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생활사기·횡령

화물차 지입사기 조직과 전쟁의 서막


2001년 2월 초쯤 이메일로 제보 한 통이 접수됐다.

그는 자신을 전남 곡성에 살고 있는 A씨이며 택배분양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잃게 생겼다고 도움을 요청했다. 며칠 후 서울에서 피해자들이 만나기로 했는데 꼭 나와서 자신들을 취재해 달라고 호소했다.

당시 나는 물류신문에서 물류정책, 택배, 화물 등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는 ‘택배’ ‘화물’ 등을 검색해 본 후 내 이름과 이메일이 뜨자 제보한 것이었다. 나는 “피해자들이 만나면 연락을 달라”며 연락처를 남겼다.

공교롭게도 다음 날에는 MBC <PD수첩> 작가한테 전화가 왔는데, 물류사기에 대해 묻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그 내용을 자세히 모르고 있었다. 답변은 그냥 두루뭉실하게 맴돌았다. 작가도 사기사건의 실체를 완전하게 파악하지 못한 듯 질문이 겉돌고 있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의아했다. 물류분야 기자인 나도 모르는 ‘사기사건’을 중앙방송에서 취재하는 것도 그렇고, 전날 관련 이메일 제보를 받은 것도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며칠 후 A씨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피해자들이 서초구 양재동에서 만난다고 했고, 나는 그곳으로 향했다.

해당 커피숍에 도착하니 남자 8명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명함을 준 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피해 상황을 들었다. 피해 금액은 달랐지만 당한 수법은 비슷했다.

이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는데 사기조직의 사무실에 갔다가 우연히 만나 서로 같은 수법으로 당했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자신들의 절박하고 억울한 상황을 토해냈다.

이중 한 분은 자신은 사기를 당한 후 신용불량자가 됐다며 관련 자료를 들어보이며 목청을 높였다. 모두 사정은 비슷했다.
나는 회사로 돌아와 출입처와 취재원들에게 이런 사기 수법에 대해 취재에 들어갔다. 인터넷상으로 제보를 받은 결과 몇 건의 관련 피해사례가 상세하게 접수됐다.

막상 취재에 들어가니 그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피해규모도 놀랍지만 사기조직이 물류업체-자동차캐피탈 직원-자동차영업사원들과 연결돼 있었고, 심지어 조폭들까지 관련돼 있었다.

더 심각한 것은 서민들의 피해가 상상을 초월하고, 사기조직이 활개를 치는데도 경찰이나 검찰이 손놓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3개월의 취재과정을 거친 후 물류신문 5월21자에 ‘택배분양사기의 전모를 밝힌다’는 제목의 기획기사를 썼다.


사기업체와 여기에 관여한 조직원들은 모두 실명으로 썼다. 이로서 나는 PD수첩이 취재하려고 했던 물류사기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막상 기사가 보도되자 내게 최초 제보했던 곡성피해자 A씨도 피해규모가 그 정도였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고 했다. 그도 그럴것이 사기조직은 피해자들이 서로 만나지 못하게 철저하게 분리하는 수법을 썼다.

1차 기사는 향후 3년간 화물차지입사기 조직과의 전쟁을 위한 서막에 불과했다. 정부와 싸운 ‘중부권 내륙화물 기지 입지선정 비리'(1997.7~1999.9)에 이어 1년5개월만에 두 번째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