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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살 아들 ‘사망 보험금’ 전액 기부한 배우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난 배우 이광기는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85년 KBS 드라마 ‘해돋는 언덕’으로 데뷔했다.

오랫동안 무명생활을 하다 2000년 KBS 사극 ‘태조 왕건’에서 후백제 견훤왕의 장남인 신검 역을 맡으면서 인기를 얻었다. 이 작품으로 데뷔 17년차인 2001년 KBS 연기대상 신인상을 수상한다.

이후 ‘야인시대’, ‘정도전’, ‘징비록’, ‘태종 이방원’ 등에 출연하며 탄탄한 입지를 굳힌다. 야인시대에서는 동대문사단 두목이었던 이정재의 수행비서이자 경호원인 이억일 역을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2009년과 2015년에는 싱글 앨범을 발표하며 가수로도 활동했다.

이광기는 무명배우 시절인 1998년 세살 연하의 아내 박지영씨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큰딸 연지(1999년생)와 장남 석규(2003년생)가 태어나며 가족의 일원이 됐다.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견훤왕의 아들 신검으로 출연한 이광기(왼쪽).

그러던 어느 날 불현듯 큰 불행이 찾아온다. 2009년 7월부터 국내에는 신종플루가 대유행하기 시작했다. 8월에 첫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감기보다 약한 질병으로 인식되면서 무사안일하게 대처했다. 당시에는 치료법과 예방백신도 없었다.

그해 11월6일 이광기의 6살 아들 석규가 폐렴 증상을 보여 근처 병원을 찾았다가 가벼운 감기 증상이라는 말을 듣고 귀가힌다. 이후 병세가 호전되지 않아 다른 병원을 찾았고, 여기서 신종플루가 의심된다며 타미플루를 처방받았지만 부작용을 우려해 곧바로 복용하지 않았다.


이튿날에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자 타미플루를 복용했는데, 구토 증상을 보여 큰 병원으로 실려가 치료를 받았다. 이때만해도 인공호흡기를 쓰고 있으면서 정상적인 소통이 가능할 정도였다.

그런데 8일 오전 9시50분쯤 상태가 급속도로 악화되더니 사망한다. 그냥 열감기로 아프다고 생각했던 이광기는 너무 갑작스런 상황에 큰 충격을 받는다. 그의 아내는 너무 놀라 실신하고 만다.

이광기와 아들 석규.

앞서 석규는 필리핀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돌아와서 같은해 8월쯤 연예기획사에 길거리 캐스팅 된다. 이때 프로필 사진을 찍었는데, 이게 영정사진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장례식장에는 많은 연예인들이 조문을 왔고, 발인식에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누나 연지가 동생의 영정사진을 들어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장례를 마친 그날 밤, 이씨의 아내는 비통한 심정을 주체하지 못해 오열하며 고통스러워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기가 힘들었던 이광기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는 “왜 하필 내 가정에, 왜 하필이면 내 아들에게”라며 세상을 원망했다.

그러다 난간에 서서 뛰어내리려고 몸을 밑으로 숙이는 순간, 편안한 바람이 그의 곁을 스쳐갔고, 무언가의 힘이 그를 밀어내는 느낌을 받는다. 그때부터 신이 있다고 믿고 죽을 마음을 바로 잡았다.

이광기는 한동안 방송 활동을 중단하고 출연하고 있던 MBC 예능프로그램 ‘해피타임’에서도 잠정 하차하며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그는 차마 아들의 사망신고를 하지 못했다. 아직도 살아있는 것같은 아들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다. 그렇게 미루다가 취학통지서가 오자 무거운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신고 전에는 아들 이름이 남아 있는 등본 서류를 간직하기 위해 대량으로 뽑았다. 신고할 때는 울컥하며 바닥에 주저 앉았다. 한동안 초등학교 앞을 지나가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고 한다.

아이티 아이들과 함께 한 이광기(월드비전 제공).

그렇게 방황하던 이광기는 석규를 위해 마음을 추스리기로 한다. 2010년 1월13일 아이티에 대지진이 발생해 어린이를 포함해 약 16만명이 사망했다. 마을은 폐허가 되고 학교도 무너졌다.

이광기는 아내와 함께 아이티 재건 봉사활동에 나섰다. 그곳에서 아들과 같은 아이를 만나면서 그 아이를 통해 위로를 받고 치유가 됐다. 이씨 부부는 “우리가 저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석규 사망보험금으로 나온 1억원 전액을 기부하기로 결심한다.

석규의 마지막 흔적인 보험금을 좋은 일에 쓰면 하늘에 있는 석규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광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경매와 모금활동을 통해 아이티에 학교 세 곳을 지어줬다.

2011년 연극 ‘가시고기’를 통해 연예활동도 재개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아픈 아들을 돌보는 아빠의 스토리를 담은 연극이 자신과 너무나도 맞아 떨어져서 치유의 의미로 출연했다”고 말했다. 아빠와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오열해 잠시 녹화가 중단되기도 했다.

이광기 가족의 행복한 모습(이광기 인스타그램).

2012년에는 기적같은 일이 생겼다. 석규가 떠난지 약 3년 만에 늦둥이인 차남 준서가 선물처럼 태어났다.


이씨 부부는 하늘에 있는 석규가 동생을 보내줬다고 생각했다. 부부는 매년 석규 기일에는 납골당을 찾아가며 그리움을 달래고 있다. 큰 슬픔을 딛고 일어선 이광기 가족에게 언제나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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