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조직 두목에서 배우로 변신한 ‘야인시대 홍만길’
1949년생인 정일모는 10대에서 30대까지 복싱선수 활동했다. 22세 때인 1971년에는 라이트급 신인왕을 차지했을 정도로 유망주였다.
정일모의 주먹을 탐냈던 폭력조직에서 행동대장으로 영입을 제안하면서 20대 중반에 주먹세계에 들어간다. 그는 오로지 맨주먹으로 상대를 제압하며 조직을 키워나갔다. 대구를 시작으로 각 지방에서 잘 나가던 주먹들이 그의 발밑에 무릎을 끓었다. 그는 암흑세계의 보스가 된다.
그러던 1990년 노태우 정부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조폭 검거에 나선다. 전국의 조폭들이 줄줄이 엮여 철창 신세를 지게 된다. 정일모도 위기를 느끼고 아예 주먹세계 은퇴를 선언한다.
당시 상황에 대해 그는 “그때는 조그맣건 크건 간에 무조건 감옥에 집어넣는 시기였다”며 “이대로 하다가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나왔다”고 말했다.

조폭생활에 대해서는 “약자 편에서 살았고 또 남한테 가서 공갈치고 협박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 저와 같이 있었던 동생들도 한 번도 교도소에 보내지 않았다. 죄가 있으면 당연히 교도소에 가야 한다. 깨끗하게 살려 노력했고, 제 생활 신조가 ‘범죄를 저지르지 말자’였다. 참 많이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암흑가에서 나온 정일모는 다음해인 1991년 편거영 감독의 영화 ‘팔도 사나이’로 데뷔하며 배우로 전향한다. 서울의 한 술집에서 패싸움이 일어났고, 정일모가 수습을 했는데, 이 모습을 그곳에 있던 편 감독이 보고 영화 출연을 제안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를 계기로 정일모는 주먹세계에서 완전히 손을 씻고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후 정일모는 영화 ‘대명'(1993), ‘작은거인'(1994), 드라마 ‘적색지대'(1992), ‘장녹수'(1995, ‘용의눈물'(1996), ‘제국의 아침'(2002), ‘야인시대'(2003) 등에서 열연했다.
정일모는 KBS2TV ‘적색지대’에 출연할 당시에도 조폭 출신으로 화제가 됐다. 폭력조직의 대권싸움을 그린 이 드라마에서 ‘마피아 역’을 맡은 정일모는 가장 눈길을 끄는 출연자였다. 당시 경향신문은 ‘적색지대 옛 주먹대부 출연 화제’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일제강점기에서 해방 후 주먹세계를 그린 SBS ‘야인시대’에 캐스팅 되고 나서는 자신의 경험담을 제작진과 공유하며 영화 제작에 십분 활용했다. 그 덕분에 촬영이 수월했다고 한다. 부하들과 있을 때 인사하는 방법도 가르쳤다.
정일모는 극중 김두환패(우미관패)의 중간급 보스 홍만길역을 맡으면서 인기를 얻었다. ‘홍만길’은 실존 인물이다. 이 드라마에서 10공주파 리더 이영숙의 오른팔인 백장미로 출연한 배우 정소이(본명 정은진)는 정일모의 친딸이다.

2018년 8월30일 서울 중구 장충동 그랜드 앰배서더 서울호텔에서 원로 조폭 조창조의 팔순잔치가 열렸다. 그는 시라소니(이성순) 이후 맨손 싸움의 1인자로 불린 원로 주먹이다. 우리나라 주먹계 2세대쯤 된다.
이곳에는 짧은 머리에 검은색 양복, 건장한 체격의 젊은 사내들부터 머리가 히끗한 원로 조폭들까지 전국에서 약 1000여명이 모였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두목급들이 대거 자리를 함께 했다.
하객 중에는 1987년 이른바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사건인 ‘용팔이 사건’ 주범 김용남 등이 참석했는데, 이 가운데는 정일모도 있었다. 그는 자신을 ‘연예계의 협객’이라고 소개했다. 이날 축가로는 야인시대 주제곡이 연주됐다.

정일모는 2016년 첫 앨범 ‘청춘아, 체념’을 발표하며 가수로도 데뷔했다. KBS ‘가요무대’에 출연해 늦깍이 가수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이후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곡 ‘남자’를 비롯해 ‘내 운명의 여자’라는 곡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남자’는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이 담긴 ‘인생의곡’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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