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사건

명동 유네스코 지하다방 무장탈영병 인질사건


서울시 중구 명동에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위치한 유네스코 회관이 있다. 명동 한복판을 내려다보는 13층 건물로 1967년 완공됐다.

1974년 5월20일 육군의 한 부대에서 방위병으로 복무하던 이원모 이병(21)과 동네 친구들인 최성환(20), 윤찬재(20)는 군 초소에서 M1 카빈 2정과 실탄 510여발을 훔쳐 밖으로 나왔다.

이들은 오전 7시30분쯤 서울 성동구 구의동 워커힐 근처 영화사 입구에서 포드20M 승용차(선경개발 최종현 사장 소유)를 발견하고 총으로 위협해 세웠다. 차 안에는 최씨의 장남 태원(15, 현 SK그룹 회장), 차남 재원(12), 장녀 기원양(11) 등 3남매가 등교를 위해 타고 있었다.

범인들은 아이들을 모두 내리게 한 후 차 안에 올라타 운전기사에게 경부고속도로 쪽으로 차를 몰게 했다.

범인들이 탄 차량은 오전 8시5분쯤 경부고속도로 서울 톨게이트를 통과했고, 수원 톨게이트에 다다르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고속도로 순찰대 순찰차 2대와 마주한다.

순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정지 신호를 보내자 범인들은 실탄 4발을 발사했고, 이중 2발이 김장식 순경(35)의 등과 왼쪽 겨드랑이를 관통해 사망한다.


범인들은 경기도 이천군 마장면 우천리 앞길에서 승용차가 고장나자 서울쪽으로 달리던 동부고속버스를 세웠다. 이들은 공포 4발을 쏘면서 버스에 올라 승객 45명 중 남자 25명은 하차시키고 여자 20명만 인질로 삼아 서울로 향하게 했다.

고속버스는 오전 9시35분쯤 서울 제3한강교 진입로 앞에 군경이 쳐놓은 바리케이트 앞에 도착했다. 이때 범인들은 버스 안에서 10여발을 쏘면서 “바리케이트를 치우라”고 소리쳤고, 경찰은 승객들의 안전을 생각해 조준 사격하지 않고 공포를 쏘는 방식으로 응사했다.

약 5분 동안 총격이 오간 후 범인 한 명이 승객 한 명을 위협해 버스에서 내려와 바리케이트를 치웠다. 버스는 검문소를 통과해 한남동 장충 공원 퇴계로를 거쳐 미도파 백화점 앞에서 우회전, 오전 10시5분쯤 명동 코스모스 백화점 앞에 도착했다.

범인들은 버스안내양 등 여자승객 4명을 끌고 명동 유네스코회관 지하 다방에 들어간다. 이들은 총으로 위협하며 손님 등 33명을 인질삼아 군경과 대치한다. 경찰과 헌병들은 건물을 완전히 포위하고 범인들에게 자수를 요구했으나 거부당한다.

군경은 이 이병의 부모와 애인(20)을 현장으로 불러 자수를 설득했으나 실패한다. 낮 12시쯤 인질 가운데 최아무개씨(여‧45)가 심장병이 있다며 풀어줄 것을 간청하자 범인들은 이를 받아들인다.

오후 3시40분쯤 중부경찰서장은 햄버거와 빵 30인분을 제공했고, 이에 대한 답례라며 남자 고령자 4명과 여자 인질 4명을 내보냈다.


군경은 이미 사망한 김 순경에 대해 “아직 살아 있다”며 자수를 권유했고, 범인들은 자신들의 사건을 보도한 신문을 넣어달라고 요구했으나 묵살됐다.

오후 7시40분쯤 범인들이 “술을 마시겠다”며 맥주 2병을 요구했고, 경찰이 맥주 2병과 소주 2병을 넣어주자 소주는 수면제가 타져 있다며 거절하고 맥주만 마셨다. 오후 9시30분쯤에는 다방 주방에서 밥을 지어 계란을 반찬으로 저녁을 먹었다.

범인들은 “가족을 만나보라”는 경찰의 제의를 거절하는 대신 “신문을 보내주면 인질을 풀어주겠다”고 답했다. 총상을 입은 김 순경의 생사에 따라 자수여부를 결정하려는 것이었다.

범인들의 이동경로.

이에 대해 군경은 밤 11시쯤 김 순경이 살아있는 것처럼 한국일보가 특별히 제작한 위장신문을 제작해 범인들에게 넣어줬다. 당시 다방에는 TV이나 라디오가 없어 사건 내용을 자세히 모르고 있었다.

5월21일 새벽이 되자 범인들은 피로가 겹쳐 졸기 시작한다. 경찰이 새벽 5시40분쯤 다방으로 전화를 걸자 범인들이 아닌 인질이 전화를 받았고 “범인들은 모두 지쳐 졸고 있다”고 귀띔했다. 군 특공대는 방탄복과 사복 차림으로 다방 옆 이발소에서 진입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방 안에 인질로 잡혀 있던 다방 DJ 남원우씨(20)와 임병탁씨(20) 등 젊은 남성 9명은 범인들이 조는 틈을 타 총을 빼앗을 기회를 노렸다. 오전 5시30분쯤부터 다방 정문에 지켜서 있던 이 이병이 총을 무릎사이에 끼고 졸기 시작했고, 다방 가운데 있던 윤씨는 의자위에 드러누워 잠이 들었다. 다방 구석에서 인질을 감시하던 최씨도 깜빡깜빡 졸고 있었다.


남씨 등 인질 남성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오전 5시58분쯤 먼저 남씨가 정문쪽으로 다가가 이 이병의 총을 빼앗고 같은 순간 다른 인질들이 최씨의 총을 빼앗았다. 인질들은 ‘와’하는 소리를 지르며 의자 등으로 범인들을 때렸다.

인질극을 벌이다 군경수사관들에 의해 끌려나오는 범인들.

다방에서 함성이 들리자 밖에 대기하고 있던 특공대가 정문과 이발소로 통하는 뒷문을 통해 일제히 뛰어들어가 범인들을 제압하고 검거했다. 이 과정에서 인질 2~3명이 손등에 가벼운 타박상을 입었을 뿐 모두 무사했다. 이로써 22시간의 인질극도 막을 내렸다.

다방 안은 아수라장이 돼 있었다. 범인들이 다방을 폭파하겠다고 위협하기 위해 갖다 놓은 프로판 가스통 2개가 한가운데에 뒹굴고 있었다. 천장은 범인들이 쏜 공포로 구멍이 벌집처럼 나 있었고, 조명등이 반쯤 깨져 있었다. 바닥에는 유리조각과 검거당시 범인들이 흘린 피가 범벅이 돼 있었다.

아수라장이 된 다방 내부.

범인들은 범행동기에 대해 “훔친 총과 실탄으로 3인조 강도단을 만들어 금품을 강탈한 후 일본으로 달아나려 했다”고 진술했다. 군 수사단은 범인들을 살인 및 군용물특수절도, 초소침범 등으로 재판에 넘겼다.

사형이 선고되자 오열하는 범인들.

육군 보통군법회의는 이들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재판장은 “군의 기강을 추락시키고 사회불안을 조성한 행위는 추호도 용납받을 수 없다”고 질타했다. 이듬해인 1975년 8월2일 오전 범인들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다.

복역 중 가톨릭에 귀의했던 윤찬재는 “비록 나쁜 짓을 하고 죽더라도 마지막으로 사회에 좋은 일을 하고 싶다”며 안구를 기증했다. 윤씨가 기증한 한쪽 눈은 3살 때 오른쪽 눈을 잃은 민아무개씨(29)에게 이식됐다.


범인 검거에 기여한 다방 DJ 남씨와 주방장 임씨는 경찰이 주는 용감한 시민 표창을 받았다. 다방주인은 사건발생 4개월 후에 다방을 팔았다. 난동 당시 파손된 기물보상비 10여 만원은 군당국으로부터 모두 보상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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