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13년 만에 붙잡힌 ‘강남 성폭행범’ 경찰관의 두 얼굴


2011년 7월 어느 날 서울 강남구의 한 주택에서 여성 성폭행 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은 술에 취해 길을 걷던 여성을 발견하고 뒤를 밟아 집까지 쫓아갔다. 비틀거리며 집에 도착한 여성이 현관문을 여는 순간, 범인이 나타나 뒤에서 밀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술에 취한데다 갑작스런 상황에 놀란 여성은 제대로된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쉽게 제압당한다. 범인은 범행 후 냉정하고 차분하게 움직였다.

먼저 알몸 상태인 피해자에게 몸을 구석구석 깨끗이 닦도록 강요했다. 보통 성폭행 범죄에서는 피해자의 몸에 범인의 정액이나 체액 등이 묻어나는데 이를 우려해 피해자의 신체에 남겨졌을 DNA를 없애려고 한 행동이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현장에 있던 증거물들은 싹쓸이해 가방에 집어 넣었고, 바로 신고하지 못하도록 피해자의 휴대전화를 빼앗아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왔다.

얼마 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우선 피해자의 집 주변과 도로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 확보에 나섰다. 하지만 당시 서울에는 며칠째 장마가 계속됐고, 도주로 주변에 있던 CCTV가 작동하지 않아 범인의 인상착의와 동선을 파악하는데 실패한다.


경찰은 집안을 정밀 감식했지만 범인의 체모와 지문 등을 확보하지 못했다. 마지막 희망은 피해자의 몸에서 범인의 DNA를 채취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미 피해자 몸을 깨끗이 닦은 상태여서 검출될지는 미지수였다.

이런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던 경찰은 과학수사기법을 동원해 DNA 채취를 시도했다. 천만다행히도 피해자의 몸에서 미세한 DNA가 나오면서 수사에 활기를 띤다.

경찰은 ‘DNA 신원확인정보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일치하는 사람이 있는지를 찾았다. 범인이 여기에 등록돼 있다면 체포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DNA가 일치하는 우범자는 없었다. 범인이 초범이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는 증거가 부족해 결국 미제로 남는다. 그렇게 13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오랫동안 자신에게 수사망이 좁혀오지 않자 범인은 완전범죄가 됐다고 방심했던 것일까.

노래방에 무단 침입하는 경찰관 A씨.

2024년 5월13일 오전 6시쯤 서울 은평구의 한 노래방에 정체불명의 남성이 무단 침입한다. 이때는 노래방 영업이 끝난 시간이었다. 약 3시간 동안 안에 머물던 그는 오전 9시쯤 다시 나왔다. 이 모습은 노래방 건물 인근에 설치된 CCTV에 그대로 포착됐다.

당일 새벽 4시 반에 퇴근했다가 밤에 출근한 노래방 주인은 출입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는 의아했다. 퇴근할 때는 분명 잠근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자기 눈을 의심했다.

안으로 들어가 자세히 살펴보니 뒤진 흔적이나 도난당한 물건은 없었다. 카운터에 있던 돈통도 그대로였다. 그런데 영업이 끝난 뒤 청소를 했는데도 조명이 어지럽혀져 있고, 비품이 여기저기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노래방 주인은 누군가 침입한 흔적이라고 판단하고 즉시 경찰에 신고했다. 과학수사대는 현장 감식을 통해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DNA를 채취하고, 이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보냈다.

얼마 후 국과수는 깜짝 놀랄만한 결과를 통보한다. 이 DNA가 13년 전 강남 미제 성폭행 사건의 DNA와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경찰 입장에서는 미제사건을 해결할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경찰은 범인을 잡기 위해 CCTV 등을 토대로 추적했고, 사건 발생 3개월 만에 붙잡는다. 그의 정체는 바로 현직 경찰관이자 서울경찰청 기동대 소속인 A경위(남‧45)였다.

2006년 경찰관에 순경으로 임용된 A씨는 성폭행 범행 당시에는 대통령 경호를 담당하는 청와대 경비단 소속이었다. 서울경찰청 산하이면서 대통령 경호처의 지휘를 받는 조직으로 경찰내에서는 요직으로 꼽힌다.

요원들은 철저한 신원조회를 통해 선발하는데, A씨의 경우 범행 당시 이미 청와대 경비단 소속이어서 걸러지지 않았다. A씨는 범행 후 수사지식을 활용해 증거를 인멸하고, 지금까지 경찰관으로 근무하면서 두 얼굴로 살아왔던 것이다.

경찰은 A씨의 범행사실이 드러나자 그를 직위해제했다.

A씨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그가 다른 범죄에 관련됐는지 수사에 들어갔다. A씨의 휴대전화를 압수·분석하고 경찰청이 운영하는 지문검색시스템(AFIS)을 통해 미제사건 지문 일치 여부를 확인하는 등 추가 수사를 벌였으나 다른 범행은 확인되지 않았다.

검찰은 A씨를 성폭력처벌법 위반(주거침입강간)과 건조물침입 혐의로 구속기소하며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해야 할 현직 경찰관 신분을 망각하고 반복적으로 중대 강력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에게 죄에 상응하는 중형이 선고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자칫 완전범죄가 될 뻔했던 성폭행 사건이 과학수사 기법을 통해 범인을 잡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경찰관의 탈을 쓴 A씨의 범죄행각도 막을 내리게 됐다.■

<저작권자 ⓒ정락인의 사건추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