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

엔씨소프트 윤송이 사장 아버지 살인사건

은퇴 후 양평 전원주택에 살다 시신으로 발견
범인 잡았지만 범행동기 등 입 다물면서 의혹 키워


아직도 그날의 진실이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2017년 10월26일 오전 7시22분쯤 “남편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다”는 119 신고가 접수된다. 소방은 경찰과 함께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의 한 전원주택으로 출동했다.

신고자의 남편 윤아무개씨(68)는 집 앞 주차장 옆 정원에서 피를 흘린 채 숨져 있었다. 목과 가슴 등에는 흉기로 10여 차례 찔린 상처가 있었다. 또 신체 곳곳에는 범인과 몸싸움을 벌이면서 생긴 방어흔도 눈에 띄었다.

동호회 모임 다녀오다 공격당해

윤씨는 국내 대표적인 게임 개발업체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의 장인이자 아내인 윤송이 사장의 아버지였다. 두 사람은 2007년 11월 결혼했다. 숨진 윤씨는 산업은행을 거쳐 한국증권금융 상무 출신으로 2002년 퇴임한 뒤 부인과 양평의 자택에서 지내왔다.

윤씨 부인은 경찰에 “남편은 전날 오후 5시쯤 색스폰 연주 동호회 모임에 나갔다가 연락이 끊겼다”고 말했다. 시신 발견 당시 현장에는 윤씨가 타고 나간 벤츠 차량과 그의 휴대전화와 지갑이 사라지고 없었다.

경찰은 윤씨가 살해된 것으로 보고 주변 수색에 나섰고, 4시간 만인 오전 11시쯤 자택에서 약 5km 떨어진 무인 모텔 인근 공터에서 없어진 차량을 발견했다. 블랙박스는 뜯겨져 사라진 상태였다.

사건이 일어난 양평 문호리의 전원주택 앞(KBS 방송화면 캡쳐).

모텔 주변 폐쇄회로(CC)TV에서는 범인의 흔적이 포착된다. 신원불상의 한 남성이 전날 밤 윤씨 차량을 몰고 와 이곳 주차장에 세워두고, 얼마 뒤 미리 주차돼 있던 흰색 차량을 이용해 현장을 빠져나간 것이다.

경찰은 이 차량 번호판을 추적해 허아무개씨(남·41)를 유력한 살인 용의자로 특정했다. 또한 그의 휴대전화 번호의 위치추적과 차량 수배를 통해 행방을 쫓았다.


같은 날 오후 허씨가 전북 순창 IC를 통과한 후 해당 지역에 머무른 사실을 확인하고 전북지방경찰청과 공조해 임실군 덕치면 소재 전주 방향 27번 국도에서 허씨를 검거했다. 당시 그는 순창의 아버지 묘소를 다녀오던 중이었다.

경찰은 허씨를 양평경찰서로 압송해 조사했지만 그는 범행을 부인하며 협조하지 않았다. 허씨가 입고 있던 옷과 신고 있던 신발에 혈흔이 묻어 있었는데, 유전자(DNA) 검사결과 윤씨의 것으로 확인됐다. 허씨의 승용차에서 나온 혈흔도 윤씨의 DNA와 일치했다.

범행을 부인하던 허씨는 경찰이 증거를 제시하자 그제야 인정했다. 그는 처음에는 “부동산 일을 보러 양평에 갔다가 주차 문제로 시비가 붙어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우발적 살인이라고 강조하면서도 구체적인 범행동기 등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가 진술을 번복한 허씨는 “주변을 지나다가 문이 열린 자동차와 지갑 같은 물품을 보고 순간 욕심이 나서 가져간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다”며 살인 혐의를 부인했다. 이후에는 묵비권을 행사하며 입을 열지 않았다. 경찰이 프로파일러까지 투입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치밀하게 계획된 범인의 동선

하지만 허씨가 사전에 범행을 준비한 정황은 곳곳에서 나왔다. 그의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복원했더니 범행 일주일 전부터 용인지역 고급 주택가를 둘러본 사실이 드러났다. 또 휴대전화를 통해 수갑, 가스총, 핸드폰 위치추적, 고급 빌라 등을 검색한 흔적이 나왔다.

범행 당일 허씨는 윤씨 자택 인근을 세 차례나 찾았다. 오후 3시와 오후 4시 현장 진입 모습은 윤씨 자택에서 2km 가량 떨어진 방범용 CCTV에 찍혔고, 오후 5시12분에는 문호리 마을 입구를 지나 윤씨 집 길목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마을 입구를 비추고 있는 CCTV에 포착됐다.

윤씨 자택에 설치된 CCTV는 석 달 전부터 고장 나 허씨가 집 근처를 몇차례 방문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동호회에 참석했던 윤씨는 오후 7시25분쯤 마을 입구를 통과해 집으로 향했다. 이때까지도 허씨는 두 시간 넘게 윤씨 집 근처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윤씨가 나타나자 범행을 실행했다.


허씨는 범행 후인 오후 8시10분쯤 자신의 차량을 몰고 마을을 빠져나와 모텔 주차장에 주차했다. 이어 도보로 사건 현장으로 다시 갔을 것으로 보이며 38분 뒤인 오후 8시48분쯤에는 윤씨의 벤츠를 몰고 마을을 빠져나왔다. 그는 이때 약 1시간 동안 마을을 배회하며 편의점에서 생수와 밀가루를 산다.

이어 모텔 주차장으로 돌아와 자신의 승용차를 몰고 하남 미사리 방면으로 갔다가 11시43분쯤 돌아온다. 허씨는 벤츠를 모텔에서 약 70m 떨어진 공터에 버린 후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도주했다.

허씨가 범행 후 피해자인 윤씨의 벤츠를 무인모텔 주차장에 세워둔 뒤 주차장 밖으로 걸어나오고 있다.

허씨는 범행동기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으나 당시 심한 경제적 압박을 받고 있었다. 그는 수입이 불규칙하자 2013년부터 어머니 소유 부동산으로 대출을 받는 등 지속적으로 돈을 빌렸다.

허씨는 경찰 조사에서 “8000만원을 빚져 월 200만∼300만원의 이자를 내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실제 대출업체로부터 200여통의 빚 독촉 문자메시지를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또한 허씨는 토지를 개발하고 분양하는 부동산 업자로 활동하면서 범행 이전 윤씨 자택 인근 공사를 담당했었던 것도 드러났다.

허씨는 엔씨소프트가 개발한 리니지 게임에서 사용되는 200~300만원 상당의 고가 아이템을 구매하려한 적도 있었다. 이를 위해 리니지에서 사용되는 특정 아이템 구입을 희망한다며 인터넷에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경찰은 허씨가 게임 아이템 고가 거래 등으로 빚을 진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윤씨를 계획적으로 살해했을 수도 있다고 보고, 범행 연관성을 확인했지만 아이템 거래 시점과 횟수 등을 볼 때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경찰 수사에서 허씨는 피해자가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의 장인이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단지 부유한 사람을 범행대상으로 삼으려던 중 발생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윤씨가 누군지 알고 노렸거나 이와 관련해 범행을 사주받은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윤씨의 지인들도 평소 윤씨가 자녀의 신상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진술 번복하고 끝까지 묵비권 행사

허씨의 범행은 강도는 철저하게 준비했지만 살인은 우발적인 것에 무게가 실렸다. 흉기를 미리 준비하고, 범행 당시 급소인 목을 노리고 찔렀다는 것은 처음부터 죽일 의도가 있었다는 것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범행 이후 허술한 대처와 우왕좌왕 하는 모습은 살인까지 준비했다고 보기에는 의아하다. 경찰도 허씨가 보인 행적이나 범행 현장 수습과정은 ‘우발 범죄’에서 나오는 패턴이라고 밝혔다.

우선 허씨는 윤씨를 살해한 후 시신은 방치한 채 차량만 옮겼다. 시신을 차량에 싣고 핏자국을 지운 후 시신과 차량을 각각 인적이 드문 곳에 유기했다면 실종으로 신고돼 한동안 경찰 수사망을 피할 수 있었다. 그만큼 도주하는 시간을 벌 수도 있었다. 범행 후 구입한 생수와 밀가루가 현장의 핏자국을 지우려고 시도한 정황이지만 허씨는 이것들을 사용하지 않았다.


허씨는 범행 후 피해자의 벤츠를 타고 자신의 승용차를 주차해 둔 무인모텔로 왔다. 그는 곧바로 도주하지 않고 이번에는 자신의 승용차를 몰고 하남 미사리 방면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온다. 허씨가 미사리에는 왜 갔는지 알 수 없으나 윤씨를 살해한 후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범행 전에는 검색하지 않았던 ‘살인’, ‘사건사고’를 범행 직후 검색했다는 것도 우발적 살인으로 볼 수 있는 정황이다.

허씨는 범행 후 피해자의 혈흔이 묻어 있는 옷과 신발을 갈아입거나 갈아신지 않았다. 검거 당시에도 그 복장 그대로였다. 또한 범행 다음날 아버지 산소에 다녀온 것도 심리적으로 불안해하다 극단선택 등을 염두에 둔 행동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허씨의 범행에 대해 빚독촉에 시달리던 그가 고급 주택가를 돌며 범행대상을 물색한 후 강도와 납치, 협박을 준비했다가 윤씨를 범행대상으로 정하고 범행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저항하자 우발적으로 살해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허씨가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서 범행 장면이 담겼을 것으로 추정되는 윤씨 차량의 블랙박스는 끝내 발견하지 않았다.

경찰은 허씨 아버지 묘소가 있는 전북 순창군 팔덕면의 야산에서 범행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길이 20㎝(날 길이 8㎝)의 흉기(과도)와 뜯지 않은 밀가루 봉지를 발견했다. 하지만 과도에서 피해자의 DNA가 검출되지 않았고, 허씨도 묵비권을 행사하면서 범행에 사용했는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여전히 제기되는 그날의 의혹

허씨는 검찰에서도 범행동기에 대한 진술을 거부했다. 강도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뒤에도 태도가 달라지지 않았다.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피고인은 여러 객관적 증거가 있음에도 뉘우치기는커녕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며 허씨에게 사형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이 사건의 경우 자백이나 살해 도구, 살해장면이 담긴 영상 등이 존재하지 않으나, 여러 증거와 정황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하고 차량과 지갑을 절취한 사실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됐다”고 밝혔다.

이어 “사람의 생명은 무엇과도 바꾸지 못할 가치로, 한 번 잃으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다”라며 “피고인은 유족들에게 평생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를 입혔음에도 진심 어린 사과나 반성을 하지 않고 범행을 부인해 더 큰 고통을 안겨줬다”고 지적했다.

허씨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2심 재판부도 “허씨는 피해자를 살해한 사실이 없다고 강력히 부인하고 있지만, 범행 동기와 관련한 피고인의 경제적 상황, 범행 준비 과정을 볼 수 있는 정황들, 유전자 감정 결과를 모두 종합하면 유죄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1‧2심 재판에는 엔씨소프트 윤송이 사장과 김택진 대표 등 유족들이 나와 침통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허씨는 상고했으나 대법원에서 원심 판결이 확정됐다.


한편 이 사건은 허씨가 범행동기를 밝히지 않고, 살인 혐의를 끝까지 부인했다는 점, 범행 전 사전에 준비한 것과 달리 범행 후 우왕좌왕하는 모습, 조사 과정에서의 태연한 행동, 여기에 블랙박스나 범행도구가 발견되지 않으면서 공범이나 제3의 인물 존재 가능성 등의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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