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베스트클릭

김정일 처조카 이한영 암살사건


북한 왕조의 제2대 지도자였던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은 생전 다섯 명의 부인을 뒀다.

둘째 부인은 유명 배우 출신 성혜림이다. 성혜림은 김정일보다 다섯 살 연상이다. 그는 원래 월북 작가 이기영의 아들인 이평의 부인이었고, 딸이 있었다.

성혜림은 김정일 집에 자주 드나들면서 그와 눈이 맞았고, 1969년 남편과 이혼한다. 사실상 김정일이 유부녀인 성혜림을 강제로 이혼시키고 빼앗은 것이다.

김정일과 성혜림 사이에서 김정남(1971년생)이 태어난다. 성혜림 언니 성혜랑의 아들 이한영(1960년생)이 김정남의 유일한 사촌형이다. 이한영에게 김정일은 이모부가 된다.

이한영은 어린시절 김정남과 함께 자라면서 김정일이 하사한 고급 대저택에 살았고, 소련시절 모스크바와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학하는 등 김씨 일가의 로열패밀리로서 모든 혜택을 누렸다.

그러나 성혜림은 ‘이혼녀’라는 꼬리표 때문에 김정일의 정식 부인이 되지 못했다. 시아버지인 김일성도 그를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김정일은 김일성의 강요로 조선로동당 간부의 딸인 김영숙과 결혼한다.

정식 부인 자리를 내주고 김정일의 관심에서 멀어진 성혜림은 더는 설 자리가 없었고, 러시아 모스크바로 쫓겨나다시피 떠난다. 그녀는 심한 우울증에 빠져 지내다 건강을 크게 잃는다.

언니 성혜랑은 성혜림과 모스크바에 있다가 1996년 1월5일 서방으로 망명한다. 혼자 남겨진 성혜림은 2002년 5월 65세의 나이로 병원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는다.

이에 앞서 이한영은 1976년 5월 북한을 떠나 모스크바 유학생이 된다. 북한 소유 최고급 아파트에 머물던 이한영은 1982년 9월20일 스위스 제네바 국제학교로 옮긴다.


평소 미국을 동경했던 그는 8일 후인 9월28일 오전 9시50분 제네바에 있는 한국 대표부에 전화를 걸어 자신을 ‘김영철’이라는 북한 외교관으로 소개하며 미국 여행을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물었다.

북한 최고위층에 관한 정보에 목말랐던 한국 정보당국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와 제네바 대표부는 이한영을 설득해 한국 망명을 유도했다. 제네바 대표부는 이씨의 신병을 확보했는데 스웨터에 운동화를 신고 있을 정도로 갑작스럽게 망명이 이뤄졌다.

이씨는 스위스에서 프랑스, 벨기에, 독일, 필리핀, 대만을 경유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나흘 만인 10월1일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정부는 이한영의 신변보호를 위해 망명 사실을 비밀에 부쳤다. 안기부는 조사를 통해 이한영으로부터 김씨 일가의 사생활과 북한 고위층에 관한 고급 정보를 얻어냈다.

이씨는 세번째로 이름을 바꿨다. 북한에서는 본명인 ‘리일남’으로, 해외에서는 외교관으로 위장해 ‘김영철’을 사용했고, 망명한 뒤에는 안기부가 지어준 ‘한국에서 영원히 살라’는 뜻의 ‘이한영’이라는 이름으로 새 삶을 시작했다. 집은 단독주택 안전가옥(안가)에서 살았다.

그는 한양대 연극영화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85년 테러위협과 신분세탁을 위해 성형수술까지 했다. 한국에서 그의 첫 직업은 KBS PD였다. 대학에 재학 중인 1987년 12월 안기부의 도움으로 특채 입사해 국제방송국 러시아어 방송 담당 PD를 맡았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는 러시아어 통역사로도 활동했다. 모델 출신의 한국 여성인 김아무개씨와 결혼하고 딸도 낳았다. 이씨는 결혼식 한 달 전에야 자신의 신분을 아내에게 밝혔다.

1990년 4월 KBS를 퇴사한 후에는 주택 사업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성공가도를 달리는 듯 했으나 망하면서 횡령 혐의로 10개월간 옥살이를 한다.


이한영은 재기를 노리며 다양한 사업을 모색했지만 연이어 실패한다. 1996년 5월 사업 실패로 아파트 전세금까지 날린 뒤 짐은 이삿짐 센터에 맡겨 놓고 부인과 딸을 강동구 상일동 처가집으로 보낸 뒤 자신은 친구 집과 안기부의 안가를 전전했다. 안기부에 추가 금전적 지원을 요구했으나 정보 가치가 떨어지면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이한영은 절박한 심정으로 언론사를 찾아가 특종기사를 주겠다며 거래를 시도한다. 기자에게 “성혜림의 모스크바 전화번호와 주소를 알고 있다”고 말한 것이 계기가 돼 망명 13년 만에 어머니 성혜랑과도 통화한다.

성혜랑이 제3국으로 망명에 성공하자 이한영은 1996년 6월 북한의 비밀을 담은 책 <대동강 로열패밀리 서울 잠행 14년>을 펴냈다. 이씨는 안기부에 자신의 수기 원고를 미리 보여줬고, 안기부 측이 수기 내용 일부를 삭제하라고 요구했으나 이를 거부하면서 갈등이 있었고, 안가에서도 쫓겨나게 된다.

이씨는 책을 통해 북한의 김씨 일가와 고위 간부들의 적나라하고 은밀한 사생활까지 폭로했고,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이한영은 <추적 60분>, <이주일의 투나잇쇼> 등 여러 방송에도 출연하면서 김정일의 사생활에 대한 폭로를 이어갔다.

문제는 방송 출연 등 언론 노출과 수기 발간으로 신분이 노출되면서 이씨는 암살 위협에 내몰린다. 원래 분당의 아파트에 7000만 원을 주고 전세를 살았으나 이 아파트가 채권자의 손에 넘어가 아내와 딸은 처가에, 자신은 지인 집을 전전하는 신세가 됐다.

1997년 2월15일 이한영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의 한 대학 선배 집(아파트)에서 잠시 얹혀 살고 있었다. 한 언론은 이씨가 귀순해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살고 있다고 보도했다.

얼마 후 선배의 집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그는 자신을 여성지(잡지) 기자라고 소개하며 이한영과의 인터뷰를 이유로 그의 귀가 시간을 물었다. 전화를 받은 대학 선배의 아내는 기자라는 말에 별다른 생각 없이 이한영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줬다.

이날 2명의 괴한이 아파트 14층에 올라가 이한영의 퇴근을 기다렸다. 밤 9시45분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이한영은 집 현관문 바로 앞에서 괴한들과 맞닥뜨린다.


이중 한 명은 이한영을 붙잡고 다른 한 명은 소음기가 장착된 권총을 꺼내 이한영을 향해 2발을 발사했고, 이마와 가슴에 명중하며 치명상을 입는다.

인터폰 화면으로 이 모습을 지켜본 옆집 주민이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대학 선배의 부인도 비명소리를 듣고 밖으로 뛰쳐나가보니 이씨가 손가락 2개를 펴보이며 “간첩” “간첩”하며 쓰러졌다고 말했다.

이한영은 119를 통해 인근 분당 차병원으로 실려가 총탄제거수술을 받았으나 뇌사에 빠진다. 그리고 열흘 뒤인 2월25일 36세로 중환자실에서 숨을 거둔다. 남한으로 넘어온지 15년 만이다.

경찰은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경기지방경찰청장을 수사본부장에 임명했다. 수사당국은 전단지 100만장을 뿌려 가면서 범인을 추적했지만 검거에는 실패한다. 대신 범인들이 심부름센터에 돈을 줬고, 심부름센터는 다시 서울지방경찰청 정보과 경사에게 돈을 받고 정보를 넘긴 것만 확인했다.

수사당국은 이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잠정 결론을 내렸는데, 북한 공작원이 주로 쓰는 벨기에제 브라우닝 권총의 탄피가 발견된 것을 주요 근거로 들었다.

8개월이 지난 11월19일 안기부는 이한영이 북한 대남공작부 소속 테러 전문요원들에게 암살됐다고 공식 발표한다. 10월에 붙잡힌 ‘부부간첩단 사건’의 최정남(35)과 강연정(28)이 이한영 살해범이 2명의 특수공작조였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안기부는 “암살범들이 북한 당국으로부터 영웅 칭호를 받고 재 남파를 위해 성형수술까지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씨의 암살 사건은 지금까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누가 왜 이씨를 죽였는지 정확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부부 간첩단의 진술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북한의 소행에 무게가 실리면서도 다른 집단에 의한 범행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이한영의 부인 김씨는 2003년 2월24일 국가를 상대로 4억8000여 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김씨는 “남편은 국가가 철저히 신분을 보호해야 하는 요시찰 보호 대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보호 의무를 소홀히 해 살해됐다”고 소송 이유를 밝혔다.

법원은 “국가는 유족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며 9699만원을 지급하라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다만 “이씨가 안기부의 권고와 만류를 무시하고 언론과 인터뷰하고 수기를 출판하는 등 사건 원인의 한 부분을 제공했다”며 국가 책임을 60%로 제한했다.

한편 2010년에는 이한영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의형제>가 개봉됐다. 이한영이 피살된 지 20년 후인 2017년 2월13일 사촌동생인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 암살되면서 비극이 되풀이됐다.■

<저작권자 ⓒ정락인의 사건추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