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영화

마음속 기억을 담은 ‘비밀편지’


누군가를 만났다가 헤어진 뒤 꽤 오랫동안 연애를 안 하는 사람들이 있다. 못한다기보다는 안 한다는 표현이 맞다. 부족함이 없이 없어 보이지만 꽤 오랫동안 연애를 안 하는 사람들. 대개 그런 사람들은 사랑을 깊게 한다.

마음에는 우물이 있다. 사랑을 깊게 하는 사람은 우물 안에 있는 모든 물을 상대방에게 퍼준다. 자신이 가진 물의 양이 얼마인지 계산하지 않는다.

모든 물을 퍼주며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하고 나면 텅 비어버린 우물에 물이 아주 천천히 찬다. 사랑은 한순간에 끝난다는 것과 아무리 물을 퍼줘도 갈증이 해소되면 돌아서는 게 인간이라는 걸 배웠으니까.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 삶의 질이 높아진다. 연인을 위해 쓰던 돈을 자신을 위해서 쓸 수 있고, 남는 시간에는 취미생활도 할 수 있으며,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편히 만날 수도 있다.

누군가를 만나지 않아도 딱히 사는 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거기다 사랑을 깊게 하는 성격 탓에 얼마 차지 않은 물도 쉽사리 누군가에게 건네주고 싶지 않아 한다.


이런 이유들로 오랫동안 연애를 안 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봤다. 사랑은 하고 싶지만 굳이 찾고 싶지는 않은 사람들. 그럴 때는 우물에 물이 충분히 찰 정도로 기다리는 것도 좋다.

내 삶을 즐기며 천천히 차오르던 우물이 찰랑찰랑 넘칠 때. 넘치지 않더라도 충분히 고였을 때 용기 내서 다시 또 사랑했으면 좋겠다. 충만한 물로 서로의 갈증을 원 없이 해소했으면 좋겠다. 그때의 사람은 목이 마르지 않아도 그대 곁에 있기를 바란다.

-박근호 <비밀편지> 중에서-

책속에서

한창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엄마와 같이 온 아이가 한강을 보며 이야기한다. ‘엄마 저 앞에 넓은 바다 좀 봐.’ 내게도 한강이 바다처럼 보였던 날이 있었을까.
강이 강으로 보이면 어른일까. 어른 그 애매한 것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너만큼은 오랫동안 강이 바다로 남았으면 좋겠다.-‘어른, 그 애매한 것’ 중-

말하는 은연중에, 눈빛에, 귀에, 손에, 모든 곳에 온도는 묻어난다. 그런 사람과 마주 앉아 이야기하다보면 괜스레 마음이 따뜻해진다. 모든 감정을 함께 여행하고 싶어진다. 이제는 37.5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런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37.5도의 마음’ 중-


툭 건드리면 이야기가 쏟아질 만큼 사람들은 모두 외롭다. 가끔은 그 외로움을 없애줄 누군가가 먼저 말을 걸어주길 바라며 살아간다. -‘외로운 사람들’ 중-

누구나 다 특별한 모습을 갖고 있고 누구나 다 무언가를 이뤄낸 적이 있다. 사람이 가진 아름다움은 결코 비교할 수 없다. 나는 나대로 특별하며 그대는 그대대로 아름다운 것이 삶이라 생각한다.
여러 갈림길에 설 때면, 앞으로 걸어가는데 자꾸 뒤로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면 그대의 특별함을 떠올리길 바란다. 그대가 이뤄냈던 무언가를 떠올리길 바란다. 당신만큼 아름다운 것도 없다. -‘근묵이’ 중-

그래서 나는 당신과 함께 살았던 날보다 함께 살지 못한 날이 더 많은데 그 시간이 부끄러운 적도 원망스러웠던 적도 없었다.
당신은 내게 너무 다정한 사람이었으니까. 할 수만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 딱 한 번만 보고 싶다. 당신 뒷모습을 바라보며 다정하게 울고 싶다. -‘다정한 울음’ 중-


작가는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진 후, 그동안 연인에게 제대로 된 감정표현 한 번 해본 적 없었다는 것이 너무도 후회됐다. 무작정 신촌의 골목으로 나간 그는 삐뚤빼뚤한 손글씨로 이름 모를 이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는데, 3년 동안 무려 5천통이나 됐다.
표현하지 못해 아플 거라면 용기를 내보고 싶었던 저자는 아픔을 억지로 덜어내려 하지도, 숨길 필요도 없다고 이야기하면서 자신과 같은 아픔을 가진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수필집 ‘비밀편지’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