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노들길 여성 살인사건
2006년 2월 전북의 한 대학을 졸업한 서아무개씨(여‧23)는 취업 준비를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 서씨는 관악구에서 동생과 함께 지내며 취업을 위한 공부에 매진했다.
휴대전화까지 정지하며 취업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같은 해 7월2일 생일을 맞은 서씨는 홍대인근에서 고등학교 동창 이아무개씨(여)를 만났다. 모처럼 친구를 만난 서씨는 한 잔 두 잔 술을 마시다가 이내 취기가 올랐다.
7월3일 오전 1시쯤 서씨는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니 한강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한강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타고 당산역 방향으로 향했다. 그런데 서씨의 태도가 갑자기 돌변했다.
“혼자 있고 싶다”며 택시가 멈추기도 전에 당산역 인근에서 내리려고 했던 것이다. 택시가 당산역 4번 출구 앞에서 정차한 뒤에는 혼자 내렸고, 한강둔치로 이어진 어두컴컴한 토끼굴 방향으로 뛰어갔다. 친구 이씨는 택시비를 지불하고 서씨를 뒤쫓아 갔지만 찾지 못했다.
이후 서씨는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평소 외박을 모르던 딸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은 부모는 곧바로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7월4일 새벽 2시10분쯤 택시기사 김아무개씨는 영등포구 성산대교 인근 노들길(노량진의 옛 이름인 ‘노들나루’에서 유래)을 지나는 길이었다.
소변이 급했던 김씨는 길가에 택시를 세우고 도랑에 볼 일을 보고 있었다. 한참 소변을 보고 있던 김씨는 도랑 안에 뒹굴고 있는 하얀 물체에 눈길이 갔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발가벗은 여성의 시체였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신원을 확인해보니 다름 아닌 실종된 서씨였다. 시신이 발견된 곳은 친구 이씨와 헤어진 지점에서 약 2km 떨어진 곳이었다.
시신은 무릎을 약간 구부린 상태에서 가슴을 양손으로 가리고 하늘을 보고 누워 있었다. 사후경직이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봐서 사망한 지 12시간이 지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었다.
경찰은 사건 단서를 찾기 위해 시신이 발견된 지역 인근을 수색했다.
서씨의 소지품이 하나 둘 발견되기 시작했다. 토끼굴로 진입하는 골목길 옆 당산2동 노인회관 비석 앞에서는 티셔츠, 속옷, 구두, 지갑, 선글라스, 가방 등 유류품이 발견됐다. 소지품들은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소지하고 있던 현금도 그대로 있었다. 정지돼 있던 휴대전화만이 사라진 상태였다.

이후 서씨는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평소 외박을 모르던 딸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은 부모는 곧바로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경찰은 서씨의 시신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의뢰해 부검을 실시했다.
사인은 ‘경부 압박 질식사(목졸림)’였다. 목을 조른 흔적이 있었는데, 모양이 각각 달랐다. 범인이 끈으로 졸랐다가 죽지 않자 손을 이용해 재차 목을 조른 것으로 판단됐다. 손목과 팔에는 테이프로 감긴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시신을 모욕한 엽기적인 정황도 나왔다. 코와 음부에 휴지가 박혀 있었고, 음모가 예리한 흉기로 잘려나간 흔적이 있었다. 오른쪽 손등에는 불에 덴 것 같은 둥근 모양의 상처가 있었는데 담뱃불에 의한 것으로 추정됐다.
시신의 상태도 예사롭지 않았다. 도랑에 알몸으로 버려졌는데도 너무 깨끗했다. 더욱이 신발을 신지 않은 맨발인데도, 발바닥에는 흙이 묻어있지 않았다. 경찰은 범인이 범행 흔적을 지우기 위해 시신을 깨끗이 닦아낸 다음 유기한 것으로 내다봤다.
서씨가 소지했던 현금이 그대로 있는 것을 봐서 금품을 노린 것은 아니었다.
다만 시신의 질이 아닌 항문에서 소량의 정액반응과 귓불과 유두에 이빨로 물어서 생긴 치흔이 발견됐다. 최소한 비정상적인 성적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는 추정되는 대목이다.
사건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 실종 당일 서씨의 동선을 역 추적해 보자. 서씨가 실종된 곳을 1번 지점(당산역 4번 출구), 소지품이 발견된 곳을 2번 지점(당산 2동 노인회관 비석), 시체가 발견된 곳을 3번 지점(영등포 노들길)으로 표기하자.
1번과 2번 사이는 걸어서 2분이면 갈 수 있는 짧은 거리다. 2번에서 3번은 승용차로 4분 정도 걸린다. 서씨가 실종돼 사체로 발견된 지점은 아주 가까운 거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소한 범인이 이 동네 지리를 잘 알고 있거나 익숙한 사람일 것으로 추정되는 이유다.
유족에 따르면 서씨는 이전에도 만취해서 집에 들어온 뒤 옷을 모두 벗고 있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를 감안하면 서씨는 골목길로 접어든 후 한강둔치로 연결돼 있는 토끼굴로 가기 위해 걸어가다가, 너무 취한 나머지 토끼굴 입구에 조금 못 미친 곳에 있던 비석 옆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는 것이 된다. 그리고 만취 상태에서 옷을 벗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목격자도 있었다. 이곳 동네주민이 비석 옆에 기대 앉아있던 취한 젊은 여성을 목격했었다는 제보가 들어오기도 했다.
당산역 인근을 담당하던 한 환경미화원이 “7월3일 새벽 4시쯤 상의가 탈의된 채 가슴을 가리고 뛰어가는 여성을 봤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성인 여성이 상의를 완전 탈의한 채 길거리를 다니는 것이 이례적인 만큼 서씨일 가능성이 있다.
만약 서씨가 맞다면 그녀는 2번 지점(당산2동 노인회관 비석 앞)에서 이동 중 범인에게 납치당한 후 살해됐다고 볼 수 있다. 당산역 인근 한 빌라에 거주하던 여학생은 “사건 당일 두 명의 남자가 한 여자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고, 바로 옆에는 인천 번호판의 보라색 엑센트 차량이 세워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서씨의 시신이 발견되기 약 2시간 전인 7월3일 오전 12시10분쯤 노들길을 지나던 한 견인차 기사는 이상한 사람들을 목격했다. 당시 서씨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 인근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도랑 근처에 어두운 색깔의 아반떼 XD 차량이 주차돼 있었고, 그 주변에는 2명이 남성이 있었다. 한 명은 하수구 옆에 서성거리고 있었고, 또 한 명은 짙게 썬팅된 차 안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는 또 차량번호 뒷자리 중 일부를 기억해 냈다. 경찰은 견인차 기사의 진술을 토대로 1천여 대의 차량 소유자를 파악한 후 남성만을 골라 유전자(DNA) 검사를 실시했으나 용의자를 특정하는 데는 실패했다.
경찰수사는 답보 상태에 빠졌다. 목격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몽타주를 만들었으나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이 사건은 현재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다. 제보는 서울 영등포경찰서(02-2633-0112)로 하면 된다.
범인이 남긴 단서들
1.피해자 사망시간
: 서씨가 친구 이씨와 헤어진 시간은 2006년 7월3일 오전 1시쯤이다. 택시기사에 의해 시신으로 발견된 것은 25시간 뒤인 7월4일 오전 2시다. 시신 발견 당시 사후경직이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사망시간은 7월3일 오후 2시에서 발견직전인 7월4일 오후 2시까지로 볼 수 있다.
서씨의 시신에서 혈중 알코올이 검출되지 않은 것은 그녀가 실종 이후 한동안 살아 있었다는 것을 반영한다. ‘사후강직은 사람이 사망하면 근육이 뻣뻣하게 굳어가는 현상을 말한다. 보통 사망 2시간 후부터 강직이 시작되고 12시간 동안 진행된다.
물론 서씨가 이씨와 헤어진 후 당산2동 노인회관 비석 앞에서 앉아 있던 시간, 환경미화원이 상반신을 벗은 채 지나가는 여성을 봤다는 시간 등을 감안하면 사망시간 추정은 더 좁혀 볼 수 있다.
2.납치된 후 살해됐을 가능성 높다
: 서씨는 실종 직전 친구와 술을 마셔 취한 상태였다. 당산2동 노인회관 비석 앞에서는 서씨의 옷과 소지품이 발견됐다. 서씨가 나체 상태로 혼자 이동했다면 새벽시간대를 고려해도 여러 목격자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서씨(추정)를 목격한 사람은 비석에 기대어 있는 모습을 본 동네사람과 상반신을 벗고 길을 가는 것을 본 환경미화원이 유일하다.
이것은 서씨의 이동 동선이 길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술에 취한 여성이 나체 상태로 지나가는 것을 본 범인(1명 혹은 2명)이 승용차로 납치한 후 모처에 감금했을 가능성이 있다. 서씨의 시신 손목과 팔에 테이프로 감긴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이 이런 추론을 뒷받침 한다. 범인은 서씨의 시신을 유기하기 전 깨끗하게 흔적을 닦아냈다. 서씨가 특정 장소에 감금됐다가 살해됐다고 볼 수 있는 정황이다.
3.성적 학대 있었다
서씨의 옷과 소지품은 당산2동 노인회관 비석 앞에서 발견됐다. 공공장소인 것을 보면 범인이 강제로 옷을 벗겼다고 보기는 어렵다. 서씨가 벗어놓은 겉옷과 속옷에서 타인의 지문도 나오지 않았다. 서씨 스스로 옷을 벗었다면 그녀는 나체 상태로 이동한 것을 알 수 있다. 범인이 서씨를 납치했다면 금품을 노린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만약 범인이 서씨를 납치해 결박한 상태였다면 얼마든지 성폭행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서씨의 질에서는 성폭행 흔적이나 정액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항문에서 소량의 정액반응이 나왔다. 귓불과 유두에는 이빨로 물어서 생긴 자국도 있었다. 이것은 범인이 성폭행을 시도했으나 제대로 발기가 되지 않았거나 변태 성욕자로 추정해 볼 수 있다.
4.범인은 성도착증이 있다
범인은 서씨를 살해한 후 시신의 코와 성기에 휴지를 넣는 엽기적인 행동을 했다. 또 날카로운 물체로 음모를 도려냈다. 범인의 성적 이상심리를 보여주는 행동이다. 전문가들도 “시신에 이물질(휴지)을 삽입하는 등의 행동을 통해 쾌락을 느끼는 성도착증 범죄행태”라고 분석했다. 보통 여성의 가장 비밀스러운 부위를 훼손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다. 성도착증 환자들이 전리품을 확보하거나 범행 당시를 떠올리며 쾌감을 느끼기 위한 변태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5.범인은 초범이 아니다
서씨의 납치‧감금‧살해‧유기 과정을 보면 치밀하고 대담하게 진행됐다. 범인은 범행 증거를 없애기 위해 시신을 깨끗이 닦아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나체의 시신을 수시로 차량이 이동하는 도로 옆 도랑에 유기한 것이다. 보란 듯이 사람들 장소에 내다 버렸다.
이곳은 가로 가로등이 켜져 있어 늦은 밤에도 쉽게 사물을 구별할 수 있을 정도다. 마치 자신의 범행을 과시하려는 듯한 행동이다. 범죄학적으로 보면 ‘과시형‧영웅형 범죄자’에 속한다. 그만큼 범행에 자신감을 가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정황을 보면 범인은 초범이 아니라 이전에도 비슷한 범행을 저질렀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 있다.
2005년과 2006년 신정동에서 발생한 살인사건과 연관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목을 조른 살인방법, 피해자의 몸속에 집어넣은 이물질, 깨끗한 상태의 시신처리 방법 등이 비슷하다. 신정동 사건과 노들길 사건 현장의 거리도 5km 안팎인 것도 동일범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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