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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영화’ 직접 주연 맡은 악명 높은 폭력조직 두목

1970~80년대 국내 폭력조직(조폭)은 일명 ‘3대 패밀리’가 전국을 분할했다.

김태촌의 서방파, 조양은의 양은이파, 이동재의 OB파는 ‘밤의 황제’로 불리며 한때 어둠의 시대를 풍미했다. 이들은 서울을 장악하기 위해 혈투를 벌였는데, 1976년부터 1979년까지 ‘3년 전쟁’을 치렀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전두환 신군부가 등장하고 노태우 정권 시절에 ‘범죄와의 전쟁’을 겪으면서 강제 해체되는 수순을 밟아야 했다.

조직 보스의 말로도 평탄치 않았다.

김태촌은 1975년 서울로 상경해 ‘서방파’를 결성한 후 1980년대 초반에 투옥된다. 1986년 1월에 출소한 후에는 300여 명의 추종자들을 규합해 전국 규모인 ‘범서방파’를 결성한다.

1987년 인천 뉴송도호텔 나이트클럽 사장을 살인 교사한 혐의로 구속됐으나 2년 후 폐암 진단을 받아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그 후 기도원에 들어가 소두목급 15명을 모은 후 신우회를 결성했다. 여기에는 조폭 300여 명이 모였고, 당국을 속이기 위해 ‘축복기도대성회’를 가장했다.

하지만 사법 당국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검찰은 이를 범서방파 재건으로 간주해 김씨를 재구속하고 대대적인 조폭 소탕 작전을 벌였다. 결국 범서방파도 강제 해체 수순을 밟는다.

김태촌은 2013년 1월5일 지병으로 사망한다. 그는 63년의 인생을 살았으나, 절반이 넘는 34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교도소를 제집처럼 들락거린 셈이다. 실제로 거리를 활보하며 ‘밤의 황제’로 군림한 것은 10년이 채 안 된다.

3대 패밀리 중 하나였던 이동재의 ‘OB파’는 공권력이 아닌 조직 간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공중분해 된 경우다.

1987년 11월 OB파 조직원들이 양은이파의 조직원 두 명을 공격한 것이 화근이 됐다. 보복에 나선 양은이파는 약 1년 후 서울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던 이동재의 다리를 난자했다.

이 사건으로 이동재는 회복 불능의 중상을 입었고, 미국으로 도피하면서 주먹계를 은퇴했다. 이씨는 미국의 한 지역에 은둔하면서 세탁소 등을 운영하며 어렵게 살아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촌과 이동재에 비하면 조양은의 삶은 더 드라마틱하고 파란만장하다.

1950년 1월18일 광주에서 태어난 조양은은 10대 후반부터 주먹 세계에 몸담았다. 광주 대호파에서 활동하다가 18세 때 ‘화신 8인조’를 결성한 후 1970년에 서울로 상경했다.

그는 5년 후인 1975년 1월2일 당시 조폭 대부로 군림하던 신상현의 신상사파를 사보이호텔에서 급습했다. 그 후 자신의 이름을 딴 ‘양은이파’를 결성하며 일약 전국구 조폭으로 등장한다.

그의 황금 시절도 길지 않았다. 1980년 신군부는 ‘사회악 일소’ 차원에서 대대적인 조폭 검거령을 내렸다. 조양은은 핵심 타깃이 되었고, 이때 구속돼 15년형을 선고받았다. 수감 중이던 1994년에 17살 연하이자 동시통역사였던 김아무개씨와 옥중 약혼식을 하며 화제가 됐다.

1995년에 만기 출소한 후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당시 주례는 고인이 된 조용기 목사가 섰다. 이때 결혼식장에는 짧은 머리에 건장한 체격의 청년 100여명이 도열했고, 현석, 김수미, 김용건 등 연예인을 비롯해 2천여 명의 하객이 참석했다.

교회 입구에는 이명박, 김덕룡, 김형오, 정채철, 이철, 최재승 등 여야 정치인의 화환이 세워졌다. 논란이 되자 정치인들 상당수는 화한 보낸 사실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혼 후에도 조양은은 범죄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신앙인으로 거듭나겠다고 선언했으나 한 달 만에 마약 밀반입을 시도한다.

1996년에는 H그룹 회장 윤아무개씨를 위협해 시가 2억원 상당의 스키장 및 리조트 회원권 8장을 빼앗았다. 또 증기탕 업소의 임대를 돕겠다고 1억여원을 가로채기도 했다. 조씨는 구속돼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1998년 8월에는 성경을 들고 구치소 정문을 나서며 “폭력배 두목 조양은은 없어진 지 이미 오래”라며 주먹세계와의 결별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성경들고 출소하는 조양은.

그러나 그는 여전히 폭력세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2001년에 200억원 규모의 해외원정 도박으로 체포돼 2년형을 받아 감옥에 들어갔다. 2004년 2월5일에는 한세대에서 열린 순복음총회신학대학원 졸업식에서 목회학 신학 석사학위를 받았지만 그의 범죄행각은 멈추지 않았다.

2005년 10월에는 강남구 역삼동 유흥주점에서 함께 술을 마시던 남성이 말대꾸를 했다며 크리스털 재떨이로 이마를 치고 주먹과 발로 폭행하는 등 전치 3주의 상해를 입힌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조씨는 법원에서 징역 1년6월을 선고받고 실형을 살았다.

2007년 8월에는 외제차 구입 과정에서 30대 의사에게 억대의 사기를 당하는 수모도 겪었다. 2011년에는 금융권 대출 사기에 연루돼 체포영장이 발부되자 그해 6월 중국을 거쳐 필리핀으로 도주했다.

2014년 12월 필리핀 카지노에서 현지 경찰에 체포된 후 국내로 송환돼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렇게 조양은은 20년 넘는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며 개과천선하지 못했다.

조양은은 끊임없이 자신을 미화하고 포장했다. 겉으로는 신앙인으로 거듭나겠다고 했지만 폭력행위를 멈추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에 대해 원로 조폭 김아무개씨는 조폭이 신앙을 갖는 이유는 두 가지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하나는 자기가 지은 죄를 참회하려는 생각에서다. 또 교도소에서 나오면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해 종교를 도피처로 삼기도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개과천선한 모습으로 보일 수 있어서다. 그래서 이래저래 ‘종교’를 갖는 것이다. 하지만 근본이 어디 가겠는가. 결국은 범죄에 연루되어 말로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영화 <보스>의 한 장면.

조양은은 한국 영화사에서 진기록을 갖고 있다.

그는 15년형의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뒤인 1995년 9월 자서전 <어둠 속에 솟구치는 불빛>(3권)을 출간했다. 96년 7월6일에는 이를 원작으로 한 영화 <보스>가 개봉된다. 조양은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으로 제작비 30억원이 투입됐다.

특이한 것은 생존해 있는 인물의 삶을 다루면서 실제 당사자가 직접 원작을 쓰고 각본을 감수하고 주인공으로 출연까지 했다는 것이다. 한국 영화사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영화 <보스>의 한 장면.

여기에 조양은의 아내까지 실명으로 동반 출연한 것도 이전에는 없던 기록이다. 물론 조폭 두목이 배우로 데뷔해서 주연을 맡은 것도 최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영화에 박근형, 김수미, 독고영재, 박준규, 박상면, 정웅인 등 스타급 배우들이 다수 출연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사실상 조폭을 미화하는 내용으로 채워졌으며 언론의 뜨거운 관심속에 10만 관객을 동원했다. 조양은은 상영관 앞에서 사인회를 갖는 등 ‘연예인 놀이’에 나서기도 했다.

영화 개봉에 앞서 조양은은 TV에도 출연한다. 1996년 6월23일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스타의 명장면’ 코너에 출연했는데, 마치 전혀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비춰졌다.

한겨레신문이 발행하는 영화 잡지 <씨네21> 표지(65호, 1996년 8월13일자)를 장식하기도 했다. 조폭 두목 출신이 영화 잡지의 표지모델이 된 것도 처음이다. 이처럼 조양은은 대한민국의 어느 배우도 갖지 못한 기록을 갖고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70대의 조양은은 또 한 번 대중을 놀라게 한다. 그는 2022년 3월 유튜브 채널 <조양은 TV, 27년 만의 진실>이란 채널을 개설하고 이번에는 유튜버로 변신했다. 전국구 조직 폭력배 두목이 유튜버로 나선 것도 조양은이 처음이다.

하지만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양치기 행보’ 때문에 대중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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