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

제7태창호 밀입국자 집단 사망사건


서해바다는 국내에서 중국으로 나가거나 중국에서 국내로 들어오는 밀입국 주요 루트다. 서해안은 리아스식 해안으로 크고 작은 섬이 많아 침투가 비교적 쉽고, 중국과도 거리가 짧다는 이점이 있다.

국내 범죄자들이 브로커를 통해 소형 어선을 타고 중국 쪽 공해상으로 나간 뒤 미리 대기하고 있던 화물선으로 갈아타고 중국으로 들어가거나, 코리안드림을 꿈꾼 중국인들이 브로커를 통해 비슷한 방법으로 국내에 들어온다.

국내와 중국 현지에는 밀입국을 알선하는 전문 브로커들도 있다. 중국 내 밀입국의 근거지는 동북 3성과 산동성, 저장성, 후젠성 등이다. 이들 지역에는 중국 교포와 탈북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밀입국자들의 90% 이상이 이곳에서 출발하거나 도착지로 이용한다.

2001년 9월25일 오후 전남 여수시 봉산동의 한 다방에서 밀입국 브로커인 여사구씨(53)와 제7태창호(여수 선적 안강망 어선) 선장인 이판근씨(43)가 만난다.

여씨는 이 선장에게 동중국해에서 조업하고 오는길에 중국 밀입국자들을 태워 들어와 달라고 제의한다. 이 선장은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여씨가 사례금으로 3000만원과 선원들 각자에게 100만원씩 준다고 하자 받아들인다. 여씨는 착수금으로 500만원을 건넸다.


그로부터 5일 후인 9월29일 새벽 제7태창호는 선장과 선원 9명을 태우고 여수항을 출항한다. 10월1일부터 5일까지는 평범한 조업을 하면서 조기와 갈치 등 1400여 상자를 어획했다.

태창호가 어업을 시작한 시각에 중국 저장성 닝보항에서 한국으로 밀입국할 중국 국적 60명(한족 49명, 조선족 11명)을 태운 목선(20t급)이 출항한다. 이들은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입국 브로커 6만5000위안(약 900만원)을 주고 한국으로 향했다.

중국 목선은 10월6일 제주도 서남방 110마일 해상에 도착해 바다 한가운데서 서치라이트를 세 번 깜빡거리자 어둠 저편에 있던 태창호가 같은 신호를 보내 접선한다. 태창호는 목선에 접근해 약 10분 만에 밀입국자들을 배에 옮겨 태웠다.

이틀후인 10월8일 완도 근해에 이르자 태창호는 해경 단속을 피하기 위해 밀입국자들을 기관실 옆 3평 정도의 어구보관용 간이창고(25명, 한족)와 2.5평의 물탱크(35명)에 각각 나눠서 숨겼다. 그런다음 육중한 나무로 만든 뚜껑을 닫고 그 위에 비닐로 포장해 묶은 그물뭉치들로 덮어 위장했다.


얼마 후에 있은 해경의 단속은 무사히 넘어갔다. 선장의 지시에 따라 태창호 선원들은 밀입국자들에게 물을 주기 위해 물탱크와 어구창고의 문을 열었다. 비교적 통풍이 잘 됐던 물탱크 속 밀입국자들은 모두 살아있었지만 어구창고가 문제였다.

사고가 일어난 어구창고를 경찰이 조사하고 있다(KBS 방송화면 캡쳐).

비좁은 곳인데다 공기가 통하지 않아 이곳에 숨어 있던 25명은 모두 숨진 채 발견된다. 이들의 죽음은 처참했다. 일부는 탈출을 위해 창고의 벽을 긁다 손톱이 부러지고 지문과 손마디가 사라져 있었다.

사망자들은 숨이 막혀오면서 뚜껑을 밀어 올리려고 했으나 1톤이 넘는 그물과 어구의 무게에 짓눌려 열 수가 없었다. 이들은 살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창고에 갇힌 지 3시간여 만에 하나 둘씩 쓰러지며 질식사하고 말았다.

선장 이씨가 당황해하고 있을 때 브로커 여씨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그는 “백야도에서 작은 배가 오니까 그 배에다 밀입국자들을 태워라”고 말한다. 이때 이씨가 “큰일났다. 25명이 죽었다”고 하자 여씨는 “생존자들은 배에 태우고 시체는 바다에 버려라”고 지시했다.

10월8일 새벽 3시30분쯤 여수시 가막만에 도착한 태창호는 5t급 FRP소형 어선에 생존한 밀입국자들을 옮겨 태웠다. 태창호는 뱃머리를 돌려 여수시 남면 소리도 남쪽 10마일 해상으로 나가 오전 6시쯤 시신을 모두 바다에 던져 수장시켰다.


하지만 이들의 범행은 금세 탄로난다. 생존한 밀입국자들이 여수시 경호동 대경도에 입도한 후 이를 목격한 주민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비밀이 탄로난다. 이들은 육지에 내린 후 미리 준비한 냉동탑차에 옮겨타고 서울로 이동하려고 했었다.

육지에서 붙잡힌 중국인 밀입국자들(KBS 방송화면 캡쳐).

경찰은 이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25명이 사망한 사실을 파악한 후 오전 11시쯤 여수항으로 입항하던 태창호 선장과 선원들을 모두 검거했다. 해경은 수색작업을 벌여 사망자 시신 13구를 인양해 수습했으나 나머지는 끝내 찾지 못했다. 생존자 35명은 중국으로 송환됐다. 이들은 모두 남성으로 17~47세였다.

밀입국자들을 신고한 대경도 주민 3명에게는 신고보상금 1천만원이 지급됐다. 여수시는 비참하게 질식사한 중국인 밀입국자들의 혼을 달래기 위한 진혼제를 올렸다.

검찰은 제7태창호 선장 이씨와 밀입국 브로커 여씨는 중과실치사와 사체유기, 출입국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를 적용해 구속기소했다. 또 태창호 선원 9명 전원에게는 사체유기죄 등이 적용됐다.

영화 ‘해무’의 한 장면.

재판부는 선장 이씨와 브로커 여씨에게는 각각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하고, 선원 9명 중 전과가 있는 임씨(35) 등 2명에게는 각각 징역 10월과 8월, 나머지 7명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씨 등은 중국인 밀입국자들을 좁은 어창에 수용해 질식사시키고 바다에 버린 혐의 등이 인정돼 실형을 선고하나 나머지 선원들은 선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어서 전과가 있는 임씨 등을 제외하고는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2014년에 개봉된 봉준호 감독이 만든 영화 <해무>의 모티브가 됐다. 앞서 2007년 극단 ‘연우 무대’는 <해무>라는 동명의 연극을 무대에 올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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