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 초등학생 윤지현양 실종사건
1999년 4월14일 오산초등학교 2학년이던 윤양은 반 아이들과 집 근처 저수지로 현장학습을 갔다.
오후 1시쯤 현장학습을 마친 윤양은 다시 학교로 가서 집 방향이 같은 아이 몇 명과 담임교사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담임교사는 지현이를 오산시 누읍동 아파트 경비실 근처에서 내려줬다.
이게 마지막이었다.
이후 지현이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목격자도 폐쇄회로(CC)TV도 없었다. 아버지 윤봉현씨는 딸이 실종된 후 전국 방방곡곡을 헤맸다. 직장도 그만두고, 생계도 뒷전으로 미루고 오로지 지현이를 찾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전단지 제작하는 법을 몰라 사진을 붙인 종이를 컬러로 복사했다. 방송에도 여러 번 나갔지만 지현이를 찾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절박한 심정에서 점집을 찾아가고 굿도 해봤지만 허사였다.
나주봉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 모임(전미찾모) 회장은 “지현이를 찾기 위해 잠수부까지 동원해서 인근 저수지를 수색했다. 또 살해해서 사체를 유기했을 가능성도 있어 주변 야산까지 샅샅이 찾았지만 아무런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아이가 없어지면 처음에는 찾겠다는 일념으로 전국을 헤맨다. 그러다 가족을 찾지 못하면 점점 지쳐가고, 그리움이 겹치면서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에 시달린다.

그러면서 부부싸움은 잦아지고, 결국 가정이 해체되는 것이 다반사다. 지현이네 가정도 그랬다.
지현이 부모도 아이 잃은 책임을 따지다 의견 충돌이 점점 커지면서 별거하기에 이르렀다. 윤씨는 이내 불면증과 알코올 중독에 시달렸다. 결국 딸이 실종된 지 1년 반 정도 지나 부부는 이혼했다.
윤씨는 딸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지현이가 혹시라도 해외로 입양됐을 것에 대비해 다른 실종자 가족들과 합심해 해외입양자 DNA채취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예산 부족으로 몇 년을 가지 못했다.
윤씨는 아이 옷가지나 소지품, 학교 다녔을 때 소지품을 버리지 못하고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다. 아버지의 시간은 딸이 실종됐던 그 순간에 멈춰버린 것이다.
현재 윤씨는 일용직으로 일하며 어렵게 살아가면서도 “지현이를 찾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며 “아이를 찾는데 도와달라”고 호소한다.

지현이는 오른쪽 눈 밑에 점이 있고, 얼굴이 약간 검은 편이다. 실종 당시 청바지에 흰 줄무늬의 빨간 신발, 신발가방, 스케치북을 들고 있었다. 제보는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시민의모임(전미찾모, 02-963-1256)이나 112, 또는 경찰청 실종아동찾기센터(182)로 하면 된다.
범인이 남긴 단서들
1.납치‧유괴 가능성 높다.
지현이의 실종 당시 나이는 아홉 살이다. 더욱이 실종 장소가 아파트 앞 경비실이다. 아이가 길을 잃거나 집을 찾지 못해 미아가 됐을 가능성은 아주 낮다. 부모 이름과 집 전화번호까지 알고 있었기에 만약 길을 잃고 헤매다 발견됐다면 집에 연락이 왔어야 한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대낮에 아이가 사라졌는데 목격자가 없는 것도 범죄 관련성을 높게 보는 이유다.
2.범행 목적은 ‘돈’이 아니다.
문제는 범행 목적이다. 돈을 목적으로 납치나 유괴한 것이라면 아이의 집에 전화해서 ‘금전’을 요구해야 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집에 연락해서 돈을 요구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9살 아이를 양육하기 위한 범행으로 보기도 힘들다.
3.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현재 아이의 생사를 알 수는 없다. 다만, 어딘가에 살아 있어서 부모와 꼭 만나기를 기원할 뿐이다. 지현이 가족도 그 날을 위해 애타는 그리움으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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