라는 지적을 받다가 1997년 88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수문 완공 27년 후인 2011년 도호쿠 대지진으로 쓰나미가 왔을 때 이 방조제 덕분에 마을이 안전할 수 있었다. 미야코시 10m 높이의 방조제는 무용지물이 됐다.

일본 언론에서는 후다이의 기적(普代の奇跡)이라고 불렀다.

후다이 마을 주민들은 그때서야 와무라 촌장이 그토록 ‘15m 방조제’를 고집했던 깊은 뜻을 알게 됐다.

그리고 방조제 앞에는 와무라 촌장을 기리는 비석을 세웠다. 비석에는 “두 번 있었던 일은, 세 번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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