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의 ‘용인 일가족’ 5명 몰살사건
전대미문의 가족 살인이다.
2025년 4월14일 오전 10시쯤 119에 한 여성으로부터 “동생 상태가 이상하다”는 신고가 접수된다. 앞서 이아무개씨(56)는 신고자인 누나한테 “가족이 집단 자살했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신고를 받은 소방은 경찰에 연락해 함께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의 한 아파트로 출동했다. 예상대로 집안에는 참혹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80대 남녀 2명, 50대 여성 1명, 20대 여성 1명, 10대 여성 1명 등 일가족 5명이 사망한 상태였다. 이들은 4개의 방에서 각각 숨져 있었고, 시신의 목 부위에는 졸린 흔적이 뚜렷했다.
현장에는 이 집의 가장인 이씨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메모가 발견됐다. 여기에는 ‘내가 범행을 저질렀다. 나도 죽겠다’는 취지의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경찰은 이씨가 부모와 아내, 자녀들을 살해한 뒤 달아난 것으로 보고, 곧장 ‘코드 제로'(CODE 0·매뉴얼 중 위급사항 최고 단계)를 발령했다.

그러면서 이씨의 인적 사항과 휴대전화 번호, 차량 번호, 광주광역시 오피스텔의 주소 등을 파악했다. 이씨의 차량은 광주 동구 금남로에 위치한 오피스텔로 향하고 있었고, 경기남부경찰청은 광주경찰청에 공조를 요청했다.
관할 광주동부경찰서는 이씨의 오피스텔로 출동해 오전 11시10분쯤 그를 긴급체포했다. 당시 이씨는 수면제를 먹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해 의식이 혼미한 상태였고,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경찰은 이씨가 의식을 회복하자 살인 및 존속살해혐의로 구속했다.
이씨는 왜 5명의 가족을 몰살한 것일까.
그는 경찰 조사에서 가족을 살해한 이유로 “아파트 분양과 관련한 사업을 하던 중 계약자들로부터 사기분양으로 고소당했고, 이로인해 엄청난 빚만 지고 민사소송까지 당했다”며 “가족들에게 채무를 떠안게 할 수 없어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광주경찰청에는 이씨를 상대로한 사기 혐의 고소장에 접수돼 있었다. 평소 이씨의 가정에 불화나 가정 폭력 신고 이력은 없었다. 이씨는 광주에 사업장을 두고 평일에는 이곳에서 지내고, 주말에만 용인에 있는 본가에 들렀던 것으로 파악됐다.
사망자들의 부검결과 몸 안에서 수면제 성분이 검출됐고, 직접 사인은 목졸림이었다. 이씨의 범행은 우발적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치밀하게 계획한 정황이 드러났다. 그는 수개월 전부터 광주의 한 병원에서 여러 번에 걸쳐 수면제를 처방받고 약국에서 구입했다.
수면제를 이용한 범행은 계획 범죄수법의 하나다. 피해자를 항거 불능 상태로 만들기 수면제를 탄 음료나 술을 먹이는 것이다. 이때 범인은 수면제를 준비하는 방법부터 투약 방식 등을 숙지한 후 실행한다.
이씨는 수면제가 충분히 준비됐다고 판단하고 4월14일 밤에 떠먹는 요구르트에 수면제를 넣어 가족에게 먹인 후 이들이 잠들자 차례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
그는 범행 직후인 새벽시간에 아파트를 빠져나와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광주 거주지인 오피스텔로 향했다. 범행수법과 범행이후 행동으로 볼 때 도주 계획과 동선을 미리 짜놓고 각본대로 움직인 것으로 추정된다.

광주 오피스텔에 도착한 이씨는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으나 경찰이 들이닥치면서 미수에 그쳤다. 사건이 알려진 뒤 이씨의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다.
비록 가족 간 범죄이기는 하나 직계 존·비속과 아내까지 모두 살해해 가장 가까운 직계 가족이 모두 숨졌으며, 사망자가 5명에 달하는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점 등을 고려할 때, 피의자 신상공개 필요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경찰은 이씨의 신상을 공개할 경우 사망한 피해자들의 또 다른 가족들에게 2차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고, 유족들도 공개를 원하지 않으면서 비공개한다고 밝혔다.
이씨는 범행동기로 ‘경제적 문제’를 내세웠다. 그는 광주 분양사기 사건의 핵심 인물이었다. 민간임대주택 용역사 대표인 이씨는 2023년부터 광주 동구 산수동에 343세대 규모의 협동조합형 10년 민간임대 아파트 건설을 추진했다.
협동조합형 민간 임대주택은 추진위원회를 꾸려 발기인 5명 이상을 모집하고 부지 80% 이상의 사용 동의서를 확보하면 협동조합을 세울 수 있다. 하지만 제도적 허점이 많아 사기 범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씨는 협동조합 창립준비위원장 A씨, 분양대행사 대표 B씨 등과 함께 사람들을 모집하고 임대계약금으로 1인당 1000만~3000만원 상당을 받은 뒤 돌려주지 않았다.
협동조합 설립 요건이 충족하지 않은 상황에서 발기인으로 돈을 지불한 계약자들에 대한 명확한 반환 규정이 없는 상태다. 때문에 계약을 해지해도 투자금을 돌려받기는 어렵다.
이씨가 추진하는 아파트 건설사업으로 인해 피해를 본 계약자는 8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피해자들은 이씨를 비롯해 A씨와, B씨를 사기혐의로 수사해 달라고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여기에는 협동조합이 정식으로 설립되지 않았고, 건설부지 매입 여부조차 불분명한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채 계약을 진행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관할 지자체인 광주 동구청도 해당 사업이 조합 설립 인가를 받지 않고 계약금을 받고 있어 유사수신행위가 의심된다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경찰은 고소장을 접수한 후 이씨 측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관련 증거를 확보했다. 또한 계약자들에게 사기피해를 입었다고 생각되면 알려달라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씨는 이것을 문제삼고 업무방해 및 피의사실공표 혐의로 경찰서 담당 수사관을 고소하기도 했다. 해당 경찰관이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보한 계약자 정보를 이용해 죄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단체 문자를 보내 수사를 확대했다는 게 이유다.

이번 사건은 역대급 가족 살인이다. 그동안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가장이 아내와 자녀들을 살해한 사건은 종종 일어났지만 이번처럼 부모와 처자식 등 일가족 5명을 한꺼번에 몰살한 것은 국내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부모와 자녀들을 한꺼번에 살해함으로써 존속살해와 비속살해가 동시에 일어난 것도 이례적이다. 지금까지 일어난 존속살해의 경우 부모와의 갈등, 학대, 부모의 재산을 노린 계획범죄가 대부분이었다.
비속 살해도 대부분 범인인 가장이 홀로 남겨질 어린 자녀가 걱정된다며 벌인 범행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부모와 아내, 성인인 딸, 곧 성인이 될 10대 후반의 딸까지 범행대상이 됐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자신의 범행을 경제적 어려움에 의한 불가피한 선택인 것처럼 합리화했지만 가족을 몰살한 동기로 보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만약 감당할 수 없는 빚이 생겼을 경우 개인회생이나 파산절차 등을 통해 경제적으로 재기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 있다. 사기 혐의로 유죄가 확정될 경우 그에 따른 법적 처벌을 받으면 된다.
더욱이 현행법상 가장의 채무는 상속이나 별도의 채무인수 행위를 하지 않고는 타인(가족)에게 이전되지 않는다. 즉 이씨 명의의 재산만 해당된다. 50대 아내와 성인인 딸은 경제적 활동으로 자립이 가능했다.
그런데도 이씨는 오로지 가족을 죽이는 것에만 몰두했다. 또 수개월에 걸쳐 수면제를 준비하는 등 오랫동안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한 것도 이전 가족살인과는 다르다. 가족을 살해한 이씨가 광주로 내려가 극단적 시도를 한 것도 의아하다.

처음부터 가족을 죽인 뒤 극단선택을 할 생각이었다면 가족 시신이 있는 용인을 벗어나 굳이 광주까지 간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
이씨가 누나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낸 시점도 범행 직후가 아니다. 그는 광주 오피스텔에 도착한 후인 오전 9시50분쯤에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1시간10분 후 경찰에 긴급 체포된다.
경찰이 자신을 추적하고 광주 거주지로 들이닥칠 것을 미리 계산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정황에 따라 이씨의 극단선택 시도가 연기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이씨의 범행동기가 석연치 않다. 범죄전문가들도 이씨가 진짜 범행동기를 숨기고 또 다른 범행동기가 있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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