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차 지입사기 조직 66개 폭로하며 전쟁 선포
법의 사각지대에 있던 화물차 지입사기는 엄청난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었다.
사기조직은 철저하게 역할 분담을 하면서 알선-분양-운수-자동차영업사원-캐피탈직원-조직폭력배-비호세력 등으로 연결돼 있었다.
전국에서 모여든 피해자들은 우리의 이웃, 가난한 서민들이었다. 사기를 당한 후 하나같이 신용불량자나 빚더미에 앉아 거리를 떠도는 신세가 됐다.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피해자도 있었다.
지입 사기조직은 법을 기만했고, 법은 오히려 그들을 보호하고 피해자들을 ‘바보’ ‘병신’으로 취급하기 일쑤였다. 법이 손놓고 있다고 나까지 손 놓을 수는 없었다.
나는 이미 정부 당국과 싸워 이긴 경험이 있었기에 두려움 없이 또다시 싸움에 나설 수 있었다.
이번에는 더 집요하고 끈질기게 사기조직을 추적했다.먼저 화물차 지입사기 조직의 규모, 조직의 구성과 관계, 사기수법 등을 완전하게 이해했다. 그런다음 지피연으로부터 넘겨받은 자료 등을 종합해 사건의 관계도를 그렸다.
나는 사건기사를 쓸 때 ‘모자이크 취재기법’을 활용한다. 취재 지침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든 나만의 취재 방식이다. 해당 사건을 완전히 이해한 다음 관계도를 그려 취재할 것을 정한다. 그림으로 치면 밑그림과 같다.
그런 다음 모자이크를 맞추듯 사건을 조각조각 맞춰간다. 그러다보면 어느 새 사건의 실체가 한 눈에 드러나게 돼 있다.
지입사기는 워낙 방대하고 규모가 엄청났다. 우리나라 범죄 역사상 다단계 다음의 사기사건으로 이해하면 된다. 다만 다단계 사기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지입사기는 달랐다. 특정분야인데다 수법이 교묘해 피해자들도 자신들이 사기피해를 당한 줄 모르고 있을 정도였다.
나는 1차 기획기사를 보도한 지 약 4개월만인 2001년 9월10일자에 지입사기조직 66개를 폭로했다. 여기에 관련된 두목 및 조직원들도 250명이 넘었다. 상상을 초월한 엄청난 규모였다.
당시 물류신문 지면(대판) 12면 중 4면을 할애해서 특집으로 꾸몄다. 전날부터 새벽까지 기사를 마감했는데, 장대용 사장, 김성우 편집국장, 내가 끝까지 남아서 지면과 내용을 조율했다.
나는 사기조직과 조직원들을 실명으로 폭로하자고 주장했으나 장대용 사장은 염려가 됐던지 조직원들의 실명은 고려하자는 입장이었다.
결국 새벽까지 실랑이를 벌이다가 김성우 국장의 중재로 사기조직은 실명으로 두목 및 조직원들은 이름 가운데자는 ‘0’으로 처리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전문지, 그것도 창간한지 얼마 안 된 신생매체가 수십개의 사기조직을 실명으로 폭로하고 조직원들도 비록 이름 가운데는 가렸지만 이렇게 적나라하게 적시한 것은 유력일간지도 할 수 없는 대단한 결단이었다. 아마 우리나라 언론 역사상 최초였을 것이다. 장대용 사장과 김성우 국장의 결단력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이번 폭로와 함께 나는 지입사기 조직에게 사실상 전쟁을 선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