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납치 오해해 택시서 투신한 여대생 사망사건


안타까운 사건이다.

2022년 3월4일 오후 8시45분쯤 여대생 A씨(20)는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KTX 포항역 인근에서 택시에 탑승한 후 뒷좌석에 앉았다.

그는 택시 문을 닫으며 “00대요”라고 목적지를 말했다. 이를 잘못 들은 택시기사 B씨(65대)는 A씨에게 “한동대요”라고 반문했고, B씨도 잘못 알아들은 듯 “네”라고 대답했다.

청력이 좋지 않았던 B씨는 목적지를 잘못 알아듣고 다른 대학교 기숙사로 차를 몰았다. 택시가 엉뚱한 방향으로 달리자 A씨는 B씨에게 “이쪽 길 맞죠? 네? 기사님”이라고 물었으나 이를 알아듣지 못한 B씨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불안해지기 시작한 A씨는 남자친구에게 “이상한데로 가 택시가”, “나 무서워. 어떡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B씨가 제한속도인 시속 80㎞를 위반해 시속 109㎞로 운전하자 차량에는 수차례 내비게이션 경고음이 울렸다. A씨는 남자친구에게 재차 “엄청 빨리 달려. 내가 말 걸었는데 무시해”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등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

A씨는 “아저씨, 저 내려주시면 안 돼요?”라고 물었으나 B씨는 운전 소음으로 듣지 못했다.


당시 택시에는 뒷좌석과 운전석을 분리하는 플라스틱 판이 있었고, 코로나19로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된 때였다. 여기에 자동차 전용도로를 고속으로 달리면서 주행소음 때문에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여기에 B씨는 ‘노인성 난청’이 있었다. 이는 노화에 따른 청각기관의 퇴행성 변화에 의해 발생하는 점진적인 청력감소를 의미한다. 이런 여러 요인들로 인해 A씨와 B씨의 의사가 제대로 소통되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목적지가 아닌 다른 길로 가고,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한데다 낯선 곳으로 빠르게 질주하자 A씨는 자신이 납치된 것으로 오인했다.

택시 탑승 7분후인 오후 8시52분쯤 A씨는 달리는 택시에서 문을 열었고, 당황한 B씨가 “와 이러는교”라며 속도를 줄였다. 이때 A씨가 차에서 뛰어내려 도로 2차로에 떨어졌고, 뒤따르던 SUV 차량에 치이고 말았다. A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얼마 후 사망한다.

검찰은 B씨가 깜빡이 없이 실선 구간에서 차선을 변경하는 등 난폭 운전한 점, A씨 상태를 살피지 않은 점, 청력이 떨어졌는데도 관리를 소홀히 한 점을 들어 A씨 사망에 과실이 있다고 보고 재판에 넘겼다.


SUV 운전자인 C씨(42대)는 전방을 주시하고 안전거리를 유지하지 않았다는 혐의를 적용해 함께 기소했다.

1심은 B씨와 C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B씨가 포항역에서부터 피해자의 목적지를 한동대로 인식했다”며 “B씨 입장에서는 A씨가 겁을 먹고 자동차 전용도로를 80㎞/h 이상의 속도로 주행하는 택시에서 갑자기 뛰어내릴 것을 전혀 예견할 수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C씨에 대해서도 “앞선 차에서 사람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건 예상하기 어렵다”며 “사고 당시 시각은 야간이었고 주변에 가로등도 없어 피해자를 발견하기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포항 영일만 대로.

검찰은 “운전자들이 적절한 주의 의무를 다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사고”라며 항소했으나 2심 판단도 달라지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도 B씨가 청력 저하에도 보청기를 착용하거나 치료를 받지 않아 결과적으로 A씨의 불안감을 가중시킨 점 등은 인정했지만 운전자들이 A씨가 택시 문을 열고 뛰어내릴 것을 예견할 수는 없었다고 봤다.

검찰은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원심판결 이후 관련 법리기록을 비춰보면 자유심증주의를 벗어나 상당인과관계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고, 두 운전자의 무죄가 확정됐다.

한편 사고 후인 2022년 3월7일 A씨의 남동생은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어둡고 낯선 길에 빠르게 달리는 택시 안에서 누나는 극도의 공포감과 생명의 위협을 느껴 차에서 뛰어내리는 선택을 했고 의식이 있는 상태로 뒤따라오는 차량과 충돌해 사망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누나는 웃음기 많고 화목한 우리 가족에게 가장 소중한 비타민이었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털털하고 웃음이 많기로 유명한 친구였다”며 “주사 맞는 것도 무서워할 정도로 겁이 많은 누나가 그렇게 무서운 선택을 할 정도였으면 그 상황이 얼마나 무서웠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며 참담한 심경을 밝혔다.■

<저작권자 ⓒ정락인의 사건추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