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두드리는 악마의 소리 ‘엔필드 폴터가이스트 사건’
영국 런던 북부의 조용한 주택가, 엔필드(Enfield) 그린 스트리트 284번지. 이곳에는 이혼 후 네 아이를 홀로 키우는 페기 호지슨(Peggy Hodgson)과 그녀의 아이들이 살고 있었다.
1977년 8월 31일 밤, 페기는 아이들의 비명에 잠에서 깼다. 둘째 딸 자넷(Janet, 11세)과 큰 딸 마거릿(Margaret, 13세)은 침대가 마구 흔들린다고 울먹였다. 처음엔 아이들의 장난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페기가 방에 들어선 순간, 구석에 있던 무거운 가구가 마치 누군가 뒤에서 미는 것처럼 미끄러지며 방문을 가로막았다. 페기가 그것을 다시 밀어 제자리로 돌려놓으려 했으나, 가구는 무이지경의 힘에 이끌리듯 다시 페기를 향해 돌진했다.
벽 너머에서는 불규칙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옆집 이웃인 빅 노팅엄이 달려와 집안 곳곳을 뒤졌으나 소리의 근원을 찾지 못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 캐롤린 헵스(Carolyn Heeps) 역시 괴현상의 목격자가 되었다.
그녀는 “내 눈앞에서 의자가 스스로 떠올라 바닥을 가로질러 4피트가량 이동했다”라고 보고서에 기록했다. 하지만 경찰은 “물리적인 범죄 증거가 없다”며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인간의 법이 닿지 않는 영역의 시작이었다.

점령당한 집, 자넷의 입을 빌린 망령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자, 영국 심령연구학회(SPR)의 조사관 모리스 그로스(Maurice Grosse)와 가이 라이언 플레어(Guy Lyon Playfair)가 파견되었다. 이들은 집안에 설치된 녹음기와 카메라를 통해 2000건 이상의 기이한 현상을 포착했다.
이런 현상은 갈수록 노골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했다. 장난감이 날아다니고, 멀쩡한 커튼이 꼬여 올라갔으며, 가구가 스스로 뒤집혔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아이들에 대한 물리적 공격이었다.
자넷은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공중으로 던져지거나 침대에서 끌어내려졌다. 당시 모리스가 촬영한 사진 속 자넷은 중력을 무시한 채 공중에 떠 있는 모습이었으며, 이는 ‘조작’과 ‘실제’ 사이에서 여전히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1977년 말, 사건은 더욱 기괴한 국면으로 접어든다. 11세 소녀 자넷의 목 내부 깊은 곳에서 거칠고 쉰 노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 목소리는 자신을 ‘빌 윌킨스(Bill Wilkins)’라고 소개하며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나는 죽기 직전 눈이 멀었고, 뇌출혈을 일으켰지. 거실 구석의 의자에 앉아 잠든 채로 죽었어.”
조사단은 추적 끝에, 실제로 그 집에서 자넷 이전에 살았던 노인 ‘빌 윌킨스’가 거실 의자에서 뇌출혈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11세 소녀가 알 수 없는 구체적인 사망 경위였다. 성대 결절이 올 만큼 거친 목소리를 자넷은 몇 시간 동안이나 유지했다.

물론 모든 이들이 이를 믿은 것은 아니었다. 회의론자들은 자넷과 마거릿이 유명세를 타기 위해 현상을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아이들은 조사관들을 골탕 먹이기 위해 스푼을 구부리거나 소리를 내는 등 장난을 쳤음을 훗날 고백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리스 그로스는 “아이들이 속임수를 쓴 적은 있지만, 집안 전체에서 일어난 모든 현상을 설명하기엔 그들의 능력 밖인 일이 너무 많았다”고 반박했다. 특히 벽 안쪽에서 나는 소리나, 자넷의 입을 가렸음에도 복부 근육을 이용해 복식호흡으로 나오는 노인의 목소리는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상처뿐인 퇴마 그리고 남겨진 수수께끼
1978년 말, 네덜란드에서 온 영매와 조사관들의 노력, 그리고 자넷이 잠시 정신과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현상은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1979년 9월, 600일 넘게 이어졌던 엔필드의 소동은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그 가족의 삶은 영구히 훼손되었다. 어머니 페기는 평생 그 집을 떠나지 못하다가 2003년, 빌 윌킨스가 죽었던 바로 그 의자에 앉아 숨을 거두었다. 둘째 아들 조니는 어린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주동자로 몰렸던 자넷은 평생 ‘사기꾼’ 혹은 ‘귀신 들린 아이’라는 낙인 속에서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다.

엔필드 사건은 수천 개의 증언, 수백 장의 사진, 그리고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녹음 파일들은 현대 과학의 오만함을 비웃듯 아카이브 속에 잠들어 있다.
그것이 사춘기 소녀의 억눌린 에너지가 분출된 ‘폴터가이스트’였는지, 아니면 정말 지옥의 틈새에서 기어 나온 악령의 소행이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엔필드 사건은 훗날 영화 <컨저링 2>의 모티브가 되며 다시금 주목받았다. 비록 워렌 부부의 실제 관여 비중은 영화보다 현저히 낮았으나, 당시 기록된 수많은 음성 파일과 사진, 그리고 경찰을 포함한 30여 명의 목격자 증언은 이 사건을 단순한 ‘도시 전설’로 치부하기 어렵게 만든다.
엔필드 그린 스트리트의 그 집은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침묵 속에 그날의 진실을 감추고 있다. 하지만 이웃들은 말한다. 비가 내리는 밤이면, 여전히 그 집의 벽 너머에서 누군가 규칙적으로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고.■

할리우드가 숨긴 284번지의 진실
‘컨저링 2’와 실제 엔필드 사건의 괴리
영화 <컨저링 2>는 1977년 영국을 뒤흔든 ‘엔필드 폴터가이스트’를 스크린에 옮겨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했다. 하지만 스크린 뒤에 숨겨진 실제 기록들을 들춰보면, 제임스 완 감독이 창조한 공포의 실체와 현실 사이에는 거대한 심연이 존재한다. 영화적 상상력이 가미된 ‘공포의 재구성’과 차디찬 기록 속의 ‘실제 사건’을 세밀하게 대조해 본다.
1.워렌 부부의 ‘조연’ 전락과 영화적 왜곡
영화 속 에드와 로레인 워렌 부부는 교황청의 요청을 받고 영국으로 건너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는 ‘구원자’로 묘사된다. 하지만 당시 사건을 600일 넘게 밀착 조사했던 심령현상 연구회(SPR)의 기록에 따르면, 워렌 부부의 비중은 조연조차 되지 못했다.
실제 현장을 지켰던 것은 조사관 모리스 그로스와 가이 라이언 플레어였다. 워렌 부부는 1978년 잠시 현장을 방문해 며칠간 머물렀을 뿐이며, 현지 조사팀으로부터 “사건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특히 가이 플레어는 생전 인터뷰에서 “워렌 부부는 조사에 전혀 기여한 바가 없으며, 그들이 사건을 해결했다는 영화 설정은 명백한 허구”라고 일축했다.
2.실체 없는 악마 ‘발락(Valak)’의 탄생
영화의 백미이자 관객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수녀 형상의 악마 ‘발락’은 실제 엔필드 사건 기록에 단 한 줄도 등장하지 않는다. 284번지 주택에서 보고된 현상은 전형적인 폴터가이스트(물건이 날아다니고 소음이 나는 현상)와 지박령으로 추정되는 ‘빌 윌킨스’의 목소리가 전부였다.
제임스 완 감독은 극적 긴장감을 위해 실제 사건과는 무관한 ‘수녀 악마’ 캐릭터를 창조해 배후 조종자로 설정했다. 실제 사건의 핵심은 정체불명의 에너지가 물리적 충격으로 발현되는 현상이었을 뿐, 영화처럼 고대 악마와의 영적 전쟁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3.구마 의식은 없었다: 자연 소멸의 미스터리
영화의 결말은 워렌 부부가 악마의 이름을 외치며 강력한 구마 의식을 거행해 평화를 되찾는 ‘권선징악’적 구도를 취한다. 그러나 현실은 훨씬 모호하고 지루한 싸움이었다.
실제 엔필드 사건은 어떤 종교적 의식이나 퇴마술에 의해 종결되지 않았다. 1977년부터 시작된 기현상은 1979년 무렵, 특별한 계기 없이 에너지가 고갈되듯 서서히 소멸했다.
자넷이 사춘기에 접어들며 신체적·정신적 변화를 겪자 현상이 잦아들었다는 점을 들어, 학계에서는 이를 소녀의 억눌린 심리가 물리적 에너지로 분출된 현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4.공중 부양 사진에 숨겨진 진실 혹은 거짓
영화 속 자넷은 중력을 완전히 거부한 채 천장에 달라붙거나 허공을 유영한다. 하지만 실제 사건의 증거로 제시된 사진들은 당시에도 거센 조작 논란에 휘말렸다.
자넷이 공중에 떠 있는 유명한 흑백 사진들을 정밀 분석한 회의론자들은 “아이들이 침대 위에서 점프하는 순간을 포착한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사진 속 자넷의 팔 근육과 다리 위치가 도약하는 동작의 메커니즘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러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진들을 ‘확정된 초자연적 비행’으로 극대화하여 연출했다.
5.가족의 비극: 스크린보다 참혹했던 현실
영화는 가족의 사랑으로 공포를 극복하는 해피엔딩을 그리지만, 현실 속 호지슨 일가의 삶은 참혹했다. 사건 이후 그들은 “관심을 끌기 위해 사기를 쳤다”는 대중의 비난과 낙인에 시달려야 했다.
어머니 페기는 평생 공포의 기억이 서린 그 집을 떠나지 못한 채 2003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주동자로 의심받았던 자넷은 성인이 된 후 “그 현상들은 분명히 실재했지만, 사람들은 믿어주지 않았고 우리를 정신병자 취급했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영화적 공포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그들을 바라보는 세상의 차가운 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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